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
누가 임신중지의 조건을 말하는가!

 

외치고 싸우고 요구한 여성들의 힘으로 이뤄낸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찬물을 끼얹는 논의가 정의당에서부터 나오고 있어 심히 참담하고 유감스럽다.

 

헌재는 임신의 유지 여부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헌법이 보장하는 인격권이며 ‘헌법상의 권리’로 분명히 했다. 즉 임신을 유지하고 중지하는 데 있어 전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여성의 판단과 요청이며, 유일한 제약은 임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안전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결국, 헌재 결정 이후 사회적 논의와 입법의 방향은 “어떻게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절차를 만들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여성의 결정권과 건강권을 보장할 것인지”가 되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성평등을 확대하고, 포괄적 성교육을 강화하며, 피임 접근성을 보장하고, 원치 않는 임신을 줄이며, 성과 재생산에 관한 정보 접근성을 높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성관계, 피임, 임신, 임신중지, 임신유지, 출산, 양육이라는 재생산의 전 과정에 있어서 모두가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할 수 있도록 의료시스템 정비, 공공의료 확충, 의료인 교육 및 재교육, 건강보험 적용, 수가 조정, 임신중지 약물 도입, 공공양육 확대, 복지제도 개선 등 시급히 논의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 산더미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절차 정비를 뒤로하고 헌재의 결정 취지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임신주수’와 ‘임신중지 사유’에 따른 임신중지 권리 “제약”에 관한 법안이 다른 정당도 아닌 정의당에 의해 먼저 발의된 것에 탄식을 금할 수 없다.

 

임신을 중지하려는 여성이 관련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고, 숙련된 의료인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으며, 그리하여 가능한 초기에 안전하고 건강한 방법으로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어떻게 보장할지를 논의하는 것과 임신 몇 주 이후부터는 임신중지를 금지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은, 한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관점 자체가 다른 것이다.

 

‘사회경제적 사유’라는 명목으로 아주 많이 가난하고 열악한 상황임을 ‘증명’하면 임신중지를 ‘허락’해 주겠다는 국가의 태도와, 사회적 경제적 상황이 어떠하든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하여 양육하길 원하는 여성은 그 과정에서의 건강과 노동권 교육권을 보장받고 양육의 부담을 국가가 함께하며, 여성이 임신을 중지하고자 할 때 그 사유를 국가에 증명할 필요 없이 마땅한 헌법상의 권리로서 안전하고 낙인 없이 중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역시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임신중지 논의에서 필요한 것은 여성에 대한 ‘처벌’도 ‘허락’도 아니며, 건강과 권리에 대한 ‘보장’과 ‘지원’이다. 여성은 임신을 중지하고자 할 때 ‘임신주수’로든 ‘임신중지의 사유’로든 그것을 국가에 증명하고 허락받을 이유가 없으며, 이번 헌재의 결정문도 자신의 몸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임신 전 기간에 걸쳐서 보장되어야 함을 명확하게 적시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국회에 발의된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헌재 결정의 역사적 의미와 여성들의 힘겨운 투쟁의 성과를 뒤로 돌리는 퇴행적 법안이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또한 헌재 결정 이후에도 아무 입장 발표가 없는, 모자보건법 소관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직무유기와 무책임한 행태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녹색당이 지속적으로 외쳐왔듯 낙태죄 폐지는 시작에 불과하다. 여성의 인권과 존엄이 보장되는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성과 재생산의 전 과정에 마땅한 권리와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적 제도적 여건을 만들기 위해, 의료제도 복지제도 교육제도 등 시급히 개선해야 할 사회적 숙제들이 산적하다.

 

숙제를 빨리는 못 할망정 엉망으로 하거나 문제의 취지에 반하는 답을 내놓는 정치세력과 정부에 질책과 안타까움을 표한다.

2019년 4월 15일

녹 색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