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해서 합의해서 초범이어서…
성범죄 감형 사유를 남발하지 말라

 

집단 성폭행과 불법 촬영, 불법 촬영물 유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가수 정준영과 최종훈이 항소심에서 형을 감경 받았다. 1심에서 각각 징역 6년과 5년을 선고받았었으나, 2심에서 징역 5년과 2년 6개월로 형량이 줄어든 것이다.

 

정준영은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했음도 진지하게 반성한다는 이유로 감경했다. 최종훈 역시 공소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진지한 반성이 부족하다면서도, 피해자와 합의했고 초범이라는 점을 들었다.

 

여럿이 모의해 술에 취한 여성들을 수차례 집단 성폭행하고 피해자 동의 없이 성관계 동영상과 사진을 촬영해 십 수차례에 걸쳐 유포한 이들을, 반성 합의 초범 등의 이유로 감형한 것이 타당한가. 성범죄의 감경 요소가 가해자 중심적이고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반성을 어떻게 얼마만큼 했기에 ‘진지한 반성’으로서 감경이 가능한 것인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정준영은 반성문을 세 번 냈다는데, 그럼 두 번 냈으면 감형을 안 해주었을 것인지 네 번 냈으면 더 감경해 줬을 것인지 자의적 판단 여지가 다분하다.

 

이렇다 보니 반성문 대필 사이트가 성행하고, 반성문 제출 팁이 SNS에 돌아다니고, 반성문 작성을 변호사에게 코치 받는 ‘매뉴얼화 된 반성’이 공공연한 것이다. 가해자에게 유리한 형식적 감경 요인으로 성범죄에 가벼운 처벌이 내려지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합의도 감형 사유가 되다 보니, 가해자는 부모 가족 등을 총동원해 피해자를 압박하고 읍소하며 합의를 받아내려 한다. 피해자는 합의를 안 하면 안 하는 데로 고통에 시달리고, 합의를 해주면 그때부터는 돈을 노렸다며 꽃뱀 소리를 들어야 한다. 합의를 감경 사유로 고려할 때 신중해야 할 이유다.

 

초범이라는 감형 요인도 따져봐야 한다. 성범죄는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낮은 엄벌 가능성 등으로 신고율이 2%도 되지 않는다. 신고해도 ‘혐의없음’으로 처벌은커녕 기소조차 되지 않을 확률이 35%로 다른 범죄에 비해 높다. 재판이나 처벌받은 전력이 없다고 이것이 성범죄 자체가 처음은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성범죄자의 형을 감경하려 할 때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으로 가해자에게는 보수적이고 피해자 중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가해자에게 이입하는 재판부로 인해 정준영과 최종훈의 항소심 선고가 죄질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웠다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 유명인이 피의자인 사건은 사회적 파장이 크기에 특히 더 엄중하고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일상에서의 성착취가 만연하고 사법부의 안일한 성인식에 공분이 큰 요즘, 또 성범죄자에 치우친 판결을 하나 더 보탠 서울고법 형사12부 윤종구 최봉희 조찬영 부장판사에게 깊은 안타까움을 표한다.

 

2020년 5월 13일

녹 색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