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대법원 결정이 내려졌다. 징역 3년 6개월의 유죄 확정이다. 피해 고발 이후 회유, 협박, 의심, 음해 등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던 피해생존자께 최소한의 안식과 평온이 찾아오길 기원한다. 대법원 선고로 가해자에 대한 일말의 정의가 회복됐으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큰 숙제를 안고 있다.

 

피해자의 피해 고발 이후 여론은 끊임없이 피해자의 의도를 의심하고 저의를 추궁했다. 1심 재판부조차 가해자 안희정에게는 심문하지 않고 피해자만을 12시간 추궁하는 참극을 보였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에게 “왜 이제 와서 이러느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수많은 조직, 사례에서 반복된다.

 

고발자가 ‘전형적인 피해자 상’에 부합 하는지 심판하는 일도 익숙하다. 1심 재판부는 “김씨가 고학력에 성년을 훨씬 지나고 사회 경험도 상당한 사람”이라며 피해 진술을 배척했다. 우리 사회는 피해자가 완벽하게 취약한 약자가 아니면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곧잘 상정한다. 엄존하는 성별권력과 성별위계의 인지와 인정 없이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막을 수 없다.

 

모순적,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폄하되는 피해자의 목소리도 돌아봐야 한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경험칙’, ‘사회통념’을 들어 부정한다. 그러나 깨달아야 할 것은 그 경험칙과 사회통념 자체가 남성중심적 구조 속에서 젠더권력의 영향 아래 정형화된 산물이라는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으로 이 통념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지 않으면 법정에서도 일상에서도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대면할 수 없다.

 

법관들의 성인지 감수성 교육, 피해자의 문제 제기를 막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무고죄 개정, 비동의 간음죄 도입과 권력 관계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 특례조항 신설 등 법제도적 보완도 서둘러 논의하고 개선해야 한다.

 

“피해는 저절로 자명한 사실이 되지 않고, 피해 사실은 만들어 가야 할 역사이며, 피해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담론적 실천으로 발명해야 할 대상이다.”라는 정희진 선생의 말을 되새긴다. 우리가 일상에서 의식도 못 하며 지나가는 여성들의 고통은 또 얼마나 숱할 것인가. 성차별과 성폭력을 ‘특수하게 악한 자의 특별하게 나쁜 행동’이라고 치부하는 한 성평등은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

 

안희정 사건은 안희정 개인 만의 징벌로 끝날 일이 아니며 우리 사회에 많은 숙제를 남겼다. 피해고발자가 자신의 존재를 걸고 이 사회에 던진 질문을 우리는 회피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드려야 한다.

 

2019년 9월 9일

녹 색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