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현 선수의 명복을 빌며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퇴하라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국가대표 출신의 최숙현 선수가 지도자 등의 가혹행위로 고통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망한 청년 체육인의 비극에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최숙현 선수는 수년간 감독, 팀닥터 등의 상습적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다. 지난 3월 형사 고소를 하고 감독기관인 경주시청,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철인3종협회 등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대응에 소극적이었다. 어디서도 신속한 진상조사나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방안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체육계 인권침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종목을 불문하고 폭력과 폭언, 성폭력과 성추행 등 비인간적 대우가 만연함이 지속해서 공론화됐다. 체육계의 폐쇄성으로 감춰져 있던 병폐가 수없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등 구태의연한 대처만 반복됐다. 체육계의 근본적 각성과 자정을 위한 구체적 실행은 없었다.

 

선후배로 촘촘히 짜인 위계질서, 지도자가 선수를 발탁해 키우는 도제식 교육, 합숙훈련 전지훈련 등 외부와 차단된 훈련 방식은 선수들이 지도자의 지시에 절대복종하는 문화와 구조를 만든다. 무엇보다 모든 부조리의 바탕에는 ‘성적 지상주의’가 있다. 경기에서 메달 획득이 지상 목표이고 이를 위해선 소위 ‘매 맞으며 훈련’하는 것조차 묵인된다.

 

지난 ‘체육계 미투’를 계기로 설치된 상담센터나 인권센터는 턱없이 부족하며 권한도 크지 않다. 전문성을 갖춘 인력과 예산이 대폭 지원돼야 하고, 이해관계인이나 체육계 내부의 역학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선수를 보호하고 피해자를 구제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실효성 있게 집행돼야 한다.

 

지배구조를 대폭 개혁하지 않으면 고질적인 폭력의 카르텔을 부술 수 없다. 대한체육회와 종목별 경기단체는 일련의 사태에 책임이 막중하지만, 조직 보위와 일신의 안위 챙기기로 일관했다. 선수들의 잇따른 인권침해 공론화에도 오히려 사안을 은폐하거나 축소하기 급급했다. 엄하게 지도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는 인식이 임원들부터 팽배하다.

 

쇄신의 첫걸음은 인적 쇄신이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오늘날의 비극에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 이기흥 회장은 체육계의 절대 권력자로 조직을 사유화하고 측근들의 처벌을 방해했다. 체육계 내 성폭력과 가혹 행위를 묵살하고 침묵을 강요한 책임 당사자이다. 줄곧 사퇴를 거부하고 있는 이기흥 회장은 지금 당장 물러나야 한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 즉, 판을 갈아엎지 않으면 체육계의 ‘구타의 일상화’는 근절되지 않는다. 고위직들이 기득권을 다 내려놓도록 압박하고 경기단체 등 구성에 체육계 외부인사를 참여시키도록 강제해야 한다. 인권과 성평등 인지가 있는 인사들을 포함해 체육계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철인 3종 경기 선수들에 대한 인권유린도 땜질식 처방으로는 결코 재발을 막을 수 없다. 최숙현 선수의 희생이 체육계 적폐의 뿌리를 뽑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너무 이르게 고인이 된 최숙현 선수가 편히 잠들기를 두 손 모아 빈다.

 

2020년 7월 2일

녹 색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