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인권에 ‘사회적 합의’는 필요치 않다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 IDAHOBIT,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Biphobia, Interphobia and Transphobia)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90년 5월 17일 동성애를 국제질병목록에서 삭제한 날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부끄러운 역사를 돌아보며 평등과 인권을 외치는 날이다.

 

최근 이태원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확산하는 와중에, 방역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언론의 성소수자 혐오적 보도는 매우 유감스럽다. 국민일보 등은 성소수자 정체성 자체에 대한 낙인을 조장하는 기사를 무차별로 쏟아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을 유인하고 정작 자발적 검사는 기피하게 만들었다.

 

언론의 공적 역할은 무참히 폐기한 채 사회적 소수자를 고립시키고 공동체를 더 위험한 곳으로 만든 언론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건강과 안전은 서로 연대하고 협력할 때 지켜질 수 있으며 차별과 배제는 모두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을 우리는 몸소 체험하고 있다. 소수자에게 악의적 이미지를 덧씌우며 혐오를 부추긴 언론에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지난 13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독일 공영방송 대담에서의 발언은 매우 유감스럽다. 이태원 감염 확산으로 성소수자 혐오가 급증하고 LGBT 커뮤니티가 두려움을 느끼는 지금 상황이 괜찮다고 보느냐는 앵커의 질문에, 강 장관은 “정체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용납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한국은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합의(consensus)’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권리의 낙후함에 대한 국제사회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국 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들었다. 인간의 존엄과 인권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동의하지 않는 이가 있다고 노예제나 계급사회로 돌아갈 수 없고, 합의하지 않는 이가 있어도 국적이나 피부색으로 인간의 우열을 나눌 수 없듯이 말이다.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이나 박해는 허용될 수 없다는 인류의 약속을 거스를 수 있는 ‘사회적 합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평등에 관한 공동체의 이해와 공감대 형성의 책임은 바로 정부에 있다. 국가적 책무를 소홀히 하고 고의로 회피하며 성소수자 차별을 방치하는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사회적 합의’라는 변명 뒤로 숨지 말아야 한다. 차별금지법 입법이 10여 년째 난항을 겪고 동성부부가 혼인은커녕 최소한의 제도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 현실은 야만적이다. 21대 국회와 문재인 정부가 인류 보편 수준만큼이라도 인권 보장의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2020년 5월 15일

녹 색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