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으로 이룬 정권교체 이후 맞는 첫 새해가 밝았다. 지난겨울 광장에서 시민들은 ‘대통령 하나 바꾸려고 촛불을 드는 것이 아니’라 외치며 근본적이고 대대적인 사회 변화를 요구했다. 따라서 올해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넘어 고통받는 민생의 개선과 기득권 적폐 청산을 위한 과감한 개혁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사람이 먼저’라는 정권의 국정계획과 운영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노무현 정부가 입법을 시도했으나 재계와 보수개신교의 반대로 좌절됐고 이후 10년간 번번이 혐오세력의 결사반대로 좌초되고 있는 평등의 ‘기본법’이다. 더 이상 ‘나중에’로 미룰 수 없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시급성은 성소수자 건강연구 지표에서도 나타난다.

 

2014년 발표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 따르면 응답자(3,159명) 중 28.4%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고, 35.0%가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으며, 41.5%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 및 폭력을 직접 경험했다고 답했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이 심각한 수치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경우엔 더 높았다.

 

<한겨레21>이 최근 보도한 한국 성소수자 건강연구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연구팀의 2017년 논문에서도 심각성은 이어진다. 남성(게이·양성애자) 34.2%, 여성(레즈비언·양성애자) 53.5%가 우울증상을 경험했고,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는 비율이 성소수자 남성 26%, 여성 41.4%에 달했다. 전체 인구 집단과 비교할 때 적게는 6배 많게는 9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한국 성소수자들의 정신적 건강상태는 결코 더는 방치되어서는 안 될 위험한 수준이다. 병리적 우울을 겪고 자살을 고려하거나 자살을 직접 시도하는 수치가 인구 평균에 견주어 극단적으로 높다. 이런 결과는 어느 사회 집단에서도 예를 찾을 수 없으며 가히 ‘집단적 재난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상의 위험은 사회적 차별과 폭력에 노출된 경험이 많을수록 심각했다.

 

공론의 장에서 여과 없이 노출되는 혐오발언과 사회적 배제를 겪으면, 낙인으로 인한 두려움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 부족은 더해진다. 따라서 의료기관이나 전문가를 찾지 않거나 방문을 미루며, 사회와 인적 연결망으로부터도 고립돼 건강은 더욱 악화된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사회보장, 복지, 주거, 교육, 직업선택 등에서의 소외와 차별을 넘어 건강마저 중대히 위협하는 것이다.

 

물론 차별금지법이 이 모든 비극을 단번에 끝낼 수는 없다. 그러나 소수자 차별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자 실마리는 될 수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국가와 사회가 소수자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혐오세력에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이자 소수자에게 내미는 신뢰 회복의 손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은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공격과 폭력을 막는 최소한의 방패막이가 될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무엇이 차별인지를 알려 차별상황을 예방하고, 공적이며 명백한 차별은 금지한다. 중한 차별을 받았을 때 국가에 도움을 요청해 차별을 시정하고 실질적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된다. 처벌을 목적으로 개인들을 강하게 규율하진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평등의 ‘기본법’으로서 기능하며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

 

고유한 정체성을 이유로 사회가 개인을 위협하고 모욕하며 조롱하면 소수자들은 아프고 병이 든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가 ‘야만’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문명’으로 가기 위한 필수불가결이다. 올해에는 기필코 차별금지법 제정하여, 누구도 다양성의 훼손으로 좌절하지 않고 낙인과 편견으로 고통받지 않는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어가자.

 

2018년 1월 3일

녹색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