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가 여기 있다!
차별금지법 지금 당장

 

이제야 국가 차원의 첫 트랜스젠더 실태조사가 나왔다. 지난 9일 국가인권위는 ‘트렌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연구 최대 규모인 591명의 만 19세 이상 트랜스젠더가 설문에 참여했다.

 

응답자의 오직 8%만이 법적 성별을 정정했다. 성별 정정을 시도한 적 없는 86%는, 성전환 관련 의료적 조치에 드는 비용(58.9%), 복잡한 법적 성별 정정 절차(40%), 성전환 관련 의료적 조치에 따른 건강상 부담(29.5%) 때문에 법적 성별 정정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주민등록상의 성별과 성별 표현이 일치하지 않을 때 진학과 구직, 공공기관과 의료기관 이용, 은행 등 금융기관 업무, 전월세 등 계약체결에서 얼마나 제약이 클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도 법적 성별 정정을 절대다수가 시도하지 않은 건 그만큼 제도적, 의료적 장벽이 높아서다.

 

현재 성별 정정 관련 유일한 제도인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 가족관계등록예규 제550호」는 ‘생식능력 상실’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적 성별 정정을 위해서 ‘생식능력을 제거하는 수술’을 할 것을 사실상 강제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음을 말할 것도 없고 과도한 비용에 건강상의 위험까지 따르는 외과적 시술을 성별 정정의 조건으로 하는 것은 끔찍한 인권침해다. 신체적 온전성, 성적 자기결정권,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반인도적 처사다.

 

둘 중 하나로 이분화해서 개인에게 번호를 부여하고 국가가 관리하는 성별 제도는 구시대의 잔류이며 반인권적이다. 성별 이분법과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정당화한다. 이는 트랜스젠더에게만 폭력적인 것이 아니다. ‘여자답지 않음’에 대한 비난, ‘남자답지 않음’에 대한 조롱은 모두를 억압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트렌스젠더가 경험하는 관공서, 학교, 직장, 군대 등에서의 배제, 화장실 등 공공시설 이용에서의 차별, 일상에서 겪는 혐오 등이 구체적인 응답과 수치로 드러났다. 국가적 조사와 통계로 실태가 파악되지 않으면 제도와 정책 마련도 요원하다.

 

우리나라는 성소수자에 대한 조사와 통계 자료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얼마 전 진행된 인구주택총조사도 성별 이분법에 갖혀 있었음은 물론, 실제적이고 다양한 가족의 형태도 배제돼 있어 성소수자 부부들은 가구 형태로서 선택 자체가 불가능했다.

 

권리 보장의 첫걸음은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이다.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는 엄연히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존재한다. 존재 자체를 지우는 무지와 폭력을 거두고 국가 차원의 조사와 통계 축적이 시급하다.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과 평등을 위한 법, 제도, 정책의 기초는 당연하게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다. 무려 2021년이다. 이제는 정말 제정할 때도 되었다.

 

2021년 2월 10일

녹 색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