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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녹색당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관해 총선 이전에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얻지 못하고 오늘에서야 공개변론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린 시간은 민주주의에 걸맞지 않은 공직선거법 조항이 유지되었던 시간에 비하면 매우 짧다. 1987년 범국민적 민주항쟁으로 헌법이 바뀐 이래 무려 3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현행 공직선거법에는 일반 국민의 정치참여와 자유로운 정당활동을 가로막는 반민주적 조항들이 가득차 있다.

우선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의 기탁금 1,500만원은 평균적인 일반 국민의 경제력으로는 쉽게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해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 기탁금이 없거나 있더라도 그보다 훨씬 소액이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기탁금 이외에도 각종 선거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데다가 기탁금 및 선거비용의 일부라도 보전받으려면 10퍼센트 이상의 득표를 해야 한다. 고액기탁금 제도는 부유하지 않은 국민이 후보자가 되는 길을 크게 차단하면서, 정치신인과 소수정당이 선거에 출전하는 것 자체를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현대판 금권정치이며, 선거에 들어간 비용을 국가가 책임지는 선거공영제 정신을 위협한다. 게다가 유신시대에서 고액기탁금 제도가 재도입되었다는 것은 여전히 독재의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한국의 선거운동 규제는 정치적 약자에게 문턱만 높은 게 아니다. 문턱을 넘으면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후보자는 확성장치를 사용한 연설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지역구 후보자와 같은 기탁금을 낸 비례대표 후보자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다. 또 지역구 후보와 별도로 정당투표를 하게 되어 있는 1인2표 제도의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조항이다. 유권자들은 지역구 후보와 별개로 어떤 정당에 투표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 비례대표 후보자의 연설을 청취함으로써 지지 정당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 지역구 후보에게만 연설을 허용하는 현행 제도는 가뜩이나 당의 형편과 고액기탁금 제도 등에 치여 지역구 후보를 많이 낼 수 없는 소수정당을 드러내놓고 차별하는 제도일 뿐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자유로운 정견 발표의 장이 되어야 할 선거공간이 오히려 정당활동의 자유가 위축되는 계기가 된다는 데 개탄을 금치 못한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일전 180일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 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을 금지하고 있다. 여기서의 규제 대상은 “누구든지”로 정당과 일반 국민 모두가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규제 기준이 되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도 가당치 못한 것이다. 시민의 정치적 활동, 정당의 모든 활동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법이다.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면서도 애써 ‘선거과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단서를 다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우리 녹색당은 정당연설회로 당의 노선과 정책을 각지에서 활발하게 홍보하면서도 직접적인 지지 호소를 속으로 삼키는 경험을 했다.

이렇듯 시민의 참정권과 정당활동의 자유를 근본부터 훼손하는 대표적인 조항으로 호별방문 선거운동 금지를 들 수 있다. 이는 헌법의 기본권 보장 정신에 비추어 용인되기 어려운 규제다. 호별방문을 하도 안 하고는, 호별방문을 받고 안 받고는 시민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각종 영업을 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포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호별방문을 시도하고 있다. 거주권은 선거법으로 호별방문을 금지하지 않더라도 국민들이 보호받아야 할 권리이다. 호별방문이 유권자의 심기를 거스르는 부분이 있다면 득표활동을 하는 정당과 후보자가 알아서 조정하거나 삼갈 일일 것이다. 올해 치러지고 있는 미국 대선에서도 자주 보이는 일이지만, 대선 캠프의 선거운동원들은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후보자를 홍보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호별방문 금지의 기원은 1925년도 일본에 도입된 보통선거에 있다. 보통선거를 도입하면서도 ‘천황주권 원리’에 지배받던 일본의 문화는 의사표명과 정보획득이 자유롭지 못한 선거제도를 만들었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호별방문 금지다.

우리가 문제삼는 이 같은 제도들이 아직 존속되고 있는 것은 이미 기득권을 장악한 기성 정당들이 현행 선거제도에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체제가 ‘민주주의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초보적인 기준은 권력이 교체되고 이동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정치적 약자도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정치다양성이 보장되고 있는가? 아닌 만큼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것이다. 우리는 헌법재판소가 이를 직시하기를 촉구한다. 헌재는 지난 2014년 녹색당이 낸 헌법소원에 위헌판결을 내림으로써, 총선 득표율 저조를 이유로 정당의 등록이 강제로 취소되고 또 그 정당의 명칭이 다음 총선까지 사용금지되는 정당법 조항을 폐지한 바 있다. 다시 한 번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한다. 이번 헌법소원에 대해 총선 이전에 판결을 내리지 못한 것은 유감이지만, 연간 10여 차례에 불과했던 공개변론 기회를 이번 헌법소원에 부여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국회도 더 이상은 정치활동을 반민주적으로 위축시키는 선거제도를 방치해선 안 된다. 중앙선관위는 이번 재판을 현행법을 방어하는 데 골몰하지 말고, 녹색당과 시민사회가 제출하는 문제의식과 대안을 경청하고 수렴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지난해 ‘권역별 비례대표제’처럼 능동적으로 방안을 제시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국회의 책무는 더더욱 소중하다. 말로만 ‘특권 폐지’, ‘기득권 내려놓기’를 외치지 말라. 소수정당과 평범한 국민들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해야 할 것이며, 불합리한 제도 위에서 쌓은 권력에 연연하지 말고 공정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위상을 재확보해야 할 것이다.

우리 녹색당은 지난 총선 정치다양성 확립을 주요공약으로 내걸었으나 안타깝게도 국회 진출에 실패했다. 우리는 그러나 ‘국회에 먼저 진출시켜주면 해내겠다’고 약속하지 않고 현재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자로 선출되었으나 국민들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국민들을 위한 정치제도, 선거제도를 만들어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그렇다면 원외정당인 녹색당에게도 국민들의 그러한 불신과 분노를 대변하고, 제도정치권이 외면한 시민사회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 기회는 충분히 남아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번 헌법재판이 범국민적인 정치개혁운동의 촉발하는 사건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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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4일
녹색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