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로 이제 춘천녹색당 대표의 자리를 떠납니다. 떠나는 자리인 만큼 이제는 모든 것을 홀가분하게 얘기해볼까 합니다. 송년회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무거운 얘기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춘천 녹색당 첫 모임이 만들어지고 나서 벌써 세 번째 송년회를 합니다. 지금 여기에 오신 분들 중에서 처음부터 이 모임에 함께 하신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의 당원모임을 편의상 춘천 녹색당 2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제가 그렇게 부르는 것은, 제가 겪은 춘천 녹색당 1기라고 부르고 싶은 모임과는 다른 모습을 여기 계신 분들이 앞으로 만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램 때문입니다. 지난 3년간, 정말 좋았던 순간들이 많았고 그만큼 깊이 생채기가 나기도 했습니다. 비판의 과잉이었던 과거 진보정당들의 모습과는 달리 공감의 여유가 좋아보이다가도 칭찬은 과잉이면서 비판과 책임은 부족한 것 같아 아쉽기도 했습니다. 함께 했던 많은 분들이 여러 이유로 떠나갔고 저 자신도 실은 떠날 지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정당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특별한 정당이었기에 저희 안에서도 보통, 사람들이 만나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또 앞으로도 그런 일들은 피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저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1년간 저는 제 마음이 비추는 곳을 따라 왔습니다. [2년의 약속]을 시작했던 것도, 세월호 싸움에 함께 했던 것도, 밀양에 갔던 것도, 방사능 생활 감시단 활동을 하게 됐던 것도 모두, 제가 지금 이곳의 삶에서 느끼는 분노와 슬픔과 불안이 시킨 일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 가는 곳이 곧 길이 되었습니다. 뒤돌아보면 그 길도 다시 어둠에 묻혔으니 아마 그건 길이 아니라 기억일 뿐이겠죠.

얼마 전 저는 신해철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임을 했습니다. 쿱박스 카페의 사랑방을 빌려서 음악을 함께 듣고 각자가 가지고 있던  CD와 LP판을 가져와서 나누어 보며 그에 대한 추억을 함께 했습니다.  신해철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밤새 울었다는 분의 얘기를 들으면서 저 자신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던 날 밤, 마치 제 몸의 한 구석이 무너진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분의 눈물이 그런 제 마음을 안아주었습니다. 촛불 아래에서 슬픔으로 가만히 흔들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각자의 진솔한 얘기를 나누고 서로가 좋아했던 신해철의 음악들을 들었던 그 밤은, 오랫동안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이후에도 간혹 모여서 함께 음악을 듣고 사는 얘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 전에는 뒤뚜르 도서관에서 [우리 동네 좋은 병원 찾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중에 원주에서 있었던 얘기를 편지글 형식으로 읽어 드릴 때였습니다. (그 글은 제가 다른 모임에서도 한번 읽었던 글이었지만, 읽을 때마다 그때의 일들이 떠올려지면 목이 메여 와서 최대한 마음을 가다듬고 읽게 됩니다.) 옆에서 훌쩍거리시기에 처음엔 감기에 걸리셨나보다 했는데 편지글을 다 읽고 고개를 들어 뒤에 앉아 계신 분들을 봤는데 눈물을 글썽이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뭐랄까요. 그때 눈물을 흘리셨던 분들께는 죄송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고마웠습니다. 그 강연을 준비한다고 일주일 넘게 자료 준비하고 하루 반나절은 휴가를 내서 정리를 하고 했던 일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글속의 제 마음이 그 분들의 마음에 가 닿아 생겼던 눈물자국을 생각하며 그날 저녁 저는 아내와 오랜만에 술을 마셨습니다. 술 마시며 슬며시 미소짓는 저에게 아내가 그러더군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제가 지난 1년간 그래도 지치지 않고, 혹은 지쳐가면서도 이 일을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분들의 공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2년의 약속]에 함께 후원해주신 한분 한분의 이름이 아로새겨진 액자는 제 평생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그 공감의 기억이 오늘 제 마음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어 그분들에게 정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춘천 녹색당이 어떻게 가야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저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1년 대표일을 해보니까 더욱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라는 춘천 녹색당의 모습 한 가지는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건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은 소박한 모임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거처를 이곳 춘천에서 많이 만들어주세요. 그 모임이 녹색당 안에서 만들어지면 당원간의 관계가 더 깊어질 것이고 그런 모임이 녹색당 밖에서 만들어지면 그것이 결국 모두 녹색당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지난 녹색당 대표 선거에서 어떤 후보의 구호처럼 앞으로 1-2년 이내에 녹색당의 당원이 만 명이 늘어나는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 명의 당원을 만들어낼 천 개의 지역 모임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으로 지역에서 100명의 당원이 늘어나려면 최소한 30개의 소박한 모임이 더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 모임을 위해 웹자보를 만들고 전화를 하고 노트북과 스피커를 준비하고 문자를 보내고 술을 마시고 간식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을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과나무를 심지도 않으면서 그 열매를 맛볼 수는 없습니다. 제 생각에 지금, 저희 세대에서 녹색당원이 해야 할 일은, 더 깊이 아래로 아래로 뿌리를 내리는 일입니다. 수확의 시기는 아마도 먼 훗날의 일이 될 것입니다. ( 춘천 녹색당원 양창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