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입당했기에 처음으로 맞이했던 선거는 2016년 총선이었다. ‘3%’를 향해 모든 당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때였다. 당시 나는 경기당원이었지만 전국당 홍보본부와 서울 종로 선본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2015년 말부터는 서울녹색당원들을 매일 만나게 되었다. 그 시간에 시작되었던 인연 중에 한 명이 바로 그, 이광인 당원(구로금천)이었다. 서울녹색당 정책위원장부터 시작해 2015~6년 당시에는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2016년 총선이 끝난 후, 내가 서울녹색당 사무처 활동가로 일하게 되면서 ‘조금 떨어져’ 바라보던 그와 이제 ‘같이 일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평소 바쁜 직장 생활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벌어지는 지역당 운영의 결정사항 논의를 잘 해주었다. 특히 의견 수렴이 어렵거나 정치적인 판단들이 필요한 사안들에 있어서 예리하고 날카로운 의견들을 내주는 내공 있는 녹색당 선배이기도 했다.

 

2016년 9월 30일자로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서의 임기가 끝난 후 그는 오랜만에 평당원으로 돌아갔다. 나 역시 당직을 해봐서 동감하는 거지만, 솔직히 당직을 하고 나면 많이 지치기 때문에 당에 거리를 두거나 가끔은 탈당하는 경우들이 꽤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해 나갔다. 각종 행사에서의 능숙한 사회자로서, 대의원대회에서의 꼼꼼한 속기자로서 필요한 역할들을 요청하면 거절 한 번 없이 우리에게 달려와 주었다. 당 사정이 어려울 때 저금한 돈을 내주고, 응원이 필요한 자리에 와서 참여하며 먹을거리를 든든히 선물해주곤 했던 그였다. 당직자들의 뒤편에 서서 지원해주고 당과 당직자들을 걱정하며 응원의 말을 건네주던 고마운 당원이자 동지였다.

 

 

2020년 4월 1일 정오 무렵, 그의 갑작스런 부고 소식을 받았다. 장난이 아닐 걸 알면서도 믿고 싶지 않는 마음 때문이었던지 만우절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톡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역시나 읽지 않았다. 빈소로 가기 위해 다음날 아침 일찍 옥천역으로 나갔다. 와인을 좋아하던 그는 내가 포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걸 신기해했고 옥천에 꼭 놀러 온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포도가 열리기도 전에 돌아올 수 없는 하늘로 떠났다. “옥천에 꼭 온다더니 와보지도 못 하고 이게 뭐야…” 한적한 옥천역 한 편에 앉으니 탄식이 절로 터졌다.

 

그는 ‘밥꽃양’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었다.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밥꽃양>을 대학 시절에 본 후, 노동인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쓰게 된 이름이라고 설명해줬었다. 그 이후로 대학원에서 노동법을 전공했고, 올해에 노동정책대학원에도 합격한 상태였다. 십년 전, 큰 병으로 투병하면서 심신이 힘든 시간을 보냈던 그는 완치 후 하고 싶은 것들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묵묵히 해오고 있었다. 그런 그가 우리와 예정 없던 이별로 떠났지만, 그를 회상하며 남겨진 몫을 잘 해나가겠다는 약속으로 답했다.

 

 

서울녹색당의 소중한 거름이었던 ‘밥꽃양’ 이광인.

땅 위에서의 아픔 다 잊으시고 이젠 하늘에서 즐거운 여행해요.

당신의 이름 잊지 않겠습니다.

 

 

글/사진 루카(전 서울녹색당 사무처 활동가, 충북 옥천녹색당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