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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아니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자유토론
작성자
namkypp
작성일
2020-08-27 22:22
조회
90

혁신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아니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애트워터 초원뇌조는 텍사스 루이지애나 해안의 풀숲에 사는 새입니다. 석탄 석유의 개발로 멸종위기에 처하자 모빌그룹은 1995년 국제자연보호협회에 새의 보호를 위해 텍사스의 갤버스턴만을 기증하였습니다. 하지만 국제자연보호협회는 그곳에 화석연료인 천연가스를 채취하여 돈을 벌었고 2012년에는 초원뇌조가 아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미 클라인의 책에는 대형 환경단체들의 화석연료 자본과의 결탁에 대해 더 소상히 밝힙니다. 기후위기를 말하지만 여전히 자본은 그들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고 기후위기마저 상품화하여 돈을 벌고 있습니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대규모 소비와 생산의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기존의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환경파괴를 줄이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 사이 시간은 7.5년만 남았다는 말만 합니다. 답답한 현 시점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녹색당 역시 그 흐름의 한 복판에 있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으며 또한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환경을 생각하면서도 화석연료를 소비해서 만든 물건을 소비하고 그 편리함을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소비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소비가 어떻게 생산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 합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많기에 함께 해결하기 위해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환경 파괴의 기업에 맞서 싸우라고 더러운 돈 받지 말라고 후원하고 돈을 냅니다. 활동당원들은 뭔가 하려고 참여합니다. 공동체의 힘은 강하니까요.
환경단체의 위기와 마찬가지로 녹색당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자본과 결탁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혁신을 하자고 해서 한창 혁신토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기 위한 혁신인가?

혁신의 다양한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허전함이 남습니다. 애초의 목적은 사라지고 기능적인 측면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왜 모였고 왜 당을 만들었는지 평가는 없고 당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제도 완벽한 시스템은 없습니다. 그렇게 완벽하다는 체르노빌도 후쿠시마도 시스템이 부족해서 과학 기술이 부족해서 터지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실수와 자연재해로 순식간에 발생한 일입니다.

물론 제도의 혁신도 중요합니다. 당무위원회의 안건은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지만 여전히 문제는 많다고도 합니다. 첫 번째는 전운위로 활동하며 느끼는 것은 전국당의 운영을 전운위 위원들이 한 달에 한번 모여 회의를 하는데 소모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지역당을 고민하고 집중하기 보다는 정신없이 전국당의 사안을 지역당 당원들에게 설명하고 의견수렴하기 바쁩니다. -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마저도 거의 안합니다. 관심 있는 당원들은 간단히 검색만 해도 알 수 있는데 왜 굳이 숟가락에 밥마저 떠서 먹여야할까요? 모른다고 하지만 오히려 온라인을 통해 저보다 훨씬 더 정보를 잘 알고 있는 당원들도 있더군요.
지역당의 연합체인 녹색당이다보니 지역당의 대표들이 지역의 사안에 집중하기 보다 전국당의 일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다보니 당무위원이 그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입니다.
좋은 측면이 있으면 부정적인 부분도 당연히 있습니다. 12명의 당무위원을 보좌하기 위해 늘어나는 업무들입니다. 한 달에 한번 전운위 회의를 지원하고 실행하는 것만 해도 벅찬데 당무위의 일까지 늘어나면 현재의 사무인력으로는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을 던집니다. “왜 우리는 혁신을 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즐거운 상상과 실행보다는 구조의 문제만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모든 선거에 후보들은 공약을 말합니다. 그 공약을 검증하기 보다는 현실적으로는 이미지로 투표를 합니다. 녹색당의 혁신위원들의 공약을 제가 모두 다 보고 추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 공약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과거 운영위원장의 공약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과연 그 많은 혁신위의 공약과 활동을 어떻게 검증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쉬운 방법은 활동을 평가하면 됩니다. 무엇을 하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당원들과 소통하고 함께 만들어나갈 때 활동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위로부터의 지시나 의무가 되면 그때부터 그것은 관성화되어 오히려 독이 됩니다. 한 두 명이라도 그 활동의 진정성이 대중적인 힘을 얻게 되면 그때부터 정치적인 것이 됩니다. 지금의 녹색당은 그 힘이 없습니다. 뭘 하는지 무엇을 주장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다들 말합니다. 이것은 그냥 저의 의견일 뿐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무엇을 하기 위한 혁신위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지역당 대표를 직선으로 선출한다고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회의구조도 형식적 민주주의를 띄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앞서 지역의 대표가 지역의 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또 그것을 근거로 전운위에서 토론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과연 그것이 실제로도 가능할까요? 대의제 민주주의의 함정입니다. 오히려 지역 당원의 의견이 대표로 옮겨가는 순간 대표의 의견으로 바뀝니다. 지역 당원의 의견은 대표의 무기가 되어 어정쩡한 중립을 가장합니다.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절대 없습니다. 오히려 대표로 나선다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입니다. 서로 대표가 되겠다고 만들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동안 녹색당에 훌륭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정치를 해서 행복했습니다. 어느 순간 그 분들의 활동을 볼 수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직접적 민주주의를 못하기 때문일까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동양의학에서 몸의 앞쪽이 아프면 굶어라고 합니다. 등 쪽이 아프면 일을 줄이라고 합니다. 옆쪽이 아프면 사람과의 관계를 줄이라고 합니다. 서양의 의학은 그 아픈 부분을 임시적으로 처방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을 하지 않으니 또 재발합니다. 동양의학은 근본적 해법을 강조하니 치료가 더딥니다. 하지만 천천히 가더라도 몸을 제대로 살릴 수 있습니다.

녹색당이 하고 있는 일들을 살펴보면 줄여야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연대운동, 이 또한 과장되게 말하자면 운동권 정치입니다. 대중정당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연대운동 단체 내 아무리 녹색당이 잘한다고 칭찬받더라도 당을 성장시키지 못합니다. 물론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필요하다고 산 물건들이 집에 쓰지 않고 쌓이는 것처럼 해야 하는 의무감만 남은 채 정작 녹색당의 일들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동양의학의 관점에서는 녹색당은 등이 아픈 현실입니다. 일을 줄여야 합니다. 오히려 할 일이 없더라도 줄이다보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상상하는 시간이 생깁니다. 그래서 꼭 해야 할 일들을 가려낼 수 있고 녹색당의 현실 (활동가 , 상근자 재정부족 등)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집중해서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서두에 말한 대규모 환경단체가 왜 자본에 포섭될 수 밖에 없었을까요? 왜 녹색당은 자본에 맞서 싸우는 활동을 하지 않을까요? 그린뉴딜이 자본의 논리라 명확하게 비판하며 활동을 하지 못할까요? 그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지구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 또는 그 연결고리에 살고 있습니다. 그 중심이 지구이지만 반대로 인간은 그 지구를 길들일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무엇을 할 것인지 중심에 놓여야 할 자리에 시스템이 들어앉아 있습니다. 그 시스템 조차도 제대로 작동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멈춰야합니다. 무엇을 안 할지 잠시 멈춘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덧셈은 시시하다. 뺄셈은 짜릿하다’ 슬로우 라이프 쓰지 신이치는 이야기합니다. 뺄셈을 하기 위해 혁신안인지 덧셈을 하기위한 혁신안인지 묻고 싶습니다. 만들기는 참 쉽습니다. 지구라는 행성에 오늘도 무언가를 만들고 소비하는 가운데 지구온도는 올라가고 있습니다. 빼야합니다. 줄여야 합니다. 당장 줄이면 허전하고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안한다고 욕도 하겠지요.
완벽증후군, 완벽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있는 우리를 돌아봅니다. 완벽하기보다 부족함을 인정하며 나의 부족함을 타인이 채워주고 때로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이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 또한 너무나 부족한 사람입니다. 실수도 엄청 많이 합니다. 과거 지나온 조직들을 떠나왔지만 그 조직이 부족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떠나온 조직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녹색당 당원을 하면서 고기를 엄청 줄었습니다. 용기가 없어 채식을 하지 못하지만 고기를 줄인 것을 배웠습니다. 손수건을 들고 다니고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환경을 실천하지만 개인의 활동은 한계가 있습니다. 개인의 변화를 넘어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녹색당에 들어왔습니다. 개인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는 서로 연관이 있으며 무엇이 우선되어야할 부분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로 함께 변해야합니다. 어떤 경우는 개인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변화를 이끌어 내어야합니다.
끊임없이 쓰고 버리는 개인과 세상을 함께 바꾸어야 합니다.

지구를 살리자며 탄소거래제를 도입했지만 오히려 탄소거래제가 이윤을 남기기 위한 또 하나의 상품이 되었습니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준비되지 않는 제도는 오히려 역효과만 발생합니다. 근본적 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 길은 어쩌면 아주 멀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해야 합니다. 바로 지구를 위해서 그 지구를 지키고 싶기 때문에 우리는 녹색당 당원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질문을 던집니다. 저에게도 던지는 질문은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함께 풀어가고 싶습니다. 함께 푼다고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시작했으면 합니다.

과연 우리는 왜 혁신을 하고자 할까요?
혁신위 안에서 빼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혁신위 안은 어떤 평가에서 나온 것일까요? 그것은 제대로 된 평가일까요?

거듭 말씀드리자면 이 또한 답이 없으며 본인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한다면 상대방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사실이나 진실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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