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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전면에 내건 녹색당’이 아직까지 낯선 분들께

자유토론
작성자
하승수
작성일
2018-06-06 21:53
조회
5899

이 글은 녹색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인 신지예 후보가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자임하고 출마했습니다. 녹색당은 강령에서 “삶의 모든 부문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지향합니다”라고 명시하고 있는 정당이므로 녹색당의 후보가 ‘페미니스트 후보’를 표방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녹색당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 안팎에서 녹색당이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걸고 선거를 치르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신지예 후보가 성평등을 여러 의제들 중 하나가 아니라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원의 한사람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성평등은 여러 의제 중에 하나가 아니라, 변화를 위한 핵심의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녹색당이 성평등을 현 시점에서 핵심의제로 삼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녹색당은 그동안 정치에서 소외된 목소리들이 정치의 영역에서 터져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중요한 의제이지만 유독 정치의 영역에서는 소외되어 있던 의제들이 정치의 영역에서 진지하게 다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탈핵과 에너지 전환이 그렇고, 기본소득이 그렇고, 동물권이 그랬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성평등을 정치의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수정당이 어떤 중요한 의제를 정치의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의제를 우선순위에 두고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2012년 3월 녹색당이 창당할 때에 탈핵과 에너지전환을 내걸었습니다. 그 때 탈핵은 한국사회에서 정치의 의제가 아니었습니다. 녹색당은 탈핵을 정치의제로 만들기 위해, 원외정당이지만 탈핵기본법(안)을 만들어서 제안했고, 로드맵을 만들어 선거때에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돈도 없는 정당이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정당의 정책에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송전탑건설과 원전건설 현장에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중앙정치에서 진지하게 다뤄질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렇게해서 녹색당은 탈핵과 에너지 문제를 정치의 의제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가 탈핵으로 방향을 잡은 데에는 녹색당의 노력도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녹색당이 지난 2015년 3월 대의원대회에서 기본소득을 정책으로 채택하고 정치의 의제로 제기한 것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남시의 이재명 전 시장(이번에 경기도지사로 출마했습니다만)은 저하고 같은 토론회 자리에서 만났을 때, ‘기본소득은 녹색당이 제기한 건데’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성남시의 청년배당같은 정책이 도입된 것은 녹색당이 기본소득을 정치의제로 만들려고 노력해 온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동물권도 마찬가지입니다. 녹색당은 국회의원 1명도 없는 상태였지만, 동물보호단체들과 협력해서 동물보호법 개정, 동물원법 제정 등에 목소리를 내 왔습니다. 국회에서 여러 차례 토론회를 공동개최했습니다. 동물권을 헌법에 명시하자는 주장도 제기했고, 민법에서 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에 동물보호가 들어갔고, 다른 정당들도 녹색당의 주장을 정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말 못하는 동물의 목소리가 정치의 의제가 되는데에 녹색당도 기여를 해 왔습니다.

 

저는 성평등도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인 정치의제가 되지 못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성차별과 성폭력이 만연하고 시대착오적인 낙태죄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제들은 정치의 핵심의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미투운동이 일어나고, 성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데에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성평등을 핵심의제로 삼는 정당이 없다면, 저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참 절망스러웠을 것같습니다(실제로 얼마전 민주당 강원도당이 만든, 남성후보들로만 온통 가득찬 영상을 보았을 때에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신지예 후보가 나섰습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선거포스터에서 사용하고 성평등을 핵심정책으로 내걸었습니다. 저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녹색당이 그동안 해 왔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에서 소외되어 왔던 목소리를 정치의 의제로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녹색당이 정치의 의제로 만들려고 노력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은 그동안의 과정에서 증명되었다고 봅니다.

 

물론 녹색당이 성평등을 전면으로 내걸기에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진정성있게 노력은 해 왔습니다. 성평등을 정당조직내부에서 실현하기 위해 여성과반수 대표제를 창당때부터 실현해 왔습니다.

 

2012년 총선과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을 거치면서 여성후보들 비율이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처음에는 녹색당에서도 여성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2014년 지방선거만 하더라도 11명의 지역구 후보들 중에서 여성후보는 3명에 불과했습니다. 광역비례대표 12명은 모두 여성이었지만, 지역구 후보중 여성비율이 30%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2018년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의 지역구 후보 15명 중에 9명이 여성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낸 광역지방자치단체장 후보 2명(서울시장 후보 신지예, 제주도지사 후보 고은영)가 모두 여성입니다. 이런 변화는 여성과반수 대표제를 고집하고 성평등한 당내문화를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 내부에서 몇차례 성폭력 사건도 있었고, 그런 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점들 등 부족하고 미흡한 점들도 많습니다. 반성하고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녹색당은, 녹색당원들은 진정으로 성평등한 정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녹색당의 여성후보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성평등을 정치의 의제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 자랑스럽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여성도지사 후보로 고은영 후보가 등록해서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3%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내건 신지예 후보가 원외 정당의 불리함을 딛고 전체 지지율에서 1%를 넘어섰고 20대에서는 5%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지지 속에는 녹색당이나 후보 자체에 대한 지지도 있지만, 성평등을 정치의 의제로 끌어올리려는 진정성있는 노력에 대한 지지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이런 마음들이 모여 한국사회를 성평등이 실현되는 사회로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번 지방선거가 그런 계기가 될 것이고, 녹색당 후보들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아마 지방선거가 끝나면 녹색당은 더욱 성평등한 정당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성평등과 관련된 정책대안을 더 구체화하고 다듬어서 다른 정당들도 받아들이게 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탈핵과 에너지전환, 기본소득, 동물권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녹색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성평등을 핵심정책으로 내세운 것은 ‘정치에서 소외된 목소리를 정치의 의제로 만든다’는 녹색당의 기조에 정말 잘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녹색당은 한국정치에서 그런 역할을 계속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건 녹색당을 보면서 낯설어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낯설음 앞에 멈추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한 걸음을 뗀 사람을 보고 같이 한 걸음을 떼어 가면, 더 이상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긴 글이 되어서 송구합니다.

전체 4

  • 2018-06-09 17:18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2차를 맞이한 혜화역 시위를 보면서도 그렇고 페미니즘=성평등 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가집니다.
    성평등을 핵심정책으로 내세운다라는 말과 페미니즘을 핵심정책으로 내세운다라는 말은 요즘의 사회적 분위기나 혜화역 집회 참가자들의 분위기를 봐서는 전혀 다른 것 같거든요.
    페미니즘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지만, 페미니즘 역시 분파가 상당한 것 같은데 다 같이 뭉뚱그려 페미니즘이라고 묶어서 더군다나 그것을 성평등과 동의어로 분류하는 것은 다른걸 다 떠나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뉴스나 인터넷 게시판에서 보고 있는 현상은 아무리 봐도 성평등을 주장하는 이야기로 이해가 되지를 않거든요.


  • 2018-06-19 12:39

    성평등에 찬성하지만, 신지예 후보의 공약에 속한 낙태죄 폐지가 과연 성평등에 해당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녹색당 강령에는 '생명' 이라는 용어만 13번 나오고, 녹색이 상징하는 의미 역시 자연, 생명, 평화일진데 낙태에 대해 찬성하다니요? 농촌 지역의 녹색당원 가운데는 생명이 살아있는 농사를 짓고자 풀한포기 일부러 죽이지 않고 살아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번에 내세운 여성주의와 낙태죄 폐지 공약으로 서울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고 좋아하기 보다는 지역 풀뿌리 당원들이 실망하고 탈당하는 것도 좀 보았음 합니다.


    • 2018-06-20 09:21

      낙태(임신중지)와 낙태죄는 구분해서 볼 문제입니다. 낙태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일수록 낙태(그 나라에서는 불법으로 되어 있지만)율이 높은 것이 현실입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이구요. 오히려 낙태를 비범죄화하고 성교육, 성평등교육을 강화하고, 육아를 사회가 책임지는 국가일수록 낙태(임신중지)율이 낮습니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같은 국가는 낙태를 비범죄화하고 국가가 인정하는 병원에서 무상으로 시술을 하지만, 오히려 낙태율은 유럽에서도 낮은 편입니다. 또한 지금 낙태죄가 존치되고 있어서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겪고 있고, 제대로 된 의료지원를 받지 못해 건강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저는 생명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녹색당이기에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의 녹색당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최근 낙태금지 조항을 헌법에서 삭제하기로 한 아일랜드의 경우에도 아일랜드 녹색당이 낙태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안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아일랜드 녹색당의 관련된 페이지 링크를 붙입니다. https://greenparty.ie/policies/green-party-reproductive-rights-policy/


  • 2018-06-27 00:05

    통계에 기반한 결과론적인 접근 및 그 결과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낙태의 원인이 낙태죄의 존립보다는 극단적 이기주의, 윤리, 도덕률 인식과 성교육의 부재 , 양육에 대한 막대한 부담, 편부모 자녀에 대한 편견, 양육과 생계유지 병행의 어려움 등 다양한 요인의 결과 때문이 아닐런지요? 그러한 원인을 제거하고 극복하기 위한 정책에 대해서는 녹색당원 대부분이 찬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낙태죄 폐지와 관련해서는 충분한 토론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종속변수를 제외하고 하나의 변수로서 낙태죄 폐지와 낙태율 감소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는한, 살인죄 폐지는 사실상 살인에 대한 용인으로 이해되기 쉽상입니다. 이 때문에 제가 아는 녹색당원들도 반발하는 것이고요.

    서구 녹색당의 낙태금지 당론 사례를 들기 앞서서 유럽과 한국의 성교육의 질과 시간, 성평등 지수, 국가의 양육 부담률, 양육 수당, 편부모 가정에 대한 인식지수, 국가의 의료 및 교육 등 복지 수준을 먼저 비교하는 것이 적절해보입니다. 벼가 익지도 않았는데 불 부터 지피는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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