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anya escort izmir escort erotik film izle jigolo sitesi

당원게시판


아주 정치적인 녹색1 – 녹색당이냐 녹색정치블록이냐?

자유토론
작성자
하승수
작성일
2019-03-05 18:09
조회
646

이 글은 녹색당 창당과정에 관한 연재글입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컨셉은 아닙니다.^^ 녹색당이 창당을 준비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는 한국정치에서도 격랑들이 일었던 시기입니다. 세계적으로도 정치의 역동성이 커져 왔던 시기입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날로 심각해져가는 미세먼지와 기후변화를 경험해 온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기에 정치를 한다는 것은 고민과 선택의 연속입니다. 개인의 삶도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지만, 정당이라는 조직도 그러할 수밖에 없습니다. 녹색당이라는 정당이 창당하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숱한 선택의 순간들, 고민의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더 늦기 전에 기록하고, 이후 활동에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 글은 개인이 작성한 글이고 녹색당 전체의 의견은 아니므로, 녹색당 당원게시판에 연재하려고 합니다.

--------------------------------------------------------------------

<아주 정치적인 녹색1 – 녹색당이냐 녹색정치블록이냐?>

 

한국에서 녹색당을 만들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좌절의 연속이었다. 2002년 지방선거때 녹색평화당이 창당했지만, 곧 사라졌다. 2003년 4월에는 ‘녹색정치준비모임’이 결성되었고, 그로부터 이어진 ‘초록정치연대’도 녹색당 창당을 시도했지만, 5개 시ㆍ도에서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집해야 정당을 만들 수 있다는 정당법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녹색당은 창당조차 어렵다는 의견들이 지배적이었다. 유럽에서는 독일, 스웨덴 등지에서 녹색당이 연립정부에 참여했고,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핀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녹색당이 원내에 진입하여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한국에서 녹색정치의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면서 다시 녹색당에 관한 논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시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충격은 유럽정치에까지 영향을 주는 상황이었다. 2011년 3월 28일 치러진 독일 바덴-뷔르텐베르크 주선거에서는 독일녹색당이 24.2%를 획득하여 사상 처음으로 녹색당 주지사를 배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한국에서도 녹색당이 필요하고, 이제는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얘기들이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다. 그러나 회의론도 컸다. 그래서 2011년 6-7월을 거치면서 두갈래 흐름이 만들어졌다.

 

한 흐름은 녹색당을 창당하자는 것이었고, 다른 한 흐름은 녹색당을 창당하기보다는 기존 정당에 들어가 녹색정치블록을 형성하자는 것이었다. 전자는 일단 질러보자는 것이어서 농담삼아 ‘질러파’라고도 불렀다. 후자는 2012년 총선 때에는 기존 정당을 통해 녹색후보를 당선시키고 녹색정치블록을 형성한 다음에 녹색당 창당을 모색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환경.시민운동 내에서는 이 두 입장을 놓고 상당히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녹색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던 필자는 2011년 7월초에 열린 어느 토론자리에서 이렇게 발제했다.

 

 

“오히려 문제는 제도나 정치환경의 문제라기 보다는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녹색당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주체가 있느냐? 선거 때마다 단기적인 정치기획들만 난무하는 우리 현실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뚫고 나가면서 뚝심있게 새로운 정치시도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이런 주체가 있다면 녹색당은 시도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을 시작하려면, 무엇을 할 것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가 애매하면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다. 그래서 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그게 아닌 애매모호한 제안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만들려고 하는 정당은 녹색당이어야 한다.”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2011년 8월부터 녹색당 창당준비를 위한 실무작업에 들어갈 것을 결의했다.

 

반면에 신중론의 입장에 서 있던 쪽에서는 녹색정치포럼을 결성하고 2011년 7월 26일 프란체스코 교육회관에서 공개토론의 자리를 열었다.

 

당시에 포럼 발제문 중 한 대목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녹색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상당한 무리가 발생한다. 가치 차원에서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라는 입장에서는 전반적으로 동의되나 현재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열망은 연대와 통합에 있고, 환경운동세력도 이에 대한 공감과 책임이 있기 때문에 독자행보는 무리가 따른다.

 

또한 녹색당을 만들 수 있느냐와 총선에서 후보가 당선 가능할 수 있느냐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즉 필요성이나 논리적 부정이 아니라 현실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녹색당을 지지할 수 있는 토대가 불명료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독자정립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2012년의 녹색정치의 목표는 녹색당이 아닌 녹색후보를 출마시켜 교두보를 확보하는 단계이다(박진섭, 자료집 24쪽)”.

 

녹색당 창당을 둘러싼 이 두가지 입장은 서로 접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은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녹색당 창당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2011년 8월 17일 경기녹색정치준비모임을 시작으로 지역별 준비모임을 갖고, 창당발기인 모집작업(중앙당 창당발기인 200명)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2011년 10월 30일 서울 선유도 공원에서 창당발기인대회를 갖고, 녹색당 창당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기존 정당에 들어가 녹색정치블록을 만드는 것을 모색하던 녹색정치포럼은 그 이후에 뚜렷한 활동을 이어가지 못한다. 녹색정치포럼의 핵심 구성원중 일부는 2011년 10월 서울시장으로 출마한 박원순 시장 캠프로 들어가거나 민주당으로 들어가게 된다.

 

녹색당은 창당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극복하고 2012년 3월 4일 창당에 성공하지만, 곧이어 치러진 총선에서 0.48%(10만3,811표)의 정당득표를 얻는데 그쳐서 등록이 취소되는 시련을 겪는다. 그리고 그 이후 재창당 과정을 거쳤고 이제 만7년이 되었다. 5,000명의 당원을 모으기가 정말 어려웠지만, 이제 당원수도 1만명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원외정당이다.

 

과연 2011년에 녹색당 창당을 둘러싼 두 개의 의견 중 어느 의견이 옳았을까? 아직은 최종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11년에 창당을 하지 않았다면, 그 이후에도 녹색당 창당은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낀 절박함, 그리고 더이상 기득권 정치에 기대할 것이 없고 새로운 정치를 모색해야 한다는 갈망이 2011년에는 여러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길은 만들어가는 것이고, 어차피 없는 길을 처음에 만드는 사람들은 뜻을 가진 사람입니다(경기녹색정치준비모임 제안문 중에서)”

 

 

** 첨부파일 : 2011년 7월 26일 녹색정치포럼 자료집

 

** 이어지는 글의 제목들만 소개합니다.

 

  • 당명을 둘러싼 논쟁 : 녹색당인가, 녹색사회당인가?
  • 단일이슈 파티라는 오해를 넘어서
  • 강령과 당헌의 작성과정 : 추첨제 대의원, 여성과반수 대표제, 청년녹색당의 탄생
  • 2012년 총선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
  • 생소한 선거법, 돈없는 것도 서러운데 마이크까지 빼앗기고
  • 녹색당을 포기 못하다보니 ‘녹색당 더하기’가 탄생
  • 재창당대회의 복병, ‘반(反) 정당의 정당’
  • 창당이후 처음 맞는 대선, 어떻게 해야 하나?
전체 0

iddaa Siteleri Milanobet Canli Bahis Vegabet Mac izle kacakbahisyeri.com istanbul escort istanbul esc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