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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정치적인 녹색2 : 당명은 녹색당? 녹색사회당?

자유토론
작성자
하승수
작성일
2019-03-07 18:56
조회
595

녹색당 창당준비과정에 기존 진보정당 경험이 있는 분들도 일부 참여를 했지만, 필자같은 경우는 정당 자체를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주변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같은 정당의 당원들이 있어서 정당의 운영에 대해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지만, 옆에서 보는 것과 직접 해 보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한마디로 정당을 창당한다는 것은 대규모 종합예술에 가까운 일이었다. 알아야 할 것과 생각해야 할 것이 많고, 다양한 의견들을 조율해야 했으며, 실무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래서 창당 실무를 맡고 있던 한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서 정당을 창당해본 모든 사람들을 존경하겠다'는 말을 혼자말로 하던 시절이었다(물론 이 다짐은 엉터리같이 정당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안 후에 버렸지만).

 

어쨌든 시민단체를 만드는 것과 정당을 창당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시민단체야 천천히 만들고 확장해가도 되지만, 정당은 정당법상 창당발기인대회를 하고 나서 6개월 내에 창당을 마무리하도록 되어 있었다(정말 말도 안되는 조항이다).

 

6개월 내에 5개 이상 시.도에서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으고, 강령과 당헌 등을 합의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미션임파서블에 가까웠다.

 

어쨌든 경기, 서울, 부산 등 지역에서부터 준비모임들이 꾸려지면서 창당발기인대회 날짜를 잡게 되었다. 창당발기인은 200명만 모으면 되기 때문에 좀 가볍게 생각했다.

 

5천명이라는 숫자는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200명 정도는 쉽게 모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산이었다. 만들어질지도 불확실한 정당의 발기인이 되어 달라는 요청에 금방 호응이 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2011년 10월 30일이었던 창당발기인대회에 임박해서야 겨우 200명을 채울 수 있었다.

 

드디어 창당발기인대회가 시작되었는데, 형식적인 발기인대회가 아니었다. 정당의 명칭에서부터 발기취지문, 규약, 대표자 및 사무책임자 선출까지 당일에 결정해야 했다.

 

전국에서 113명이 참여해서 시작된 발기인대회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는 정당의 명칭이었다.

 

발기인대회를 준비한 사람들은 일단 녹색당으로 제안했지만, 현장에서 다른 명칭들이 제안되었다(준비과정에서는 ‘초록당’으로 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녹색사회당, 녹색평화당, 풀뿌리녹색당이 현장에서 제안되었고, 토론을 거쳐서 표결을 하게 되었다.

 

녹색당과 가장 치열한 경합이 예상되었던 당명은 녹색사회당이었다. 녹색사회당은 진보정당 내에서도 제안된 적이 있었던 명칭이었다.

 

잠깐 녹색당이 창당되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 2008년 민주노동당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당이 된다. 그런데 2011년에 민주노동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의 통합논의(통합진보당으로의)가 있었는데, 2011년 9월의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통합안이 부결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면서 진보신당에 있던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 전.현직 의원 등은 진보신당을 탈당해서 통합진보당에 합류하는 복잡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혼란스런 진보대통합 논의의 과정에서 진보정당 내부에서 녹색정치를 지향하던 분들 중 일부는 녹색당 창당에 참여하기도 했다(기존의 진보정당 내부에도 녹색정치를 지향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진보신당의 경우에는 2008년에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창당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10월 30일 창당발기인대회에서 새로 창당할 정당의 명칭으로 녹색사회당이 제안되었던 것이다. 당시에 녹색사회당을 제안한 분들의 문제의식은 녹색+사회(적색)의 결합이 앞으로 만들 정당의 정체성이므로 녹색사회당이 가장 적합한 명칭이라는 것이었다.

 

생태위기와 경제.사회적 불평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므로 녹색당이 같이 극복해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녹색사회당이라는 명칭을 제안한 분들의 문제의식에 공감되는 면들도 많았다.

 

그러나 정당의 명칭은 반드시 녹색당이어야 한다는 의견도 강력했다. 세계적으로 녹색당은 green party라는 영문명칭을 대체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녹색’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단순히 환경보호 정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위기와 불평등을 극복하고 공생(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세계녹색당 헌장(Global Grees Charter)이나 각국의 녹색당 강령.정책을 보더라도, 녹색당은 차별.불평등을 극복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정당이었다.

 

 

(필자의 능력부족으로 당시에 각 당명을 주장한 분들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한다).

 

 

어쨌든 창당발기인대회 현장에서 각 명칭을 제안한 분들의 취지설명 이후에 표결을 하게 되었다. 표결 결과, ‘녹색당’이 113명의 참석 발기인 중에서 가장 많은 76표를 얻어서 당명으로 채택되었다.

 

만약 지금 당원들에게 물어본다면, 어떤 명칭을 더 선호할까?

 

어쨌든 녹색당이라는 당명이 채택되는 과정에서 이런 토론이 있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 ‘녹색당’이 차별.불평등을 극복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문제의식을 명확하게 잡고 가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토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녹색당이 채택되고 난 후에, 녹색사회당 등 다른 명칭을 제안한 분들도 결과를 받아들였다.

 

한편 당시에 있었던 진보대통합 논의는 결국 2011년 12월 6일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진보신당 탈당파가 통합진보당으로 합치는 것으로 결론내려졌다.

 

이런 진보대통합 논의의 와중에도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는 5개 이상 시.도에서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집하고, 강령과 당헌을 완성하는 작업을 추진해갔다. 그러나 12월까지도 당원이 1,000명선에 그치는 힘겨운 상황이었다.

 

 

** 진보정당 내부에서 ‘녹색사회당’을 제안했던, 김현우님이 2011년 11월 녹색당 창당을 외부에서 응원하는 글을 <레디앙>에 기고했는데, 이 글의 중간에 녹색사회당에 대한 언급이 있다. 당시 논의를 이해하는데 참고가 될 것이다.

http://www.redian.org/archive/39092

 

 

<사람들>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한 사람들을 일일이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초록정치연대의 후신인 ‘초록당사람들’은 2011년 8월 27일 총회를 거쳐서 녹색당 창당에 참여하기로 결의했고, 환경운동, 풀뿌리운동, 여성운동을 해 오던 여러 활동가들도 녹색당 창당에 참여했다. 진보정당 내부에서 녹색정치활동을 해 오던 분들중 일부도 녹색당 창당에 참여했다.

 

창당발기인대회에서 운영위원장(대표자)으로는 이현주 당원(서울 강서양천)이 선출되었고, 사무책임자는 필자가 맡게 되었다.

 

초기 창당준비작업을 시작하고 창당발기인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실무그룹이 만들어졌다. 초기 실무그룹에는 이보아, 이강준, 장정화, 김현, 고이지선 당원이 참여해서 쉽지 않은 창당실무작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필자도 실무그룹의 일원이었다.

 

 

<이어질 글들>

  • 단일이슈정당이라는 오해를 넘어서
  • 강령과 당헌의 작성과정 : 추첨제 대의원, 여성과반수 대표제, 청년녹색당의 탄생
  • 2012년 총선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
  • 생소한 선거법, 돈없는 것도 서러운데 마이크까지 빼앗기고
  • 녹색당을 포기 못하다보니 ‘녹색당 더하기’가 탄생
  • 재창당대회의 복병, ‘반(反) 정당의 정당’
  • 창당이후 처음 맞는 대선,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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