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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정치적인 녹색6 : 마이크도 쓰지 못하고 얻은 103,811표

작성자
하승수
작성일
2019-04-16 18:31
조회
135

녹색당 창당스토리 6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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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4일 창당대회에서 이현주, 김석봉 두 분이 공동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필자가 사무처장을 맡았다.

 

그리고 창당대회를 전후해서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과 당원투표가 진행됐다.

 

비례대표로는 이유진, 유영훈, 장정화 세 분이 확정되었고, 그와는 별개로 두 군데 지역구 후보(부산 해운대.기장을 구자상, 경북 영덕.영양.울진.봉화 박혜령)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창당하고 1달후에 총선을 치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선거를 체계적으로 준비할 시간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많은 당원들이 특별당비를 냈고, 자원봉사하는 당원들이 영등포에 있는 녹색당사에서 밤늦게까지 불을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구 후보가 나간 지역을 제외하고는 마땅하게 선거운동을 할 방법이 없다는 데 있었다. 비례대표 후보 유세금지 조항이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선거법상 비례대표 후보는 유세차량, 마이크 등을 쓸 수 없게 되어 있는 악법조항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정당경험어 없었던 필자같은 경우에는 이런 조항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막상 창당을 하고 선거에 돌입하려고 하자 이런 조항이 걸림돌이 됐던 것이다(이 조항에 대해서는 녹색당이 헌법소원을 해서 2016년에 헌법재판관 5명이 위헌이라고 판단을 했으나, 위헌요건인 6명에 1명이 모자랐다. 작년 11월에 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황인데, 이번에는 위헌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런 법적 제약 때문에 소수의 당원들만 비례대표 후보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해서 피케팅 정도를 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답답한 비례대표 후보자들은 대학으로, 지역으로 가서 마이크도 없이 선거운동을 했다. 그러나 한계는 명백했다.

 

독일녹색당은 창당초기에 후보자들이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유세버스를 만들어서 선거운동을 다녔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당시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1번이 원자력공학자였는데, 고리1호기 수명연장에 관여했다는 것을 밝혀내서 경향신문 1면에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많은 당원들은 지인들에게 전화와 문자로 지지를 호소했다. 당원들이 어렵게 모아준 특별당비로 전체 가구중 70% 정도에 1장짜리 공보물을 보냈다.

 

그러나 이런 선거운동방법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지를 알 방법이 없었다. 여론조사기관에서는 신생정당을 정당지지도 조사 대상에 넣어주지 않았다. 그러니 객관적인 지표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2012년 4월 11일 밤에 나온 선거결과는 0.48% 정당지지율에 103,811표의 득표를 한 것이었다. 막상 결과를 받아보니 앞이 캄캄했다. 당장 내일 녹색당은 등록취소가 될 상황이었다.

 

선거결과가 나오고 무거운 마음으로 컴퓨터앞에 앉았다. 당시 선거실무를 총괄했던 사무처장으로서 글을 썼다. 내 인생에 가장 쓰기 어려웠던 글이었던 것같다.

 

 

“4.11 총선이 끝났습니다. 녹색당이 거둔 성과는 미약합니다. 선거를 책임졌던 한 사람으로서 가슴깊이 성찰을 합니다. 그리고 모자람을 인정하고, 다시 출발하고자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103,811 명의 유권자들이 신생정당인 녹색당을 선택해 주셨습니다. 녹색당을 지지해 주신 분들은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녹색당에 표를 주셨습니다. 이 씨앗을 잘 가꾸겠습니다.

녹색당은 득표율 2%에 못 미쳐서 정당등록이 취소되지만, 녹색당의 실체라고 할 수 있는 7천명의 당원들과 녹색당을 지지해주신 103,811명의 유권자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확산되고 더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한국에서 녹색당은 이제 첫 발을 뗐습니다. 여기까지 온 것도 풀뿌리 당원들과 녹색당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이제 첫 발을 뗀 녹색당이 20년, 30년을 올곧게 가는 정당이 될 수 있도록, 녹색당에 대해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2012년 4월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녹색당의 정당등록이 취소됐다는 공지를 했다.

 

녹색당은 ‘지지율이 2%에 못 미치면 정당등록을 취소’하는 정당법의 악법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준비하기로 했다. 같이 등록을 취소당했던 진보신당, 청년당과 함께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재창당 준비에 들어갔다. 시일이 너무 촉박했기 때문에 더 많은 토론이 필요했던 강령과 당헌에 대해서도 수정.보완하는 토론을 이어가기로 했다. 당규제정 등 정당으로서 필요한 일들도 진행하기로 했다.

 

다행히 총선을 거치면서 녹색당은 정당으로서 최소한의 존립기반은 마련할 수 있었다. 당원들이 내는 당비가 매월 들어오고 있었고, 그것으로 빠듯하게나마 살림을 꾸려갈 수 있었다(총선직후에 파악하니 당비납부정보를 제공한 당원숫자는 4,900명이 조금 넘었고, 매월 당비가 3,000만원 정도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2012년에 파푸아뉴기니 총선이 있었는데, 우리 살림도 어려웠지만 파푸아뉴기니 녹색당의 총선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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