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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게시판


사과문

작성자
ojaeseok
작성일
2017-01-15 10:11
조회
2675

사과문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전국상벌위원회 「2016-벌-06호」에 대한 심의로 제소된 前 청년녹색당 5기 운영위원 오재석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2016-벌-06호」 사건의 피해자에게, 그리고 청년녹색당의 사퇴한 당직자로서 청년당원들과 다른 모든 당원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 점 등에 대하여 사과를 드리고, 이 모든 과정 전반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마지막으로 당을 위하여 한 말씀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우선 사과가 늦은 점, 사과드립니다. 이미 11월경, 피해자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은 했었으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때 당시 나름대로는 상벌위원회 심의를 거쳐 징계가 확정되기 전에 감형을 받으려는 모든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는 이유로 합리화를 하였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피해자의 심리를 전혀 제1순위로 고려하지 않은 행위임이 명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여전히 이타적이라는 합리화를 하면서 가장 이기적이었던 것입니다. 또 지난 12월 30일 상벌위원회의 결정이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신속히 사과문을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점 먼저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상벌위원회는 「2016-벌-06호에 대한 심의 결정」에서 제가 피해자에게 위로와 의지가 되었으며, 가해자를 두둔하는 회의 분위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등 사건 해결의 공정성을 위해 노력한 바를 인정하여 다른 대응기구 구성원보다 낮은 ‘경고’를 결정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은 다른 여러 사실관계로 미루어 볼 때 징계수위의 다소 과도한 경감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결과적으로 2차 피해를 유발한 대응기구 혹은 운영위원회의 결정을 단 한 건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선출직 운영위원으로서의 매우 막중한 책임입니다.

상벌위원회는 대응기구가 피해자에게 보낸 ‘자살위협’ 문자와 운영위원회가 피해자에게 사과요구를 한 것을 직접적인 2차 피해로서 명시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이 두 가지를 막지 못한 책임은 매우 막중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 결정이 이루어지던 당시 저는 일용직 노동자로서 택배 상차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와는 달리 일용직 노동자였던 저는, 저 자신의 일정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선출직 당직자로서 피해자의 구제가 아니라 돈을 제 삶의 1순위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는 명백한 가치전도이며, 당직뿐만 아니라 당원자격이 정지되어도 할 말이 없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저의 개인적인 회계장부를 보면, 제 통장에는 6월 27일 당시 총 526,572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금액이라면 저로서는 적어도 한 달 반은 너끈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는 그 시간에 피해자 구제에 전력투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벌위원회 심의에 출두하여 소명할 때에는 이런 것들을 근거로 저의 징계수위를 경감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녹색당원으로서 그렇게 한 것이 참으로 부끄럽고 후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상벌위원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자숙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스스로 당원자격을 박탈하려 합니다. 그러니까 이 글은 저의 탈당의 변도 대신하는 셈이지요.

다만, 저는 상벌위원회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 깊은 의문이 있습니다. 제가 파악하고 있는 여러 사실관계로 따져 보아 이해가 되지 않는 몇 가지 결정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사와 징계권한이 부여되어 있는 상벌위원회라면 마땅히 누군가의 의지가 아니라, 무엇보다 사실관계에 입각하여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객관성이 담보되고, 당원들은 상벌위원회를 신뢰할 것이며,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벌위원회는 이번 위기를 어떻게든 모면하려고 너무나도 정치적인 결정을 내린 것만 같습니다. 「2016-벌-06호에 대한 심의 결정」 문서에 따르면, 피해자가 저의 징계를 원치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피해자가 원치 않았다면 이를 어느 정도 고려하여 징계수위가 약간은 조정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실관계에 입각한 판결로부터 부수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지, 판결에 있어서 전반적인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상벌위원회는 객관적인 사법기구로서의 신뢰를 잃고 피해자의 복수를 대리 수행하는 기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반적인 사실관계를 두루 알고 있는 저로서 판단하기에 이번 결정은 두루 보아 지나쳤습니다. 사실관계에 입각하여 볼 때, 잘못의 경중이 어긋나게 판결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벌위원회는 「2016-벌-06호에 대한 심의 결정」에서 잘못된 사실을 적시하였습니다. 상벌위원회는 본 문서에서 “피제소인들은 당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혼자 오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대응기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호소하지만, 이때 대응기구가 무력해졌던 이유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혼자 오라고 해서가 아니라, 당시 대응기구 구성원이 가해자와 함께 식사 중이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함으로써, 당시 대응기구 구성원 모두가 가해자와 함께 식사 중이었다는 듯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비록 상벌위원회는 “구성원들”이 아니라 “구성원”이라고 표기하였으니 단수라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언어는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입니다. 한국어에서 복수 표현이 따로 없는 한 단수 또는 복수의 가능성이 모두 있으며, 본 문장은 맥락상 복수로 밖에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의 개인 일지를 살펴보면, 저는 당시 운영위원이었던 비○우, 스○렛, 김○진 당원과 함께 김밥천국 경복궁역점에서 19시 25분부터 20시 3분까지 식사를 하였던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날 비건인 비○우 운영위원을 따라 저는 검은콩국수(5,000원)를 주문하였다는 사실까지 제 일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사실들을 이렇게 세세한 정도까진 아니지만 간략하게 요약하여 상벌위원회 소명자료로 제출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벌위원회는 마치 대응기구 구성원 모두가 가해자와 함께 식사를 한 것처럼 서술해놓았습니다. 이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허위사실 기재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볼 때 저는 상벌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고 재심을 청구해야 합니다. 징계수위에도 문제가 있고, 사실관계에도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의제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의제기를 할 경우 피해자의 고통이 가중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또 하나의 변명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의제기 기간도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제게는 당원자격의 자진 박탈이라는 마지막 선택이 남아 있습니다. 혹시라도 말리지 말아주십시오. 여하간 저에게는 한동안 자숙하고 성찰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한동안’이 언제까지가 될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전국 공동운영위원장 김주온 당원에게도 사과합니다. 떠나기 전 전국당에 대한 당부도 몇 마디 남기려고 합니다. 지난 12월 14일 전국당의 요청으로, 청년녹색당의 후속조치에 대한 문제 때문에 전국 사무처장 고이지선 당원과 공동운영위원장 김주온 당원을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청년녹색당 운영위원회 총사퇴 후 미완의 상태에 있던 일들에 대하여 전달하던 중, 김주온 공동운영위원장께서는 저에게 매우 격한 어조로 “지금 그런 말씀을 하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말씀을 하셨고, 저는 거기에 대해 너무나 당당한 자세로 일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그렇게 했던 것은, 12월 11일 상벌위원회 출두소명 당시 상벌위원회를 통하여 ‘피해자가 저에 대해서만큼은 징계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인데, 지금 생각하면 제가 너무나도 오만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녹색당의 미래를 위한 당부

다만 녹색당을 위하여, 전국당 당직자들께는 한 가지 당부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사건 전반을 살펴본 사람으로서 미루어 판단해보건대, 이번 사건은 단순히 몇몇 당직자들이 “젠더감수성”이 부족해서 벌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흔히들 말하는 조직보위주의나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도 아닙니다. 이번에 징계를 받은 다른 모든 당직자들께서는 저보다 성평등주의 공부도 더 많이 하셨고, 결코 저보다 젠더감수성이 부족할 분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또 대개는 저보다 당직 생활도 오래 하셨고, 당원 생활도 오래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2016-벌-06호」의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당사자로 지목, 거명하였고, 또 상벌위원회를 통한 징계수위 또한 저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저보다 젠더감수성이 충만한 분들이 그런 판결을 받으셨다는 것 자체가 실은 모든 의문의 단초가 되어야 합니다.

상벌위원회의 판결 후, 저는 과거에 제가 몸담았던 한 조직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거기서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저 혼자 생각해본 뒤에 아직 그 조직에 남아있는 후배들에게도 어떻게 했을 것 같은지 물어보았습니다. 결과는 거의 비슷했습니다. 과정 전체를 시뮬레이션 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 조직에서는 피해사실의 식별부터 피해자의 심리지원, 피의자의 가해사실 확인과 가해자가 자백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그에 합당한 책임을 받게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다 그려졌습니다. 이 조직은 물론 성폭력 사건 발생 시 대응 지침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고, 전혀 성평등주의를 전면에 표방하는 조직도 아니었으며,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도 아니었고, 그냥 일개 종교조직이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직에서는 조직의 구조와 조직이 키워내는 구성원의 특성상 결코 피해자를 방치하지 않으며, 가해자 역시 결코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이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저는 이것이 책임의 문제라고 봅니다. 책임지지 않는 개인주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인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고 말할 때에는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조직은 결코 “좋은 구조”만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연료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으며, 아무리 건강한 신체라 해도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을 쓸 수 없듯이,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조직도 책임지는 개인이 없으면 굴러가지 않습니다. 조직과 개인은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상호 보완적입니다. 조직은 구성원 개인이 있기에 존재하며, 조직 구성원 역시 조직이 있기에 존재합니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단순히 개인의 책임을 방기하기 위해서 조직이나 구조의 탓을 하거나, 혹은 조직의 보위를 위해서 개인의 탓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우리의 신념에 의해서 규명되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사실관계 규명과 구성원들의 솔직한 토론에 의해서만 규명됩니다. 문제의 원인이 신념에 의해서 규명되는 순간, 조직은 사이비종교가 되고, 인지부조화에 빠집니다. 제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것이 청년녹색당이라는 조직의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녹색당은 책임지는 당직자를 길러내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직자 개인의 책임성을 기르는 것에도 실패하고 있지만, 당직 후보자의 책임성 검증에도 실패하고 있고, 누군가에게 책임이 과도하게 주어졌을 때 그것을 분산시키는 것에도 실패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전체 당직자 수에 비해 당직 업무량이 과도하게 많습니다. 이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녹색당은 강령에서 표방하는 바와 달리 “전혀 풀뿌리 조직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은 풀뿌리 단위의 조직이 튼튼할 때에만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녹색당에는 학벌이 좋은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 역시 녹색당의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왜냐고요? 대한민국 사회는 학벌주의 사회이고, 학벌이 좋다는 것은 약육강식의 세계 대한민국이 인증한 “모범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정작 자신은 제도권의 혜택을 받고 살아왔으면서 그 사실은 은연중에 부정하며 성평등주의든, 인권이든, 정치든, 아나키즘이든, 그 외 녹색 가치의 무엇이든 책으로만 배운 사람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모범시민”이 많다는 것은 부르주아 혁명에는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녹색당이 말로만 표방하는 “소외당한 모든 이들을 위한” 혁명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됩니다. 혁명에 “모범시민” 따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범시민”이 아니라 용서받은 죄인이 되어야 합니다.

“당부”라고 했지만, 제가 너무 훈계조로 이야기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만일 그런 태도가 느껴진다면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다만, 떠나가기 전에 그래도 해야 할 얘기는 해야겠다 싶었습니다.(단호) 회자정리요, 거자필반 이라 하였으니 또 한 사람 떠나간다고 너무 서러워는 마십시오. 어차피 비슷한 생각을 하며, 꾸준히 실천을 하며 살아가다 보면 같은 현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모쪼록 안녕히 계십시오.

2017년 1월 15일

오재석 드림.

전체 2

  • 2017-01-15 16:32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 혹시라도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당을 떠날까, 말까 고민하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만 더 버텨주십사 부탁드립니다. 떠나는 사람이 할 얘기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결국 조직은 남아서 책임지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이상은 있되 책임질 생각이 없는 사람들의 모임은 뭉쳐질 수가 없습니다. 그 모임은 사실 이익집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당원 모두의 책무입니다. 내가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 한, 녹색 미래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미래도 결코 도래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당원끼리는,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찰하지 않는 조직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비판할 때 하더라도 당원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에, 제가 몸 담았던 청년녹색당은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 2017-01-20 16:58

    ojaeseok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이런 인재가 또 녹색당을 떠난다니 안타깝습니다. 진솔한 말씀과 책임의식에 참으로 감탄헸습니다. 녹색당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지적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