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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게시판


3. 기다리는 동안에도 씨앗은 살아있다 (수원 찻집) by 보코

작성자
녹색당 전국사무처
작성일
2018-05-15 10:29
조회
512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오후, 수원으로 향하는 길에 읽은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씨앗은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안다. 대부분의 씨앗은 자라기 시작하기 전 적어도 1년은 기다린다. 체리 씨앗은 아무 문제없이 100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각각의 씨앗이 정확히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그 씨앗만이 안다. 씨앗이 성장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 그 기회를 타고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듯 싹을 틔우려면 그 씨앗이 기다리고 있던 온도와 수분, 빛의 적절한 조합과 다른 많은 조건이 맞아떨어졌다는 신호가 있어야 한다.”
- <랩 걸 Lab Girl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중에서

수원시(우만1·2동/인계동/행궁동/지동) 시의원 예비후보로 출마한 녹색당 한진희 후보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식사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찻집에서 보자고 했다. 카페도 아닌 찻집이라니. 너무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가 새삼스러웠다. 차에서 책을 읽다가 까무룩 졸았는데 눈을 떴을 땐 약속 시각이 임박해 있었다. 빗줄기가 출발할 때보다 굵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차도 막히기 시작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조금 늦겠다는 양해의 문자를 보냈다.

그녀의 답장은 신속했고, 다정했다.


비오는 날 데이트 하러 가는 기분

그녀가 소개해 준 찻집은 골목 사이에 숨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고즈넉한 공간 특유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벽면은 오래전 개봉한 영화 포스터로 가득했다. 제각기 모양이 다른 찻잔과 나무 테이블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찻집의 구석에 앉아있던 그녀는 나를 발견하더니 싱그럽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이 일었다. 흑백 풍경들 사이로 그녀만 선명한 유채색을 띠었다.


진짜 아는 사람만 올 수 있는 골목길 찻집. 멀리 시인농부라는 간판이 보인다.

대뜸 이런 곳을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그녀는 이 찻집을 고등학교 때부터 다녔다고 했다.

“저는 수원에서 초중고를 나왔는데요. 여기는 구전으로 알려지고 방문이 전승되는 곳이에요. 고등학교 때 선배 언니들이 저를 데려 와줬고 저도 선배가 되었을 때 많은 이들을 데리고 왔죠. 제가 또 커피를 안 마셔요. 여기 감주가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거든요. 그래서 더 자주 오게 되기도 해요. 나름 제 아지트인데… 입소문 나서 사람들이 관광하듯 오면 조금 슬플 것 같기도 하지만, 큰 맘먹고 소개해드려요.”

 
그녀가 큰 맘을 먹기엔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이 찻집은 홍상수 영화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에도 등장한 적이 있다.

친구들과 찻집을 드나들던 소녀의 꿈은 국제개발 NGO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삶의 무대는 한국이 아니라 세계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즈스탄이라는 곳으로 해외자원활동을 떠났다. 파견을 나가 있는 동안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키르기즈스탄의 평온한 풍경과 마음속 슬픔의 괴리를 꽤 오래갔다.

파견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여전히 길 위에 있었다. 국외가 아닌 국내에서도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정치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조직된 시민의 힘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쯤 녹색당을 만났다. 2015년 당원이 되자마자 바로 당직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최근에 ‘명랑한 정치’를 하겠다며 출마의 변을 내걸었다.

“당직자일 때 이런 말을 많이 하고 다녔어요. 공부를 많이 하거나 돈 많은 사람만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보통의 양심과 상식으로 일상에서 정치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당위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다녔는데 지방선거가 다가오니까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죠. 시의원의 역할이 수원시의 문제를 알려내고 주민들이 느끼는 일상의 불편함을 정치적으로 고민해 제도로 만들고, 행정부를 견제하고, 세금이 잘못 쓰이지 않도록 하는 거잖아요. 저는 모두가 YES라고 할 때 아닌 건 NO라고 말할 수 있는 배짱 정도는 있겠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출마를 결심하면서 말로만 하던 것들이 피부로 와 닿는 이야기가 되었어요.”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찻집의 내부. 다녀간 사람들의 손글씨가 여기저기 나부낀다.

우리는 나름 초면이었지만 나는 그녀를 스치듯 본 적이 몇 번 있다. 세월호 참사의 분노를 나누던 광화문에서,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던 경복궁에서, 탈핵을 외치며 행진하던 거리에서. 그녀는 요즘 수원의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예비 후보 명함을 나눠주느라 바쁘 댔다.

“요새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뭔 줄 아세요? ‘몇 살이야?’, ‘결혼했어?’, ‘어린것이 무슨 정치야?’, ‘여자가 시집을 가야지!’”

어휴. 여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의 표정이 떠올라 입을 꾹 다물고 싶어 졌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런 말들을 마주하면 저도 대꾸해요. ‘이제 젊은 사람도 정치해야죠’, ‘제가 후보 맞아요. 여성이 정치해야죠’ 하고요. 지금 수원시의회 평균 연령이 53세거든요(한숨). 근데 수원시가 인구 대비 39세 이하 청년 비율이 서울보다 높아요. 전국이 22%, 서울이 25%, 수원은 26% 이거든요.”

각종 통계 수치가 그녀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

“저의 출마도 수원시에 사는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목소리를 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미투 운동도 그동안 만연해 왔던 문제들이 터진 거고. 본연으로 돌아가려는 자정의 목소리이자 저항의 목소리잖아요. 청년은, 여성은, 특히 청년 여성은, 우리는, 존재해왔는데 정치적 영역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지워져 버린 목소리들이었어요. 저의 출마나 도전을 보고 정치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더 많은 청년 여성들이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감주 나는 생강차 찐 감자는 서~비~스

그녀와 대화를 마치고 찻집을 나가는데, 나이를 지긋이 먹은 듯해 보이는 여자가 그녀를 붙잡았다. 30년이 넘게 한 곳에서 찻집을 운영해왔다는 나이 든 여자는 동네에서 정치하고 싶다는 젊은 여자의 두 손을 꼭 쥐며 비닐봉지를 건넸다.

“선거 끝나기 전에 두어 번 더 들려요. 감주랑 생강차 더 줄게. 선거 운동하면서 지치면 안 되니까.”

과연 단골 인증이군요, 허허헛 웃으며 우리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저 읽으려고 꺼낸 책의 페이지는 이런 문장으로 끝났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씨앗은 살아 있다. (중략) 그들은 모두 그다지 가망은 없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절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기회를 기다린다.” 

반짝이고 영롱한 미래를 꿈꾸던 소녀의 재잘거림이 귓가를 스쳤다. 지치지 않고 기회를 기다려 온, 언젠가 머지않은 미래에 꽃을 피우게 될 새싹의 과거, 그 씨앗을 만나고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녹색당 수원 시의회 한진희 후보가 추천한 곳들
시인과 농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96번길 8)

 

수원 팔달문 근처에 있다. 지도 어플을 켜고 가도 쓱 지나치기 쉬우니 눈을 크게 뜨고 찾아가자. 커피는 없다. 대신 주인이 직접 만든 감주, 수정과, 매실차, 오미자, 대추차, 산수유, 모과차, 생강차를 6000~7000원 가격으로 맛볼 수 있다. 흔히 맛보기 힘든 참빗살나무, 국화, 삼백초, 찔레 등 야생 수제차도 매력적이다. 오래된 서적, 음반, 영화의 분위기에 취하기 좋은 곳.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 수 있으니 주의 요망. 

크로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81-13) 

수원 남문 안에 있는 주점이다. 한진희 후보는 시인과 농부 찻집과 분위기가 비슷해서 좋아한다고 했다. 올드한 감수성 풍만한 자들이라면 편하게 즐기기 좋을 듯. 코다리찜이 굉장히 맛있다고 한다.

수원 화성 성곽길 (경기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320-2)

한진희 후보는 머릿속이 복잡할 때 성곽길을 따라 쭉 걷는 댔다. 그녀만의 산책길은 지동시장에서 시작해 지동 골목길을 따라 성곽과 나란히 걷는 코스. 마을 안을 따라서 걸을 수 있다고 한다. 소담 소담한 정겨운 집들을 보면 복잡한 생각도 쓰윽 날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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