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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게시판


[당원,당원을 만나다 시즌2]내 생애 첫 정당, 녹색당

작성자
녹색당 전국사무처
작성일
2016-07-07 15:07
조회
4805

내 생애 첫 정당, 녹색당

인터뷰이 - 김은익 당원

인터뷰어- 전국사무처 전푸르나, 녹색당원 김지연

내 생애 첫 정당, 녹색당

이번 총선 이후 녹색당에 가입하신 분들 중에 녹색당이 첫 정당인 분들이 많은데, 나이 드신 분들은 드물어요, 어떻게 녹색당에 가입하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나이 들어서, 그것도 녹색당처럼 진보적인 정당에 가입하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제가 올해 50이 되거든요, 만약에 성향대로라면 예전에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과 같은 정당에 가입을 했을 텐데, 민주노동당 생길 때는 공무원이었어요. 그래서 관심만 가지고 있었지요. 그 후에는 공기업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정당 활동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기존에 관심이 있던 정당들이 그동안 많이 변질되어 실망하게 되어 입당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정치에 무관심한 층이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선거에 대한 환상도 없었고요, 민주당이나 새누리당 같은 보수 정당에는 기대조차 하지 않고 군소 정당들이 뭔가를 바꿀 수 있는 토대는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에 무관심해지더라고요. 그래서 투표도 안 한 경우가 더 많아요.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권리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올해 들어서, 투표가 권리가 아니고 의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역구 선거에는 투표할 마음은 없지만, 정당 투표나마 하려고 각 정당들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어요.

그런데 왜 녹색당이냐, 녹색당 홈페이지에서 딱 하나 꽂히는 슬로건이 있었어요. “내 생에 첫 정당, 녹색당“ 여기에 꽂혀서 정책 공약집도 찾아보고 결국 녹색당으로 투표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어요. 선거 때 표 하나 던지는 것 뿐 아니라 후원을 하고자 CMS 등록을 했구요. 당원 가입이 의도는 아니었지만 녹색당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겠다는 표현으로써 했던 건데 그게 자연스럽게 당원 가입까지 된 거죠. 그러고 보면 홍보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의제 하나가 누군가에게 울림을 준다는 건 매력적인 것 같아요. 실제로 내 생애 첫 정당이고 그래서 더 정이 가요.

2016 퀴어퍼레이드가 열렸던 날,  당사에서 인터뷰 진행하는 김은익님의 모습

얘기 듣다 보니까 선거와 정치에 있어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던 것 같아요. 운동하시던 분들은 아예 정치에 무관심해지거나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은데요. 무관심하시고 회의를 가지시다가 다시 관심을 가지시게 된 건가요?

무관심한 건 선거에 대한 환상이 없었기 때문에 무관심한 것이고요. 또 한 가지는 진보 정당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예요.

잠깐 옛날 얘기를 하면 군대를 늦게 가서 93년에 제대를 했어요. 91년도에 구소련이 붕괴해서 사회주의가 몰락을 했죠. 80년대에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분들이 그 당시 혼란기를 겪었어요. 저는 그 혼란기를 군대에서 아무 생각없이 평온하게 보낸 거죠. 저는 인천에서 활동을 했는데, 인천이 전국에서 활동가들이 모인 곳이었어요. 그런데 제대하고 돌아오니 인천이 텅 비다시피 한 느낌이더라고요. 옛날 사람들을 만났는데 크게 세 부류가 있어요. 학교에 복학해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자는 사람들, 진보 정당을 만들자는 사람들, 그리고 시민 단체 활동을 하자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극소수만이 현장에 남아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의견충돌이 많았고 격하게 싸우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요. 이후 안양에 있는 공장에 밀링공으로 취직하면서 같이 운동했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졌죠. 저는 그동안 자신의 신념을 쏟아 부었던 데를 한 순간에 버리고 간다는 그 자체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래서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진보 정당 활동했다는 사람들을 그다지 신뢰를 하지 않아요.

녹색당을 지지하게 된 이유와도 연관이 있는데, 녹색당에는 파벌 싸움이나 주도권 싸움이 안 보여서 좋아요. 386, 운동권의 정서, 몇몇의 명망가들만 결실을 독차지하고 집안 싸움만하는, 다른 조직들에 비해 녹색당은 그런 게 안 보여서 특이하더라고요.

오십, 또 하나의 전환점, ‘꼰대가 되지 말자 결심했죠

올해 오십이라고 하셨는데요, 나이 오십을 기점으로 해서 전에 살아왔던 삶을 돌이켜보고 앞으로를 새롭게 생각하는 전환점이 되는 때가 아닐까 생각해봤는데요, 어떠신가요?

개인적으로도 이십, 삼십, 사십, 오십이 인생의 전환기였어요.

스무 살 때는 광주 항쟁.. 그걸 처음 본 그 순간을 아직도 못 잊습니다. 그래서 20대는 신념을 위해서 보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 추구하는 가치, 정의가 통용되는 사회를 위해서요. 공장에 다니고 활동도 하고 해고도 당하고 그런 과정을 거쳤고요.

 1987년 5월. 광주항쟁 마당굿 공연. 시민군 대장 역할

삼십이 되면서 또 바뀌었습니다. 아내와 동거할 때 해고가 됐는데, 저는 무언가 해본다는 핑계로 백수로 지내고 아내 혼자 힘들게 일했어요. 그러다가 임신한 아이가 유산이 됐어요. 지금의 첫째도 유산될 뻔하여 병원에 누워있는 아내를 보니 앞날이 캄캄하더군요. 아내는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었으니 제가 돈을 벌어야 했어요. 일반 기업은 빨간줄 때문에 취직이 안 되는데 공무원은 그런 과거의 전력을 따지지 않아서 서울시 공무원이 됐고요. 그게 서른한 살 때예요. 업무 스킬을 배우기 위해서 열심히 했었어요. 그러면서 20대의 많은 것들과 단절이 되었고요. 그런데 공무원 조직이 저랑 잘 맞지 않더라고요. 제가 토목직 공무원이었는데, 토목하면 딱 떠오르는 게 비리 아닙니까? 그 당시에는 비리 커넥션이 있어요. 그 상납의 고리가 피를 말려요. 그 안에 있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요. 지금 많이 좋아진 거죠.

지난 30대의 10년이 어떻게 보면 암흑기잖아요. 신념이나 가치, 이상과 관계없이 돈 벌이에 급급한 거잖아요. 그게 참 후회가 되더라고요. 지금의 직장으로 옮기고 사십이 돼서 노조활동을 시작했어요. 지부장도 되고 사무처장도 되고 민주노총 임원도 하면서 40대 10년 동안은 30대에 아쉬웠던 만큼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건강을 잃게 되었어요.

2012년에 쿠바를 갔었어요. 거기서 인생의 방향을 많이 생각했거든요. 그때 ‘50대 이후에는 어떠한 직도 맡지 말자. 꼰대가 되지 말자.’라고 결심했어요. 꼰대는 직책에 대한 욕심에서부터 출발하거든요. 그래서 쿠바 다녀와서부터는 임기가 끝나는 것부터 내려 놓았어요. 그렇게 오십이 되고는 후배들한테 어떤 말하는 게 두려워요. 50대 1년차잖아요. 조언하고 꼰대질하고 구분이 되게 힘들더군요. 경험이 필요한 건 얘기할 수 있는데 가치판단에 대한 부분들은 못하게 되더라고요. SNS에서도 오십이 되고는 세 달 동안 아무 글도 안 썼거든요. 어떤 이슈나 현상에 대해 내 의견을 쓰기가 두려워지는 거예요. 어디까지가 허용되고 어디까지가 조심해야하는지 그 경계선이 안 보이는 게 개인적으로 너무 답답해요. 지금 나이 50살인데 지금 꼰대가 되면 꼰대로 너무 오래 살아야 하잖아요.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그렇게 10년을 보내야할 것 같아요.(웃음) 직장에서도 녹색당에서도 그럴 것 같아요. 녹색당에서 앞으로 활동하는 게 어디까지가 당원의 의무이고 어느 만큼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지 아직 잘 감이 안 잡혀요.

2012.10.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초청으로 "체게바라 전사 45주년 기념행사"에 참여

각 10년을 맞이하는 첫 해에 늘 가치혼동을 앓는데 지금은 그 전과 많이 다른 게 50대는 새로운 열정을 쏟아 붓는 게 두렵다는 거죠. 과거에는 적극적이면서 열정적으로 하거나 배우거나 했을 텐데 지금은 그게 두려워요. 오지랖 넓고 말만 많은 꼰대가 될까 봐.

김은익 님의 SNS를 보다가 투표 기준의 명확함이 생겼다는 글을 보면서 공감했거든요. 그 점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어요.

예전에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라도 선택하자고 선동하고, 지금은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이나마 선택하자고 선동하잖아요. 저는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아요. 그건 곧 선택에 대한 내 권리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두 번째는 앞으로 모든 선거의 기준이 있어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겐 투표하지 않을 거예요. 50대 이상인 세대한테는 투표하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어떠한 직도 맡지 말자는 개인적인 결심과도 맥락을 같이해요. 민주노총과 사회단체에 직책이 엄청 많아요. 대부분은 50-60대가 장악하고 있고요. 그래서 변질되고 있잖아요.

내려놓은 것들을 채워주는 배낭여행

SNS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여행이었어요. 직장인으로 오랜 기간 지내오셨는데 많은 국가, 많은 도시들을 여행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 무기력, 매일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매너리즘을 잊기 위해서는 전혀 새로운 공간, 전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배낭여행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또, 직장, 노조, 조직에서 인정받고자하는 욕심을 내려놓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인정받고 싶고 뭔가 하고 싶어 하잖아요. 그것까지 상쇄할 수 있는 게 배낭여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여행을 통해 조금씩 해소가 되는, 일종의 돌파구죠.

여행을 하려면 돈이 좀 들잖아요, 여행경비에 대해선 가슴 아픈 사정이 있어요. 자식 교육 때문에 아내와 아들이 많이 부딪히다가 한 번 난리가 난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합의를 보았죠. 아들은 공부를 포기하고 부모는 자식을 포기하고, 그러니까 가정에 평화가 오더라고요. 덤으로 사교육비가 절약되었구요. 이걸 부부가 여행으로 쓰는 거죠. 아들은 공부를 안 하니까 행복하고 부모는 사교육비를 아껴서 여행을 다니니까 행복하고.

SNS에서 보니 이야기가 있는 여행 같은데 여행에 대한 노하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보통 여행을 2~3주 가는데, 6개월 정도 준비하거든요. 항공권을 예매하고 나서부터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예술과 그 나라의 근현대사, 격동기 혁명사를 공부하는데 보통 3개월 정도 걸려요. 공부를 해야 어느 도시를 갈 지 정해지거든요. 3개월 정도 사전 학습을 하고 코스가 정해지면 여행할 도시에 대해 3개월 정도 공부해요. 여행에 필요한 숙박, 교통까지 모두 예약을 하고요. 그렇게 준비하는 6개월이 행복합니다. 그리고 여행하면서 행복하고, 여행 다녀와서 한 달 정도는 사진만 봐도 행복합니다. 그래서 8개월은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젊은 시절 인생의 멘토들과의 만남. 마르크스,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체게바라

공부하다보면 여행의 컨셉이 정해지잖아요. 저는 크게 로마사와 관련한 고대 유적들, 그리고 또 하나는 근현대의 존경할만한 분들의 발자취에 관심이 있어요. 후자의 경우 태어난 곳, 자란 곳, 무덤까지. 그런데 이런 것들이 잘 안 나와서 찾는데 애를 먹어요. 온갖 사이트를 다 찾아봐요. 하다 보니 이제 노하우가 생겨서인지 웬만하면 다 찾아가게 되더라고요.

녹색당이 선점할 수 있는 의제, ‘기본 소득을 더 공론화시켜야

녹색당의 여러 의제들 중에 오늘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와 관련해서는 소수자와 관련된 의제, 또 토건 쪽에 종사하셨던 것을 바탕으로 탈토건, 탈성장에 대한 의제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삶에서 가장 생소한 영역이 소수자 부분이에요. 성소수자, 장애인, 새터민, 이주민과는 생활적으로 마주하거나 아는 부분이 아니어서 저도 앞으로 많이 배워야 될 것 같아요. 많이 참여를 해야 할 것 같고요. 그들의 권리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들의 기본권, 시민권 확보를 위해서 같이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앞으로 저도 녹색당 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려고 노력을 할 거예요.

처음에 탈성장에 대해서는 오해를 했어요. 성장에 무조건 반대하고 자급자족하자고 하면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기인데 대중적으로 반감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런데 공약집을 보면 ‘기존의 고성장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저성장에 대비하자’라는 좋은 내용이거든요. 근데 탈성장이란 어감은 거부감이 있을 것 같아요. 슬로건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느껴야 하는 건데, 탈성장이라는 슬로건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면 좋겠어요. 조금 더 쉽게.

녹색당에서 가장 끌리는 의제는 기본소득입니다. 스위스도 얼마 전에 국민투표에 부쳤다는데 아마 그렇게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봐요. 쿠바에 갔을 때, 놀랐던 것 중에 하나가 어떤 직업이든 한 달 월급은 25달러 전후라는 것이었어요. 나머지 교육, 의료, 복지비용 등은 국가에서 모두 부담하고요. 생필품까지도 국가에서 지급하여서 먹고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기호품을 사기에는 월급이 너무 작은 게 불만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쿠바에서도 필수적인 복지는 그대로 두고 나머지 복지를 기본소득화해서 각자가 선별적으로 쓰지 않는 복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게끔 돈으로 지급하면 좋겠어요. 모두가 모든 분야의 복지를 쓰는 게 아니잖아요. 스위스가 그런 식으로 하겠다는 것이고요.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소득은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녹색당이 기본소득에 대한 의제를 선점한 면도 있고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공론화시키길 바랍니다.

녹색당에는 의제별 모임이 있는데, 기본소득 의제 모임을 참여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당원이라면 조직원으로서의 의무는 참여잖아요. 그런 점에서 저도 참여 의지가 있지만 홈페이지 등에 정보가 잘 안 나오는 점도 있고요, 적극적으로 알아서 찾아서 가기 꺼려지는 점도 있고요.

그러면서 느낀 녹색당의 딜레마가 있어요. 이번 총선에서 후보자가 나온 지역이 타 지역에 비해 정당득표율이 높잖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녹색당이 해야 할 것은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정책개발과 홍보는 꾸준히 해야 하는 부분이고, 지역구에 쓸 만한 일꾼을 배출해야 하는 건데 평가에서 이런 얘기가 안 나오더군요. 왜 그러냐 하면 그 얘기를 한 사람이 지역구에 나와야하는 구조인거예요. 그런데 직접 나설 수 없는 사람은 대안 없는 비판이 되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것이죠. 뭔가를 주장할 때는 뭔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거죠. 지역당이 창설되지 않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누군가는 운영위원 등을 해야 하는데 나는 곤란하다 힘들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사무처에서 혹은 전국운영위에서 고민해야할 것이, 쓸 만한 인재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존 형성된 지역당은 굴러가던 틀이 있으니 잘 되겠지만 없는 지역의 경우는 동네 모임이나 만날 계기를 만들어 제공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녹색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든가 하는 질문들을 드리려고 했는데 자연스럽게 다 말씀해주셨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려요.

곧 대표단 선거가 있잖아요. 창당된 지 4년이 됐고요, 지금의 대표단, 정책위, 사무처, 다들 열심히 하고 누구보다 헌신적인 분들이잖아요. 그런데 지금의 대표단이 유능하고 열심히 했다 하더라도 연임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우선 그들이 힘들 때 쉬게 해줘야 하고요. 또 다른 이유는요, 대의원을 추첨제로 하는 이유가 녹색당의 가치를 공유하고 녹색당에 들어온 사람들의 역량은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잖아요. 누가 되어도 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거죠. 직접 민주주의의 근간은 모든 사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다음 세대를 준비를 해야 하는 부분도 있죠. 그 자리에서만 보이는 게 있거든요. 직책을 맡고 활동하는 과정들을 통해 젊은 활동가들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녹색당은 아직 초기이니 이렇게 건의를 드리고 싶어요. 좋은 분들이 많을 거고요.

많이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저는 40세 전후, 35세에서 45세 그 사이 분들이 더 많이 활동할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혹시 20대가 대표단으로 활동하시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건 더 좋죠.(웃음) 분명히 고려할 부분과 기준들은 있겠지만요. 유럽 좌파의 주요 당직자들을 보면 대부분이 30대잖아요. 많아야 40대 초반이고요, 그리고 반 이상이 여성이구요. 대한민국에서 유럽 좌파처럼 할 수 있는 정당은 녹색당 밖에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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