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삼의 ‘풀빛 만남’ (1)

<풀빛 떼거리들아! 기를 써라, 기를 써!>
민주화운동의 스승, 채현국 선생님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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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삼의 ‘풀빛 만남’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예정자인 이계삼 당원이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녹색당의 친구들’을 찾아가 그들의 지혜와 생각을 듣고 나누는 연재입니다.

2월 11일, 경남 양산 웅상읍 효암학원에서 채현국 선생님을 뵈었다. 처음 뵈었다.

여든이 되도록 철저한 야인으로 살아오셨으나, 2년 전 한겨레 인터뷰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8266.html가 선생님을 세상으로 불러냈다. 그 인터뷰는 페이스북 공유가 5만건이 넘었고, 다음 포털 사이트에 오른 기사에는 댓글만 3천5백개가 달렸다. 선생님은 별안간 ‘선물’처럼 우리에게 찾아왔다.

전교조 활동가로 지내던 시절, 나는 선생님의 존재를 풍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때 들었던 얘기의 요지는 이렇다. 경남 양산에 효암학원이라는 사학재단이 있다. 거기는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을 스카웃해서 관리자(교감, 교장)로 모신단다. 이사장이 좀 특별하단다. 창비가 어려울 때 돈을 대고, 군사독재 시절 고생한 이들을 몰래 도운 사람이란다. 어마어마한 거부였는데 하루아침에 재산을 노동자들에게 나눠주고, 자기는 무일푼으로 산단다. 정작 그렇게 모신 관리자가 부임해서 ‘어떻게 할까요’ 물으면 “잘하려는 사람이 사기치고 망치니, 잘하려 하지 말고 대충하라”고 한단다, 운운.

나는 ‘에이,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효암학원에 속한 개운중학교 교사인 박계해 선생의 학급운영이 교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교사로 일할 때, 나도 강좌를 듣고, 월간 <우리교육>에 연재되는 학급운영이야기도 밑줄 치며 읽었다. 굉장했다. 박계해 선생의 학급 운영은 학교 분위기가 받쳐주지 않으면, 그러니까 학교가 교사의 교육철학을 믿고 교육활동의 자율성을 완전하게 보장해 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 바탕은 당연히 학교법인 이사장 채현국의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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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 1935년 출생. 올해 여든 둘, 서울대 철학과 졸업, 1960년 중앙방송(현 KBS) 공채 드라마 연출직 1기로 입사, 박정희 찬양 드라마 제작을 거부하고 퇴사. 이후, 부친의 탄광을 물려받아 28~29개 기업을 거느린 흥국재단 경영. 한때 개인소득세 납부 전국 2위를 기록하기도. 유신 체제 직후 1973년 사업 정리. 1988년부터 경남 양산 효암학원 이사장.

이제, 시대의 스승으로 존경받는 선생님의 이력은 널리 알려졌지만, 선생님이 <녹색평론>의 오랜 애독자시고, 녹색당 지지자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채현국 선생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녹색당’이라는 정체성을 앞장세운,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만남에도 선생님은 거리낌이 없으셨다. 2월 11일 저녁, 약속장소인 개운중학교 정문 앞 ‘개운분식’이라는 작은 밥집으로 찾아갔을 때 선생님은 상담지도사 선생님들과 반주를 곁들인 저녁찬을 들고 계셨다. 3천원짜리 시락국밥과 김치와 소주 몇 잔.

나를 보시더니, “녹색당 전국구 2번 이계삼이로구나. 자네 함평이씨지?’ 하신다. 하아. 상대방의 긴장감을 일거에 무장해제시키는 천진한 웃음. 좀 있으니 비슷한 연배의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온다. ‘방배추(방동규)’ 어른이라고 하신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교수가 ‘백기완 황석영과 함께 대한민국 3대 구라’로 칭했던 전설의 주먹, 독재시절 고문과 감옥살이까지 감당하신 자칭 ‘좌파 건달’ 방배추 어른이라니. 함께 간 남어진 당원과 나는 어리둥절 싱글벙글.

방배추 어른은 허리가 삐끗하셨다면서 걷는 것조차 불편해 보이시는데, 앉자마자 “개자식들, 나라 팔아먹는 놈들만 나와서 큰일 났어, 결국은 저거(사드) 들여올 모양이데.” 시국 걱정부터 하신다. 그때부터 두 분이서 장군 멍군. “조선놈 문디(문둥이) 콧구멍에 마늘 빼먹겠다는 소리” “거지 빤쓰까지 털어가는 자본주의” 시국 만담이 늘어진다.

선생님의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평가는 간명하다. “민중들이 이명박에게 속게 만든 책임”으로 정리한다. 김대중 정부의 실책, IMF 구제금융 이후 투입된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이 초래한 재앙을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말씀을 아끼는 눈치.

효암학원에서 근무했던 교사에게 들었던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떨어져 낙심해 있을 무렵, 그를 위로하는 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채현국 선생은 “거 골치 아픈 대통령 왜 하려고 합니까?”라고 곧장 들이받았다고 한다.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노대통령은 퍽 부드럽게 답했다고 한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다”면서.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해야 하나,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과 참여정부 5년의 기억, 불행한 죽음과 그 이후로부터 이어진 10년을 생각하면 선생님도 마음이 아프실 것이다.

내 이야기를 잠시 드렸다. 나는 이전에도 녹색당원이었지만, 밀양 송전탑 싸움에서 정치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운운. 밀양송전탑에 대한 선생님의 판단 또한 간명하다.

원자력 발전소 전기를 사방 퍼트려야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잖나. 그걸 그렇게 물고 늘어지는 건 단순해. 자본주의 회계상에 시효가 지나간 건 100% 이득이거든. 그 이유다.

수명연장. 그렇다. 밀양송전탑의 비밀은 정확하게 그것이다. 나는 사실 깜짝 놀랐다. 10년의 투쟁 끝에 내린 우리의 결론, 저들이 밀양송전탑을 이토록 강경하게 밀어붙이는 이유, 그것은 신고리 1~6호기 증설과 고리 1~4호기의 수명연장이었다. 둘 중 하나만 빠져도, 그 하나 중에서 일부만 빠져도, 밀양송전탑은 필요 없었다. 신규 증설은 국가계획에 올라 있었으나 수명연장은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저들의 ‘희망사항’이었다. 그걸 정확하게 짚어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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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잠시 산보를 했다. 학교에 나무가 많다. 오래된 나무가 깊고 아름다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졸업한 아이들이 끝도 없이 찾아오는 게 좋으시단다. 서울에도 거처가 있는 선생님이 학교에 내려와 있을 때는 고등학교 숙직실 옆 조그만 방 한칸에서 기거한다고 한다. 개운중학교 현관 중앙에는 번쩍이는 전시물 대신 나무로 짠 마루가 있다. 거기에 앉아 선생님과 이야기를 이어갔다.

좀 ‘녹색당스러운’ 이야기를 여쭈었다.

이명박 때는 4대강으로 강을 파 뒤집더니, 이번 정부는 명산마다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기를 쓰네요. 선생님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개발과 파괴의 시간을 다 지나오셨는데, 어떠세요?

개발이니, 과학입국이니. 국가 권력이 이렇게 저렇게 민중을 속이는 짓이라고 봐. 소발도 돼지발도 아닌 개발 같은 개발이야. 발전, 진보, 전부 같잖은 소리거든. 방향이 있어야 발전이고 진보지. 방향이 어딨노. 거기들에.

개발 때문에 가난하던 시절의 마음들을 빼앗겨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몰아쳐대니까. 완장만 채워주면 껄떡거리고. 몽둥이만 잽혀주면, 지팡이가 될 수 있는데, 두들겨 패버리지. 개도 두들기고, 소도 두들기고, 사람까지 두들겨 패는데.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저희 녹색당이 농업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유전자 조작하고 농약 뿌리고, 비료 막 주고, 수경 재배까지, 확실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걸. 지 맘대로 인위적으로 변경시키면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건 알잖아.

녹색당에서 요즘 기본소득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모든 국민에게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을 주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불평등을 조장하고 강화시키는 건 무효라는 걸 가르치는 것부터 합시다. 어떤 미명하에서도 불평등을 조장하는 건 반인권적이다. 전부 무효다. 전제에서 이미 잘못 되었다. 인간은 평등하다. 키도 크고 작고 살찌고 마르고부터 해서,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다는 것이 평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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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1973년, 오일쇼크로 탄광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던 시절 탄광을 정리한 분이다. 광부들의 10년치 임금을 근무연차 누진율까지 정확하게 계산해서 지급했다고 한다. 누군가가 개인 재산을 나누어주었다고 칭찬하면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은 건데, 개인 재산이란 게 어디 있나”며 흥분해서 소리치는 분이다. 칭찬받는 일이나 이름나는 일에 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경영하던 탄광에서 사고가 나서 죽은 사람이 있고, 그것이 경영자인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녹색당이 소수자인권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내가 거들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씀의 속도도 조금씩 급해진다.

다수결은 소수 존중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걸로 합의를 보는 거야. 소수 존중이 안 되면 다수결은 무의미한 폭력이야. 소수를 동정적으로 알아주는 체 하는 게 아니고, 소수가 존중되지 않은 전체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전체는 허구가 돼. 중뿔난 소리하는 게 아닌 거야. (소수자 문제는) 절대로 녹색당이 중뿔나게 심하게 하는 게 아냐.

연이어 선생님은 뭔가 생각나신 듯 녹색당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평소 생각해 보신 대목인 것 같다.

풀빛 민주주의라 하면 안 되나. 녹색당이라 할 거 없이, 풀빛 떼거리! 말이 재밌잖아. 풀빛 떼거리! 머리가 허옇지만, 나도 껴도!

나도 껴도! 껄껄껄. 나도 마음이 환해졌다. 멋진 표현이다. 녹색당이라 하지 않고 ‘풀빛 떼거리’라. 아름답고 통쾌하다. “안녕하세요, 서울 시민 여러분! 저희들은 풀빛 떼거립니다!!” 이야기가 뭔가 절정을 향해 가는 것 같다. 이제, 선생님께 교육을 물었다.

나는 교육이라고 물었는데, 선생님은 대번 ‘배움’이라고 운을 뗀다. 아. 또 놀란다. 녹색당은 ‘교육(배움)’이라고 쓴다.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 서 있는 ‘교육’에서 그 반대편 ‘배움’으로 옮겨야 한다는 문제의식인데, 선생님은 ‘배움’이라는 말이 이미 익어 있었다.

우리 배움이 뭐를 지향할까. 어떤 초점으로 같이 시선을 맞출까. (교육이란) 배움의 눈맞추기거든. 입맞추기만 있는게 아니잖아. 키 작은 놈은 제 키대로 눈 맞추고. 하늘 쳐다봐야 되는 윤동주 같은 사람은 하늘 쳐다보기가 슬퍼서 눈물 찌르르 흘리며 서 있는 거고. 그런 다양성을 지향하는. 갖가지로. 모든 풀이 갖가지 듯이. 그래서 정말 조환데.

나는 그래서 교육은, 우리 풀빛 떼거리들은, ‘배움의 눈맞추기를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서로 의논하자. 서로 찾아보자. 좀 더 잘 생각한 사람도 귀 기울여보자.

시간이 깊어졌다. 올해 여든 둘이 되신 선생님은 오늘 서울에서 내려와 벌써 몇 가지 일정을 소화하셨다. 상담교사들과의 만남, 신규 채용 선생님 회식, 방배추 어르신, 그리고 ‘풀빛 떼거리’와의 만남까지. 선생님이 쉬셔야 할 것 같다.

내가 물었다.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정권 아래서 살면서 사람들이 지쳐있고 마음들이 많이 힘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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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개운중학교 1층 현관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던 연설의 아름다운 억양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을, 우리 ‘풀빛 떼거리’들에게 주는 채현국 선생님의 격려사로 읽자.

그 말도 또 바꿔야 돼. ‘우리가 잘못 뽑았어.’ 찍은 놈들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들인데. 그것 때문에 민중까지 썩어 들어가서는 정말 큰일이야. 그까짓 멍청이짓 하게 해놓고는 이따우로 지치는 소리를 쉽게 할 건 아니지. 그것도 어차피 지나갈 일인데. 어차피 지나갈 꺼 뻔히 아는 게 민중인데. 엄살 고만하자. 인자부터.

더 흉측한 시절이 오더라도, 우리가 살아남고 끊임없이 비폭력 혁명할 줄 알도록, 벼를 줄 알아야 되고. 연장을 다듬을 줄 알아야하고. 우리가 경박하고, 우리가 게을러서 이런 일이 났으니까. 영삼이 지나가자마자 대중이 노무현 10년에 게으름피우다 보니까 명박이한테 속고 박근혜한테 속는 건 당연하지. 이미 속은 걸 가지고 한탄하면 절대로 못 이겨. 박근혜를 불쌍하게 볼 만큼 우리가 혁명을 하자. 비폭력 혁명을 하자. 

어떻게 해야 세상을 망친 자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누가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답했다. “기를 써라, 기를 써”. 그렇지만, 잘 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했다. 잘 하려 하면 꼭 거꾸로 된다고. 그래서 낙담하고, 부끄러워지고, 창피해지진다면서. 그러면, 열심히 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열심히 하는 것도 답이 아니라고 했다. 열심히 하는 건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선생님의 답은 무엇인가. “신나게, 재밌게” 가자는 것이다.

“쓴맛이 사는 맛.” 효암학원의 교훈석에 새겨진 글귀다. 그것은 선생님의 인생관을 드러내는 글귀가 되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달달한 게’ 있다고 했다.

“사람들과 좋은 마음으로 같이 바라고, 그런 마음이 서로 통할 때.”

녹색당 운동이 그렇다. ‘8천명 풀빛 떼거리’들이 지금 전국 곳곳에서 앰프 하나 놓고 마이크 붙잡고 정당연설회로 피켓 들고 거리에서 외치는 것. 세상을 바꾸자. 우리 자신을 변혁하자. 신나게 즐겁게. 그 달달한 인생의 맛. 잘 하려 들지 말고, 열심히 하는 건 끝이 없으니, 그저 신나게 즐겁게! 기를 써라, 기를 써!

(녹취·사진 남어진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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