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 세미나 1. ‘파국과 재생’ (문학평론가 문강형준 님 발제) 후기

 

“탈성장”이라는 대주제로 진행되는 녹색당 정책위원회 연속세미나. 그 첫 번째 시간은 문강형준 문화평론가님과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를 주제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문명의 몰락 이후 살아남은 이들의 생존기를 그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문학. 고도의 자본주의 발달과 그로 인한 허무와 불안이 만연한 현대 정서 속에서, 근대 문명의 파국 이후를 상상해 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과 영화 등은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높습니다(가장 흔한 예는 좀비물). 기존 질서의 몰락을 가정함으로서 지금 이 세상을 낯설게 보도록 만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문학은, SF의 하위 장르로서 본질적으로 좌파적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몰락을 예고하는 현 질서란 우리가 비판적이거나 그 한계를 인식하는 자본주의, 계급질서 등도 있겠지만 동시에 민주주의, 페미니즘, 인간의 존엄, 정치적 올바름 등 인류가 발전시켜 온 문명적 가치도 포함합니다. 따라서 문명파괴 이후 인간의 삶은 강한 우두머리의 독재와 전체주의 및 약탈이 주류가 되기도 하고, 어린이, 여성 등 약자는 물리적 강자인 남성에게 의탁하는 디스토피아가 될 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생존’을 위해서라도 오히려 연대와 협동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 질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더 강력한 리더쉽을 위해 포용과 배려의 지도력을 발휘 한다던가, 확률적으로 더 나은 결정을 위해 독선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이고 공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문명의 몰락 이후의 인류에게도 페미니즘과 평등의 가치가 결국은 중요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자원 확보 없이 ‘인간의 존엄과 인간성’이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에 대해, 포스트 아포칼립스 문학들은 역시 대체로 아니라고 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자원의 고갈 이후 혹은 성장이 멈춰버린 이후를 상상하고 대비해야 할 책무가 있는 녹색당에게도 깊은 고민과 토론의 지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할 것입니다. 단순히 성장에서 해방되는 것 자체가 목적이거나 옳은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과 과정으로 어떠한 종류의 성장에서 탈피할 것인가 좀 더 치밀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강형준 님의 발제 중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인류세’였습니다. 산업혁명(1784년) 이후 대기 등 지구 생태에 인간이 남긴 자취가 너무나 크고 활발하여, 지질 연대표 상 그로부터 현재를 ‘인류세’로 재분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존층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폴 그루첸과 동조하는 학자들의 주장인데, 상당히 일리가 있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석탄을 태워 에너지로 사용한 후 급격히 치솟은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 인류에 의해 배출된 그간 지구에 없던 새로운 물질인 플라스틱, 살충제, 방사능 등이 지구에 미친 엄청난 영향 등을 고려하면 납득할만한 이야기였습니다. 또한 지구 역사상 일어났던 다섯 번의 대량멸종에 이어, 인류를 포함한 여섯 번째 대량 멸종이 거의 확실시 된다는 아이디어도 충분히 타당하게 생각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류가 공멸하는 것 자체는 두렵거나 의외로 다가오지 않는 미래의 수순이었으나, 진정한 고민점은 역시 ‘어떤 파국을 맞을 것인가’로 귀결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고도로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지구가 더 이상 안전하게 머무를 수 없는 행성이 된다면, 기술과 자본을 지배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화성으로의 이주든 그 밖의 탈출이 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고통스런 멸망의 과정을 겪어내야 하는 것은 자본과 기술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가 아닐까하는 우려였습니다. 지금의 급격한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이 두려운 것도 그로 인한 피해가 가난한 이, 거리에서 일하는 이, 노인, 어린이, 여성에게 더 치명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핵사고든, 지구 생태계의 파괴든 재난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잔인하게 닥칠 것입니다. 때문에 이런 파국을 막기 위해 녹색당은 환경과 생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고 또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인류세’ 시대에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은 ‘정치적 소설’이라는 문강형준 님의 의견에 동의하며 지구온난화, 기후격변, 대기와 토지와 해양의 오염 등 인류세가 진행시키고 있는 생태적 환경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문제’라는 말씀에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제어되고 그것이 인류세의 문제를 지연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대재난이 이미 예정돼 있다면 그 후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조직해 나갈 것인가 등. 녹색당이 늦기 전에 반드시 고민해야 할 정치적 질문들을 감사히 받으며 세미나는 마무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