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리는 비처럼 우리가 꿈꾸는 탈핵 세상도 세차게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떡갈나무카페>받아볼 당원 님의 얼굴을 애써 그리며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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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남녹색당엔 누가 있나', '어떤 모임이 있나'
함께 읽어요 :-) ♪
2024년 6월(제53호)
전남녹색당 안팎의 주요 소식, 당원 인터뷰 글과 에세이, ‘놀라놀라 글과 그림’ 등을 담아 전해 드려요.
5. 26 『0원으로 사는 삶』 북토크_보성(벌교읍 수나커피)
보슬보슬 봄비가 내리던 지난달 마지막 일요일 이른 오후, 『0원으로 사는 삶』을 쓴 박정미 작가의 ‘작은 혁명 이야기’를 들으러 온 이들로 ‘수나커피’가 북적였어요. 깊고 너른 이야기와 소박한 먹거리들로 서로를 먹이고 살리고 다독이던 시간이었답니다.
돈이라는 물질이 옭아매는 삶으로부터 놓여나기 위한 방법으로 박정미 님은 단순한 삶을 지향하면서 물물교환과 자급자족에 기대어 살아가기, 낭비되는 자원을 잘 활용하기, 기꺼이 ‘얹혀’ 살아가기라는 ’길‘을 제시해 주었어요.
아울러 모든 인간이 지닌 사랑, 연민/측은지심, 관대함의 자질을 잘 받아들이고 나누면서 많은 것을 베푸는 자연에 고마워하며 기대어 살면 얼마든지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오히려 더 깊고 넓은 사랑 안에서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될 거란 사실도 알려 주었지요. 갈증과 공허감만을 부추길 뿐인 분리된 나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에서 놓여나 어떻게 ‘우리 모두’가 먹고살고, 모두를 사랑하면서 하나를 이뤄갈 것인가로 생각의 거처를 옮겨 가야 한다고, 여기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이유와 필요에 관한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봄날 오후, 훈훈한 분위기에서 두 시간 남짓 진행된 이번 북토크는 지난 4월 5일에 있었던 <느티나무 아래> 공동체 상영회에 이은 올해 두 번째 ‘전남녹색당 당원 참여예산 프로젝트’였어요.
6. 8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10년 맞이 핵 폭주 저지 결의대회_밀양강 둔치공원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째를 맞아 ‘윤석열 핵 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가 열린 지난 6월 8일, 순천에서 출발하는 ‘다시 타는 밀양 희망버스’ 두 대에 50여 명이 나눠 타고 빗속을 달려 밀양에 다녀왔어요.
결의대회가 열리는 둔치공원으로 가기 전에 밀양의 용회마을 102번 송전탑을 찾아가 주민들과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마을 인근 산과 논 곳곳에 우뚝한 거대 철탑이 광포한 무뢰한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전기가 어떻게 주민들/농민들의 눈물을 타고 흐르는지 똑똑히 알 수 있는 현장이었답니다.
세찬 비가 내내 쏟아졌지만, 결의대회장을 찾은 천여 참가자는 행사가 시작된 오후 4시부터 6시 무렵까지 탈핵과 탈송전탑,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 미래이어야 함을, 그 미래를 우리 손으로 일구겠다는 마음으로 자리를 지켰답니다. 밀양 할매할배 주민들이 멀리서 온 손님들을 대접하신다며 천 명분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묵밥을 준비해서 모두를 먹였어요. 천막 곳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먹는 묵밥 한 그릇 ー 찬 묵밥이 가슴을 은은하게 데워주었습니다.
‘송전탑을 뽑아내고 핵발전을 막아내자’라는 외침이 밀양강 강물 따라 널리 흘러가고 번져가길 기원하며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는 잔치 같은 결의대회를 마무리했답니다. 어둑어둑해지는 길을 달려 떠났던 자리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희망이라는 불씨를 오랜만에 품어볼 용길 내는 모습을 함께한 이들의 온기 어린 표정을 통해 읽을 수 있었어요.
[당원 인터뷰] 박성용(강진)
<자녀 '연두'의 캘리그라피 작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강진에서 세 아이와 아내, 그리고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박성용입니다. 2013년도에 서울에서 이주해 농사도 짓고 닭도 여러 마리 키워보고 집도 짓는 등 여러 활동을 했었는데요, 코로나 전후로 ‘ESG 강화’라는 시대적 변화와 요구에 의해 이전부터 일해온 온실가스 검증 심사 관련 업무에 더욱 집중하다 보니 지역에서 해온 다양한 활동은 소원해졌고요. 국가적으로 배출권 거래제를 실시하고 있어서 기업이나 기관에서 의무적으로 온실가스 검증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다 보니 일이 많은 편이라 요새는 강진에서 서울과 해외를 오가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2012년 녹색당 창당 당시 활동하셨다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창당 당시 녹색당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녹색당 활동의 직접적 계기는 《녹색평론》이었습니다. 《녹색평론》 창간 20주년 기념으로 이화여대 강당에서 故 김종철 선생님의 강연회가 있었는데요, 이전부터 ‘아직 한국 사회에 녹색당은 이르다’고 말씀해 오신 선생님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참사 이후에는 ‘한국 사회에도 녹색당이 정말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길래 바로 서울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를 찾아가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창당을 위해서는 5개 시도에 각 천 명의 당원이 필요한데요. 저는 당원을 조직하는 업무를 맡아 활동했습니다. 당시에는 천 명 모이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특히나 서울은요. 그렇게 생태주의, 탈핵 등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 시대에 녹색당이 필요하다’는 다짐으로, 활기차고 희망차게 창당식을 열고 녹색당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마포녹색당 활동도 하고 있었는데요, 지역당원들과 술을 빚어 가져가서 여러 당원과 함께 나눠 마시기도 했고요. ‘우정과 환대’의 분위기가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녹색당>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거나 느낌을 받게 되나요?
사실 지금은 녹색당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긴 합니다. 정치 동아리 수준에 그친다는 느낌도 있고요. 우리 강령에 녹아 있는 우정과 환대의 분위기도 잘 느껴지지 않고 서로 지향하는 바를 쟁취하기만을 바란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과거 독일에서 환경 공부를 하며 독일녹색당이나 사민주의를 경험했는데요, 한국은 한국만의 특별한 정치 상황 ー 이를테면 독재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수구 세력과 지지 세력이 강하다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과 남·북한이 분단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합심하면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내부에서 너무 분절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
‘Everything Is Nothing’이라는 표현처럼, 모든 걸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처럼 더 선명성을 가지고 생태, 기후위기 등의 문제에 집중했어야 했는데 산발적으로 여러 의제를 이야기하다 오히려 동력을 상실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녹색당이 원내에 진입해 국회의원을 활용해 입법 활동도 하고 안정적인 예산을 가지고 정책 연구와 활동도 하면 좋은데 현재 상태에서 안주하려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안타깝기도 합니다. 특히 기후에 관심 있는 유권자가 전례 없이 많은 상황에서 녹색당이 기후위기 의제를 더 선명하게 나타낼 수 있었음에도 정의당과 선거연합을 한 것은 뼈아픈, 안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요.
2016년도에 최혁봉 당원이 도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전남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모금해 현수막 비용도 마련하고 후보 공보물도 보내고 했었습니다. 당시에 신안에 사는 한 당원분은 농업 조합장 선거운동을 위해 섬마다 다니면서 '조합장 후보는 ***! 도의원 후보는 녹색당 최혁봉!' 하면서 선거운동을 했더니 신안에서 녹색당 득표율이 20%가 나오기도 했어요.
결국 정치, 정당이라는 건 지지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우리 편을 만들어야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 편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정책을 연구하고 선명한 길을 가면서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동력이 사라져버린 것 같아요.
전남녹색당 운영위 활동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당시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2013~2014년쯤, 장흥을 중심으로 ‘우리, 전남녹색당 창당 한번 해보자’라고 마음을 모아 벌교, 순천, 목포 등 마음을 낼 수 있는 당원을 싹싹 끌어모아 운영위를 만들었어요. 백운산에서 당원대회를 열기도 하고요, 순천에서 창당 준비위 발대식을 열기도 했습니다.^^
요새는 녹색당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당원으로 남아있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정당이라고 하는 건 주인이 따로 없잖아요. 평당원이나 운영위원도 얼마나 마음을 내어놓느냐 정도의 차이이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고요. 저는 녹색당에 비판적이긴 하지만 창당 멤버로서 녹색당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럴 때 김종철 선생님이 계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고요, 하승수 전 녹색당 대표이자 변호사처럼 열심히 활동하신 분들의 열망과 열의를 알기에 아쉬움도 큰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녹색당 창당 당시 당헌 당규상에 생태, 탈핵 등 주요한 의제에 대해서 선명함을 더 분명하게 보였어야 했다고 봅니다. 초창기 동력을 가져가기 위한 의사결정 구조라든가, 분절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들도 마련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고요.
어쨌든 녹색당에 남아 ‘관찰자의 입장에서 과정을 지켜보자’라는 게 지금의 마음인 거 같아요. 전과 같은 애정은 없지만 탈당을 하고 나면 앞으로의 과정을 지켜볼 수가 없으니까요, 폭삭 망하든, 다시 일어나든 앞으로의 과정은 지켜볼 의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은 뼈아팠다’, ‘안 좋은 선택이었다’ 등을 알 수 있기도 하고 대안 세력이 생겨난다든가 ‘실패를 딛고 더 잘해보자’ 할 수도 있으니까요.
성용 님의 일상에 대해서도 여쭤볼게요. 지역으로 이주한 지 10년이 넘으셨는데 지역으로 오게 된 계기와 현재 강진에서의 삶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녹색평론》을 읽으며 삶의 방향과 가치관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녹색평론》에서 이야기하는 농적(農的) 감수성, 공동체 같은 가치들이 중요하다 생각했고요, 아내와 ‘아이를 자연에서 키우고 싶다’는 지향이 같아서 셋째 아이가 생기면서 내려오려고 한 시기가 더 당겨졌습니다.
지역에서의 삶의 만족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아이들이 성적 지상주의가 아니라 친구들과 학교, 산, 들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사계절이 지나는 걸 집안에서 볼 수 있기도 하고요.
비록 저는 일 때문에 서울이나 해외 등에 나갈 때 조금 힘들긴 하지만 가족들이 지역에서 우정과 환대를 느끼면서 살아가는 게 정말 좋습니다. 제 고향이 전라도이다 보니 전남지역의 언어적 소통 방식이나 감수성이 잘 맞고, 사투리나 언어문화에 있어서도 계급이나 서열 없이 나이가 많은 사람과도 잘 어울리고 친구처럼 지내는 것도 좋고요.
자주 가거나 좋아하는 강진의 공간이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강진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곳은 바로 ‘월출산’입니다. 월출산은 영암과도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요, 강진에서 만나는 월출산만의 매력이 뛰어납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개발 행위 제한이 있다 보니 우선 풍광이 좋고요, 산자락에 있는 백운동 정원은 50만 평 규모로, 드넓은 차밭과 백운동 원림이 있어 차밭과 정원, 무위사 등을 거닐다 보면 강진이 ‘육지 위의 제주도다’라는 표현이 와닿으실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강진만 갈대숲’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순천만보다 규모는 작지만, 갈대와 다양한 새들을 관찰할 수 있고 특히나 해질녘에 가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낙조가 매우 아름다운 곳입니다. 저는 손님이 오면 앞서 소개한 두 곳을 가게 되는데 한번 가보신 분들은 반드시 다음에 또 오시더라고요.^^
성용 님은 무엇을 하거나 어떤 상태일 때 행복하다고 느끼시나요? 일상 속에서 평온함과 행복감을 찾는 나름의 방법 또는 비결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누군가 ‘행복은 강도가 아니고 빈도다’라고 하더라고요, 스트레스받지 않는 상황을 행복한 순간이라 여기고 매 순간순간 그 행복을 느끼려고 합니다.
‘사랑은 곧 접촉’이라고 생각해서 가족들과 살을 부비고 자주 산책하면서 계절이 오가는 것을 느껴요. ‘개구리 소리가 많이 들리네’, ‘라일락이 폈네…’ 얘기 나누는 등 주변에서 생동하는 것들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거나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저는 기후위기 관련해서 대학이나 기업에서 강연도 하고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는데요. 전례 없는 극단적 기후 현상을 맞이할 확률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실제로 데이터를 살펴보면 극단적인 폭염, 폭우, 홍수, 태풍 등 어떤 것이 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기후위기 최일선에 서 있는 농민들은 일 년 농사가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으니 재해보험 등 대책을 준비해두시면 좋겠고요. 녹색당이 기후위기 시대에 나아갈 방향과 정책을 좀 더 선명하게 제시했어야 했는데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상실한 상황이다 보니 그러지 못했습니다. 기후 정책이 실종된 정치 현실에서 개인이라도 대비하지 않으면 가진 걸 모두 잃어버리는 극단적 상황이 닥쳐올 수 있기 때문에 암울하지만 우리 모두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해두면 좋겠습니다.
[당원 에세이] | 임아영(장성 '송송포도농원' 짜잔한 농부)
넘어가는 중입니다
저는 원래 장성 사람은 아녜요. 장성군 삼서면에서 산 지 십 년 됐네요. 친정아버지의 포도 농사를 돕는데 요즘 엄청 바빠요. 며칠째 샤인머스캣 알을 솎고 있네요. 큰딸이 지금 5학년이거든요. 어제 제가 “윤송아, 엄마 팔이 여덟 개면 좋것다.” 했더니 “엄마는 문어가 돼야겠네.” 하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면 장성 토박이, 농사짓는 부모 밑에서 평생 산 것 같지만 아니에요. 친정 부모님은 전주, 인천, 광주에서 삼십 년 정도 애들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2012년에 삼서면으로 귀촌했고 2016년부터 포도를 키우고 있어요. 저는 첫 아이를 낳고 2014년에 광주에서 장성으로 왔고 부모님 댁 앞에 집을 얻어 아이를 맡겼고 맞벌이를 했어요. 두 분 믿고 아이 셋을 낳았네요.
2009년부터 2021년까지 그러니까 한 십이 년을 광주에서 일했어요.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반, 청소년삶디자인센터에서 반 있었는데요.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는 문화기획자, 예술가, 예술교육가 등을 돕는 일을 했어요. 뜻대로 살지만 돈 안 되는 일만 골라서 하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났죠. 돈 되는 것만 좇아 뜻을 저버리는 세상에서요.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지원기관에 있다 보니 현장이 좀 고팠나 봐요. 청소년삶디자인센터에서 십 대들에게 “괜찮어. 이것저것 해봐. 안 죽어. 같이 이것저것 지어보자. 짓다 보면 살아갈 힘이 붙어. 집 학교 학원 말고 갈 데 하난 있어야지”라고 꼬드기는 일을 했죠. 여기서 십 대들은 농사짓고 밥 짓고 옷 짓고 글 짓고 책 짓고 음악 짓고 집까지 지었어요.
그런데 뭔가 이상하더라고요. ‘나는 내 힘으로 살고 있나?’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그맘때 포도밭에 병이 돌았고 친정아버지가 농사 그만 지을란다고 선언했어요. 그때 저랑 남편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꼬리를 잡았죠. “아까운데. 안 돼요. 저희가 해볼게요.” 그렇게 저는 짜잔한 농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시골 생활이 어떠냐, 좋으냐고 많이 물어요. 광주에 사는 친구는 저더러 자꾸 나오라고 하고요. “애들 교육 생각 안 하고 저만 생각한다”라고 뭐라 그래요. 1·3·5학년인 우리 집 애들이 다니는 삼서초등학교 전교생은 칠십 명이거든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다 알더라고요. 학교가 하나의 마을 같아요. 덕분에 애들 가족들도 서로 이웃이 되었고요. 누가 누군지 알고 서로의 처지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으니 돌보며 살 수밖에 없어요. 그래야 내 생존에 유리하거든요. 이게 교육 아닌가.
저처럼 도시에서 살다 온 이웃들이 입을 맞춘 듯이 하는 말이 있어요. “아파트로는 다시 못 돌아갈 것 같아.” 사는 곳, 만나는 사람, 먹고 사는 일, 보고 듣는 것들이 결혼과 시골 전후로 확 달라졌고 ‘다행이다. 잘했다.’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려요. 시골살이가 최고라고 할 수는 없어도 “내 호흡과 속도에 맞다”라고 할 수 있어요, 자신 있게.
월급쟁이를 그만둔 뒤로 종종 수첩에 써요. “나는 글 짓고 농사짓는 아봉. 나는 내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라고요. 나의 선택과 정체를 까먹을까 봐요. 이곳에서 살아갈수록 하고픈 것과 장래희망이 자꾸 늘어요. 어린이, 여성들과 쓰고 말하는 ‘삼서글방’을 차리고 싶고 저처럼 애 키우고 작물도 키우고 나도 키우며 오락가락하는 여성 농부들을 인터뷰하고 싶어요. 그들과 친구 되면 좋겠고요. 올해 적성을 하나 더 찾았습니다. 얼떨결에 화요일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게 됐는데요. 이게 참 재미있네요. 그림책 읽어주는 명랑한 할머니, 그리고 통기타와 피아노 좀 치는 할머니가 저의 장래희망입니다.
저는 이렇게 넘어가는 중입니다. 외동딸에서 애 셋 엄마로, 아스팔트 근로자에서 흙 밟는 노동자로, 임아영에서 아봉으로 넘어가는 중입니다. 뭐 이렇게 살아요. 말이 길었네요. 언능 자전거 타고 밭에 가서 알 솎아야 해요. 아, 동네 고양이들 손이라도 빌리고 싶네요.
🌿 임아영
세 아이 크는 모습 보면서 포도 키우고 나 크는 재미도 찾아가는 글 짓고 농사짓는 아봉입니다.
[연재_우리 집엔 사람 같은 개, 여우 같은 개가 산다④] | 해와(장흥)
꼬장꼬장해지는 솔이 씨
솔이는 나를 잘 파악한다. 내가 화가 날 때,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기분이 좋을 때, 힘이 들 때 눈치껏 어떻게 행동할지 안다. 예를 들어 내가 고민이 많아서 한숨을 푹푹 쉬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멀찍이 누워서 가만히 동태를 살핀다거나, 울고 있을 때 옆에 와 몸을 바짝 기대고 누워 있는다. 키미가 앞에서 까불까불거리고 있으면 무서운 소리로 혼을 내주기도 한다. 뭐 거의 사람인 거지.
산책할 때도 키미가 어딘가로 사라져 내가 목놓아 키미를 부르면 솔이가 어느새 다가와 주변을 둘러보며 키미를 찾으면서도 키미를 걱정하는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키미가 돌아오면 솔이가 반가워하며 큰 발을 들어 키미를 퍽퍽 치면서 혼을 내듯 장난을 친다. 함께 장난을 받아주다 강도가 심해지면 키미가 무서워 다시 멀어지지만.
그런 솔이가 나이 들어가면서 눈치가 백 단이 되어가는 것인지, 가끔 일탈을 하는 것인지 이제 산책을 나가면 꼬장꼬장 말을 듣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는 줄을 묶어 산책하는 길과 줄을 풀어 뛰어노는 위치가 정해져 있는데 그것은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어느 구간에서 줄을 다시 묶고 가겠다는 약속이다.
풀어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다시 묶이기로 한 구간에서 솔이가 오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솔이가 오지 않으면 키미도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솔이야 가자~!”라고 말하면 멀리서 듣고 잘 돌아오던 녀석이 이제는 ‘싫은데, 싫은데?!’라며 반항하는 아이처럼 논밭을 갑자기 뱅글뱅글 뛰어다닌다거나 키미에게 장난을 걸어 느닷없이 추격전을 펼치는데, 보고 있자면 그게 참 약이 오른다. 어릴 때도 안 하던 반항을 왜 이제 하십니까, 어르신.
“가자고!”
그럼 더 뛴다. 키미도 더 뛴다. 지나치게 흥분한 솔이가 무서워지면 오히려 키미가 먼저 돌아올 때도 있다. ‘언니, 솔이 언니가 이상해~’ 하는 표정으로.
그럴 땐 나는 더 말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는데 그때 내가 슬슬 열받는 것 같다 싶으면 솔이는 눈치를 살피다가 슬쩍 한 걸음씩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럴 때 짓는 표정이 있다.
‘아씨, 혼나는 거 아냐? 열받은 거 같은데? 그래도 지금 가는 게 덜 혼나겠지? 가지 말까?’
이런저런 딴청을 피우면서 오다 말다를 반복하면 나는 그제야 일어나 한 번 더 솔이를 부른다.
“빨리 와~”
이때가 중요하다. 이때 내 목소리가 아직 화가 난 것 같지 않다고 판단되면 솔이는 더 뛰어놀다 가겠다는 듯이 다시 논밭을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정말 화났다 싶으면 재빨리 돌아온다. 이때는 연기가 좀 필요하다. 표정도 중요하고 톤도 좀 내리깔아야 한다. 굵고 짧고 단호할수록 좋은데 내 연기력이 아직 좀 부족하다.
요즘 이런 일이 잦아졌다. 일이 바빠 산책을 자주 못 가서 그런 것 같다. 눈치도 나날이 빨라지고 가끔 내 말을 좀 무시해도 별일 안 생긴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솔이가 얄미우면서 귀엽다. 키미도 점점 눈치가 빨라지고 있는데 이 녀석은 아직 멀었다. 오늘 아침에도 눈치 없이 솔이에게 장난치다 혼이 났다.
그래도 이쁜 두 녀석,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 해와
안녕하세요, 해와입니다. 전남 장흥에서 살며 이런저런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전남녹색당 당원 여러분에게 저희 단란한 가족을 소개하고 싶어서 에세이를 써보겠다고 자처했답니다. 지난 2월부터 한집에서 살아가는 반려견, 솔이와 키미의 이야기로 《떡갈나무카페》 한 부분을 채워 오고 있답니다. 이쁘게 재밌게 가볍게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알립니다]
되살이꽃 글방 5월 모임 이야기와 6월 모임 안내
삶을 일구는 되살이꽃 글방은 평일 저녁 8시 온라인 글방을 열고, 6시 아침 낭송으로는 팀 잉골드 님의 <조응>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춘분 추분보다 2시간반이나 해가 길어진 오늘, 하지 아침, 막 책을 끝까지 읽으며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못밥과 외근 도시락을 싸면서 스스로와 주변을 먹고 먹이느라 애쓴 유월 한달이었네요. (헤라)
-“책의 말들이 계속 당신과 함께할까?”라던 이 책의 저자 잉골드 선생의 말처럼, 일상에서 선(線)의 사유로 작용하고 있었어요. 태극권 사부님이 절첩과 개합이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여기 책장을 열고 덮는 사유에서도 나와서 반가웠고요. (올치)
-새가 날아가는 것은 대기와의 조응이라는 표현과 딸이 어린시절 수영을 하면서 하던 표현이 “물과 친구가 된 것 같아”라던 말이 생각나요. 책 선물을 받으면 맨 앞장에 쓰인 짤막한 손편지처럼, 아침 울창한 새소리에 귀 기울이는 아침낭송이었습니다. (메주꽃)
-과학자이자 시인 같은 주도면밀함으로 모든 세계에 조응하고 답장하는 잉골드 님의 글이 낯설기도 하고 어딘가 들어본 것도 같은 기시감도 드는 목소리였는데, 실은 제게 보내주신 수취인 불명으로 쓴 편지였구나 싶어요. 어떻게 다시 완전히 다른 조응법으로 이 세계에서의 선을 그려나가야 할지 그려나가고 있는지 다시 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뒤적새)
매월 마지막 화요일 장흥 옆가게에서 점심밥상과 오프 글방이 열립니다. 관심있는 분은 010-4719-1558로 연락 주세요~
페미니즘・소수자 읽기 6월 모임
지난 5월 모임은 당원 프로젝트로 진행한 북토크로 모임을 대신했지요. 초여름의 세계가 활짝 열릴 6월의 책 모임을 안내합니다.
모임 때마다 다음에 무슨 책을 읽을지 두루두루 이야기를 나눠요. 정희진 님의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23)을 읽자는 이야기가 나온 지도 반년이 다 되어갑니다. 한동안 느슨하고 편하게 읽어갈 책들을 읽었다면, 의자를 당기고 허리를 세워 다시 페미니즘 공부를 해볼까요?
6월의 책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한국 사회 성정치학의 쟁점들』을 소개합니다.
“…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은 자본의 질주 속에 각자도생하는 인류세 시대의 한국 사회에서 더욱 복잡해진 젠더 권력과 여성주의 담론을 분석한다. 성차별, 페미사이드, 세계 최저 출생률, 여성 할당제를 비롯한 첨예한 '젠더 갈등' 이슈들부터 '피해자 중심주의', '성적 자기 결정권', '여성성의 자원화' 같은 여성주의 담론에 이르기까지 당대 성정치학의 논쟁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재해석한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을 허물고, 경계를 사유하며, 기성 담론의 전복적인 재해석을 시도하는 페미니즘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책날개에 실린 소개 글을 옮기며 마음이 짜릿해집니다. 우리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은 이 공부가 자신의 사고와 삶의 방식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공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책 모임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요. 관심 있으신 분들, 함께해요.
・ 일시 : 6월 23일 일요일, 11시
・ 장소 : 장흥 관지마을 길날네(용산면 관지길 22-13)
・ 문의 : 수나(010-4855-1355)
당원들이 꾸리고 참여하는 ‘대안 장’ 6~7월 일정
직접 농사지은 건강한 농작물,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든 먹거리, 손수 제작한 아름다운 공예품 등을 사고팔고 나누고 교환하며 장을 꾸려갑니다.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면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어 온 전남 곳곳의 대안 장 장터에서 열릴 5월과 6월 장날 일정을 알려드려요.
‣ 마실장
・7월 6일(토)과 21일(일) 저녁 6시∼8시
・ 마실장 장옥(장흥군 용산면 인암길 4) 일대
* 마실장은 1・6일인 장흥 ‘용산오일장’ 장날과 주말이 겹칠 때 열립니다.
* 여름을 맞아 지난 장(6/16)부터 저녁에 열고 있어요.
‣ 우리들의 해방장
* 6월 22일로 예정되어 있던 6월 장이 비 소식으로 취소되었어요.
* 7월 야시장에서 만나요. 하늘의 기운을 잘 살펴 장날 일정 등 소식, 다시 전할게요!
‣ 풀풀장
・ 7월 20일(토) 정오 ~ 오후 3시
・ 수나커피(벌교읍 태백산맥길 34)
* 올해 풀풀장은 홀수달에만 열려요.^^
[탈핵텃밭에서 알려요!]이런 (탈)핵 용어⑥_소형모듈원자로(SMR)
‘(탈)핵 용어에 관해 공부 좀 하고 싶은’ 당원들을 위해 마련했습니다.
관련 용어들을 하나씩 정리해가며 차근차근 알려드려요.
‣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
소형모듈원자로(이하 SMR)는 기존 대용량 발전 원자로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전기 출력 100~300MWe(메가와트, 1MWe=1,000kW)급 이하의 원자로를 일컬어요. 기존 대형 원자로와 같은 핵분열 기반 시스템인 SMR은 전통적인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약 1/4~1/2을 생산합니다. 연간 약 15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시간당 최대 300MWe의 전력을 생산하지만, 미국 최대 소형모듈원전 설계업체인 ‘뉴스케일파워’의 77MW급 SMR은 무게 700톤에 지름과 높이가 각각 4.6m, 23.3m로 아파트 9층 높이여서 ‘소형’도 아니에요.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Sciences)의 회보에 발표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SMR은 수만 년에서 수십만 년 동안 독성을 유지하며 인류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제반 환경에 극도로 해로울 수밖에 없는 핵폐기물의 양을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SMR 사업이 많은 이윤을 창출할 거라며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한국의 기업들이 막대한 사업비를 투자하여 관련 사업을 활발히 벌여나가고 있어요. 윤석열 정부에서도 SMR을 ‘핵심기술’이라며 R&D(Research and Development,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과는 다르게 올해 SMR 관련 연구개발 예산을 작년보다 8배 많은 333억 원을 책정했다고 하네요.
[놀라놀라 땡땡땡] 아이들과 비인간동물들의 반짝이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꽃이 물에 젖는 시간, 장마가 시작되었어요. 구체화가 추상화가 되는 시간, 추상화가 구체화가 되는 시간. 땅끝 사는 다섯 살, 이하늘마음이가 꽃잎으로 그린 그림에 애미가 눈과 발만 살짝 덧그려보았습니다. (해남 당원, 지선)
지금 내리는 비처럼 우리가 꿈꾸는 탈핵 세상도 세차게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떡갈나무카페>받아볼 당원 님의 얼굴을 애써 그리며 준비했습니다.
☞https://stib.ee/tzzC
'우리 전남녹색당엔 누가 있나', '어떤 모임이 있나'
함께 읽어요 :-) ♪
2024년 6월(제53호)
전남녹색당 안팎의 주요 소식, 당원 인터뷰 글과 에세이, ‘놀라놀라 글과 그림’ 등을 담아 전해 드려요.
5. 26 『0원으로 사는 삶』 북토크_보성(벌교읍 수나커피)
보슬보슬 봄비가 내리던 지난달 마지막 일요일 이른 오후, 『0원으로 사는 삶』을 쓴 박정미 작가의 ‘작은 혁명 이야기’를 들으러 온 이들로 ‘수나커피’가 북적였어요. 깊고 너른 이야기와 소박한 먹거리들로 서로를 먹이고 살리고 다독이던 시간이었답니다.
돈이라는 물질이 옭아매는 삶으로부터 놓여나기 위한 방법으로 박정미 님은 단순한 삶을 지향하면서 물물교환과 자급자족에 기대어 살아가기, 낭비되는 자원을 잘 활용하기, 기꺼이 ‘얹혀’ 살아가기라는 ’길‘을 제시해 주었어요.
아울러 모든 인간이 지닌 사랑, 연민/측은지심, 관대함의 자질을 잘 받아들이고 나누면서 많은 것을 베푸는 자연에 고마워하며 기대어 살면 얼마든지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오히려 더 깊고 넓은 사랑 안에서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될 거란 사실도 알려 주었지요. 갈증과 공허감만을 부추길 뿐인 분리된 나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에서 놓여나 어떻게 ‘우리 모두’가 먹고살고, 모두를 사랑하면서 하나를 이뤄갈 것인가로 생각의 거처를 옮겨 가야 한다고, 여기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이유와 필요에 관한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봄날 오후, 훈훈한 분위기에서 두 시간 남짓 진행된 이번 북토크는 지난 4월 5일에 있었던 <느티나무 아래> 공동체 상영회에 이은 올해 두 번째 ‘전남녹색당 당원 참여예산 프로젝트’였어요.
6. 8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10년 맞이 핵 폭주 저지 결의대회_밀양강 둔치공원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째를 맞아 ‘윤석열 핵 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가 열린 지난 6월 8일, 순천에서 출발하는 ‘다시 타는 밀양 희망버스’ 두 대에 50여 명이 나눠 타고 빗속을 달려 밀양에 다녀왔어요.
결의대회가 열리는 둔치공원으로 가기 전에 밀양의 용회마을 102번 송전탑을 찾아가 주민들과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마을 인근 산과 논 곳곳에 우뚝한 거대 철탑이 광포한 무뢰한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전기가 어떻게 주민들/농민들의 눈물을 타고 흐르는지 똑똑히 알 수 있는 현장이었답니다.
세찬 비가 내내 쏟아졌지만, 결의대회장을 찾은 천여 참가자는 행사가 시작된 오후 4시부터 6시 무렵까지 탈핵과 탈송전탑,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 미래이어야 함을, 그 미래를 우리 손으로 일구겠다는 마음으로 자리를 지켰답니다. 밀양 할매할배 주민들이 멀리서 온 손님들을 대접하신다며 천 명분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묵밥을 준비해서 모두를 먹였어요. 천막 곳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먹는 묵밥 한 그릇 ー 찬 묵밥이 가슴을 은은하게 데워주었습니다.
‘송전탑을 뽑아내고 핵발전을 막아내자’라는 외침이 밀양강 강물 따라 널리 흘러가고 번져가길 기원하며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는 잔치 같은 결의대회를 마무리했답니다. 어둑어둑해지는 길을 달려 떠났던 자리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희망이라는 불씨를 오랜만에 품어볼 용길 내는 모습을 함께한 이들의 온기 어린 표정을 통해 읽을 수 있었어요.
[당원 인터뷰] 박성용(강진)
<자녀 '연두'의 캘리그라피 작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강진에서 세 아이와 아내, 그리고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박성용입니다. 2013년도에 서울에서 이주해 농사도 짓고 닭도 여러 마리 키워보고 집도 짓는 등 여러 활동을 했었는데요, 코로나 전후로 ‘ESG 강화’라는 시대적 변화와 요구에 의해 이전부터 일해온 온실가스 검증 심사 관련 업무에 더욱 집중하다 보니 지역에서 해온 다양한 활동은 소원해졌고요. 국가적으로 배출권 거래제를 실시하고 있어서 기업이나 기관에서 의무적으로 온실가스 검증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다 보니 일이 많은 편이라 요새는 강진에서 서울과 해외를 오가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2012년 녹색당 창당 당시 활동하셨다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창당 당시 녹색당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녹색당 활동의 직접적 계기는 《녹색평론》이었습니다. 《녹색평론》 창간 20주년 기념으로 이화여대 강당에서 故 김종철 선생님의 강연회가 있었는데요, 이전부터 ‘아직 한국 사회에 녹색당은 이르다’고 말씀해 오신 선생님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참사 이후에는 ‘한국 사회에도 녹색당이 정말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길래 바로 서울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를 찾아가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창당을 위해서는 5개 시도에 각 천 명의 당원이 필요한데요. 저는 당원을 조직하는 업무를 맡아 활동했습니다. 당시에는 천 명 모이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특히나 서울은요. 그렇게 생태주의, 탈핵 등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 시대에 녹색당이 필요하다’는 다짐으로, 활기차고 희망차게 창당식을 열고 녹색당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마포녹색당 활동도 하고 있었는데요, 지역당원들과 술을 빚어 가져가서 여러 당원과 함께 나눠 마시기도 했고요. ‘우정과 환대’의 분위기가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녹색당>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거나 느낌을 받게 되나요?
사실 지금은 녹색당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긴 합니다. 정치 동아리 수준에 그친다는 느낌도 있고요. 우리 강령에 녹아 있는 우정과 환대의 분위기도 잘 느껴지지 않고 서로 지향하는 바를 쟁취하기만을 바란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과거 독일에서 환경 공부를 하며 독일녹색당이나 사민주의를 경험했는데요, 한국은 한국만의 특별한 정치 상황 ー 이를테면 독재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수구 세력과 지지 세력이 강하다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과 남·북한이 분단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합심하면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내부에서 너무 분절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
‘Everything Is Nothing’이라는 표현처럼, 모든 걸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처럼 더 선명성을 가지고 생태, 기후위기 등의 문제에 집중했어야 했는데 산발적으로 여러 의제를 이야기하다 오히려 동력을 상실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녹색당이 원내에 진입해 국회의원을 활용해 입법 활동도 하고 안정적인 예산을 가지고 정책 연구와 활동도 하면 좋은데 현재 상태에서 안주하려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안타깝기도 합니다. 특히 기후에 관심 있는 유권자가 전례 없이 많은 상황에서 녹색당이 기후위기 의제를 더 선명하게 나타낼 수 있었음에도 정의당과 선거연합을 한 것은 뼈아픈, 안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요.
2016년도에 최혁봉 당원이 도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전남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모금해 현수막 비용도 마련하고 후보 공보물도 보내고 했었습니다. 당시에 신안에 사는 한 당원분은 농업 조합장 선거운동을 위해 섬마다 다니면서 '조합장 후보는 ***! 도의원 후보는 녹색당 최혁봉!' 하면서 선거운동을 했더니 신안에서 녹색당 득표율이 20%가 나오기도 했어요.
결국 정치, 정당이라는 건 지지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우리 편을 만들어야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 편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정책을 연구하고 선명한 길을 가면서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동력이 사라져버린 것 같아요.
전남녹색당 운영위 활동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당시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2013~2014년쯤, 장흥을 중심으로 ‘우리, 전남녹색당 창당 한번 해보자’라고 마음을 모아 벌교, 순천, 목포 등 마음을 낼 수 있는 당원을 싹싹 끌어모아 운영위를 만들었어요. 백운산에서 당원대회를 열기도 하고요, 순천에서 창당 준비위 발대식을 열기도 했습니다.^^
요새는 녹색당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당원으로 남아있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정당이라고 하는 건 주인이 따로 없잖아요. 평당원이나 운영위원도 얼마나 마음을 내어놓느냐 정도의 차이이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고요. 저는 녹색당에 비판적이긴 하지만 창당 멤버로서 녹색당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럴 때 김종철 선생님이 계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고요, 하승수 전 녹색당 대표이자 변호사처럼 열심히 활동하신 분들의 열망과 열의를 알기에 아쉬움도 큰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녹색당 창당 당시 당헌 당규상에 생태, 탈핵 등 주요한 의제에 대해서 선명함을 더 분명하게 보였어야 했다고 봅니다. 초창기 동력을 가져가기 위한 의사결정 구조라든가, 분절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들도 마련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고요.
어쨌든 녹색당에 남아 ‘관찰자의 입장에서 과정을 지켜보자’라는 게 지금의 마음인 거 같아요. 전과 같은 애정은 없지만 탈당을 하고 나면 앞으로의 과정을 지켜볼 수가 없으니까요, 폭삭 망하든, 다시 일어나든 앞으로의 과정은 지켜볼 의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은 뼈아팠다’, ‘안 좋은 선택이었다’ 등을 알 수 있기도 하고 대안 세력이 생겨난다든가 ‘실패를 딛고 더 잘해보자’ 할 수도 있으니까요.
성용 님의 일상에 대해서도 여쭤볼게요. 지역으로 이주한 지 10년이 넘으셨는데 지역으로 오게 된 계기와 현재 강진에서의 삶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녹색평론》을 읽으며 삶의 방향과 가치관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녹색평론》에서 이야기하는 농적(農的) 감수성, 공동체 같은 가치들이 중요하다 생각했고요, 아내와 ‘아이를 자연에서 키우고 싶다’는 지향이 같아서 셋째 아이가 생기면서 내려오려고 한 시기가 더 당겨졌습니다.
지역에서의 삶의 만족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아이들이 성적 지상주의가 아니라 친구들과 학교, 산, 들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사계절이 지나는 걸 집안에서 볼 수 있기도 하고요.
비록 저는 일 때문에 서울이나 해외 등에 나갈 때 조금 힘들긴 하지만 가족들이 지역에서 우정과 환대를 느끼면서 살아가는 게 정말 좋습니다. 제 고향이 전라도이다 보니 전남지역의 언어적 소통 방식이나 감수성이 잘 맞고, 사투리나 언어문화에 있어서도 계급이나 서열 없이 나이가 많은 사람과도 잘 어울리고 친구처럼 지내는 것도 좋고요.
자주 가거나 좋아하는 강진의 공간이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강진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곳은 바로 ‘월출산’입니다. 월출산은 영암과도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요, 강진에서 만나는 월출산만의 매력이 뛰어납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개발 행위 제한이 있다 보니 우선 풍광이 좋고요, 산자락에 있는 백운동 정원은 50만 평 규모로, 드넓은 차밭과 백운동 원림이 있어 차밭과 정원, 무위사 등을 거닐다 보면 강진이 ‘육지 위의 제주도다’라는 표현이 와닿으실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강진만 갈대숲’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순천만보다 규모는 작지만, 갈대와 다양한 새들을 관찰할 수 있고 특히나 해질녘에 가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낙조가 매우 아름다운 곳입니다. 저는 손님이 오면 앞서 소개한 두 곳을 가게 되는데 한번 가보신 분들은 반드시 다음에 또 오시더라고요.^^
성용 님은 무엇을 하거나 어떤 상태일 때 행복하다고 느끼시나요? 일상 속에서 평온함과 행복감을 찾는 나름의 방법 또는 비결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누군가 ‘행복은 강도가 아니고 빈도다’라고 하더라고요, 스트레스받지 않는 상황을 행복한 순간이라 여기고 매 순간순간 그 행복을 느끼려고 합니다.
‘사랑은 곧 접촉’이라고 생각해서 가족들과 살을 부비고 자주 산책하면서 계절이 오가는 것을 느껴요. ‘개구리 소리가 많이 들리네’, ‘라일락이 폈네…’ 얘기 나누는 등 주변에서 생동하는 것들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거나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저는 기후위기 관련해서 대학이나 기업에서 강연도 하고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는데요. 전례 없는 극단적 기후 현상을 맞이할 확률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실제로 데이터를 살펴보면 극단적인 폭염, 폭우, 홍수, 태풍 등 어떤 것이 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기후위기 최일선에 서 있는 농민들은 일 년 농사가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으니 재해보험 등 대책을 준비해두시면 좋겠고요. 녹색당이 기후위기 시대에 나아갈 방향과 정책을 좀 더 선명하게 제시했어야 했는데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상실한 상황이다 보니 그러지 못했습니다. 기후 정책이 실종된 정치 현실에서 개인이라도 대비하지 않으면 가진 걸 모두 잃어버리는 극단적 상황이 닥쳐올 수 있기 때문에 암울하지만 우리 모두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해두면 좋겠습니다.
[당원 에세이] | 임아영(장성 '송송포도농원' 짜잔한 농부)
넘어가는 중입니다
저는 원래 장성 사람은 아녜요. 장성군 삼서면에서 산 지 십 년 됐네요. 친정아버지의 포도 농사를 돕는데 요즘 엄청 바빠요. 며칠째 샤인머스캣 알을 솎고 있네요. 큰딸이 지금 5학년이거든요. 어제 제가 “윤송아, 엄마 팔이 여덟 개면 좋것다.” 했더니 “엄마는 문어가 돼야겠네.” 하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면 장성 토박이, 농사짓는 부모 밑에서 평생 산 것 같지만 아니에요. 친정 부모님은 전주, 인천, 광주에서 삼십 년 정도 애들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2012년에 삼서면으로 귀촌했고 2016년부터 포도를 키우고 있어요. 저는 첫 아이를 낳고 2014년에 광주에서 장성으로 왔고 부모님 댁 앞에 집을 얻어 아이를 맡겼고 맞벌이를 했어요. 두 분 믿고 아이 셋을 낳았네요.
2009년부터 2021년까지 그러니까 한 십이 년을 광주에서 일했어요.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반, 청소년삶디자인센터에서 반 있었는데요.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는 문화기획자, 예술가, 예술교육가 등을 돕는 일을 했어요. 뜻대로 살지만 돈 안 되는 일만 골라서 하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났죠. 돈 되는 것만 좇아 뜻을 저버리는 세상에서요.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지원기관에 있다 보니 현장이 좀 고팠나 봐요. 청소년삶디자인센터에서 십 대들에게 “괜찮어. 이것저것 해봐. 안 죽어. 같이 이것저것 지어보자. 짓다 보면 살아갈 힘이 붙어. 집 학교 학원 말고 갈 데 하난 있어야지”라고 꼬드기는 일을 했죠. 여기서 십 대들은 농사짓고 밥 짓고 옷 짓고 글 짓고 책 짓고 음악 짓고 집까지 지었어요.
그런데 뭔가 이상하더라고요. ‘나는 내 힘으로 살고 있나?’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그맘때 포도밭에 병이 돌았고 친정아버지가 농사 그만 지을란다고 선언했어요. 그때 저랑 남편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꼬리를 잡았죠. “아까운데. 안 돼요. 저희가 해볼게요.” 그렇게 저는 짜잔한 농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시골 생활이 어떠냐, 좋으냐고 많이 물어요. 광주에 사는 친구는 저더러 자꾸 나오라고 하고요. “애들 교육 생각 안 하고 저만 생각한다”라고 뭐라 그래요. 1·3·5학년인 우리 집 애들이 다니는 삼서초등학교 전교생은 칠십 명이거든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다 알더라고요. 학교가 하나의 마을 같아요. 덕분에 애들 가족들도 서로 이웃이 되었고요. 누가 누군지 알고 서로의 처지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으니 돌보며 살 수밖에 없어요. 그래야 내 생존에 유리하거든요. 이게 교육 아닌가.
저처럼 도시에서 살다 온 이웃들이 입을 맞춘 듯이 하는 말이 있어요. “아파트로는 다시 못 돌아갈 것 같아.” 사는 곳, 만나는 사람, 먹고 사는 일, 보고 듣는 것들이 결혼과 시골 전후로 확 달라졌고 ‘다행이다. 잘했다.’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려요. 시골살이가 최고라고 할 수는 없어도 “내 호흡과 속도에 맞다”라고 할 수 있어요, 자신 있게.
월급쟁이를 그만둔 뒤로 종종 수첩에 써요. “나는 글 짓고 농사짓는 아봉. 나는 내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라고요. 나의 선택과 정체를 까먹을까 봐요. 이곳에서 살아갈수록 하고픈 것과 장래희망이 자꾸 늘어요. 어린이, 여성들과 쓰고 말하는 ‘삼서글방’을 차리고 싶고 저처럼 애 키우고 작물도 키우고 나도 키우며 오락가락하는 여성 농부들을 인터뷰하고 싶어요. 그들과 친구 되면 좋겠고요. 올해 적성을 하나 더 찾았습니다. 얼떨결에 화요일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게 됐는데요. 이게 참 재미있네요. 그림책 읽어주는 명랑한 할머니, 그리고 통기타와 피아노 좀 치는 할머니가 저의 장래희망입니다.
저는 이렇게 넘어가는 중입니다. 외동딸에서 애 셋 엄마로, 아스팔트 근로자에서 흙 밟는 노동자로, 임아영에서 아봉으로 넘어가는 중입니다. 뭐 이렇게 살아요. 말이 길었네요. 언능 자전거 타고 밭에 가서 알 솎아야 해요. 아, 동네 고양이들 손이라도 빌리고 싶네요.
🌿 임아영
세 아이 크는 모습 보면서 포도 키우고 나 크는 재미도 찾아가는 글 짓고 농사짓는 아봉입니다.
[연재_우리 집엔 사람 같은 개, 여우 같은 개가 산다④] | 해와(장흥)
꼬장꼬장해지는 솔이 씨
솔이는 나를 잘 파악한다. 내가 화가 날 때,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기분이 좋을 때, 힘이 들 때 눈치껏 어떻게 행동할지 안다. 예를 들어 내가 고민이 많아서 한숨을 푹푹 쉬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멀찍이 누워서 가만히 동태를 살핀다거나, 울고 있을 때 옆에 와 몸을 바짝 기대고 누워 있는다. 키미가 앞에서 까불까불거리고 있으면 무서운 소리로 혼을 내주기도 한다. 뭐 거의 사람인 거지.
산책할 때도 키미가 어딘가로 사라져 내가 목놓아 키미를 부르면 솔이가 어느새 다가와 주변을 둘러보며 키미를 찾으면서도 키미를 걱정하는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키미가 돌아오면 솔이가 반가워하며 큰 발을 들어 키미를 퍽퍽 치면서 혼을 내듯 장난을 친다. 함께 장난을 받아주다 강도가 심해지면 키미가 무서워 다시 멀어지지만.
그런 솔이가 나이 들어가면서 눈치가 백 단이 되어가는 것인지, 가끔 일탈을 하는 것인지 이제 산책을 나가면 꼬장꼬장 말을 듣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는 줄을 묶어 산책하는 길과 줄을 풀어 뛰어노는 위치가 정해져 있는데 그것은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어느 구간에서 줄을 다시 묶고 가겠다는 약속이다.
풀어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다시 묶이기로 한 구간에서 솔이가 오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솔이가 오지 않으면 키미도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솔이야 가자~!”라고 말하면 멀리서 듣고 잘 돌아오던 녀석이 이제는 ‘싫은데, 싫은데?!’라며 반항하는 아이처럼 논밭을 갑자기 뱅글뱅글 뛰어다닌다거나 키미에게 장난을 걸어 느닷없이 추격전을 펼치는데, 보고 있자면 그게 참 약이 오른다. 어릴 때도 안 하던 반항을 왜 이제 하십니까, 어르신.
“가자고!”
그럼 더 뛴다. 키미도 더 뛴다. 지나치게 흥분한 솔이가 무서워지면 오히려 키미가 먼저 돌아올 때도 있다. ‘언니, 솔이 언니가 이상해~’ 하는 표정으로.
그럴 땐 나는 더 말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는데 그때 내가 슬슬 열받는 것 같다 싶으면 솔이는 눈치를 살피다가 슬쩍 한 걸음씩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럴 때 짓는 표정이 있다.
‘아씨, 혼나는 거 아냐? 열받은 거 같은데? 그래도 지금 가는 게 덜 혼나겠지? 가지 말까?’
이런저런 딴청을 피우면서 오다 말다를 반복하면 나는 그제야 일어나 한 번 더 솔이를 부른다.
“빨리 와~”
이때가 중요하다. 이때 내 목소리가 아직 화가 난 것 같지 않다고 판단되면 솔이는 더 뛰어놀다 가겠다는 듯이 다시 논밭을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정말 화났다 싶으면 재빨리 돌아온다. 이때는 연기가 좀 필요하다. 표정도 중요하고 톤도 좀 내리깔아야 한다. 굵고 짧고 단호할수록 좋은데 내 연기력이 아직 좀 부족하다.
요즘 이런 일이 잦아졌다. 일이 바빠 산책을 자주 못 가서 그런 것 같다. 눈치도 나날이 빨라지고 가끔 내 말을 좀 무시해도 별일 안 생긴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솔이가 얄미우면서 귀엽다. 키미도 점점 눈치가 빨라지고 있는데 이 녀석은 아직 멀었다. 오늘 아침에도 눈치 없이 솔이에게 장난치다 혼이 났다.
그래도 이쁜 두 녀석,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 해와
안녕하세요, 해와입니다. 전남 장흥에서 살며 이런저런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전남녹색당 당원 여러분에게 저희 단란한 가족을 소개하고 싶어서 에세이를 써보겠다고 자처했답니다. 지난 2월부터 한집에서 살아가는 반려견, 솔이와 키미의 이야기로 《떡갈나무카페》 한 부분을 채워 오고 있답니다. 이쁘게 재밌게 가볍게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알립니다]
되살이꽃 글방 5월 모임 이야기와 6월 모임 안내
삶을 일구는 되살이꽃 글방은 평일 저녁 8시 온라인 글방을 열고, 6시 아침 낭송으로는 팀 잉골드 님의 <조응>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춘분 추분보다 2시간반이나 해가 길어진 오늘, 하지 아침, 막 책을 끝까지 읽으며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못밥과 외근 도시락을 싸면서 스스로와 주변을 먹고 먹이느라 애쓴 유월 한달이었네요. (헤라)
-“책의 말들이 계속 당신과 함께할까?”라던 이 책의 저자 잉골드 선생의 말처럼, 일상에서 선(線)의 사유로 작용하고 있었어요. 태극권 사부님이 절첩과 개합이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여기 책장을 열고 덮는 사유에서도 나와서 반가웠고요. (올치)
-새가 날아가는 것은 대기와의 조응이라는 표현과 딸이 어린시절 수영을 하면서 하던 표현이 “물과 친구가 된 것 같아”라던 말이 생각나요. 책 선물을 받으면 맨 앞장에 쓰인 짤막한 손편지처럼, 아침 울창한 새소리에 귀 기울이는 아침낭송이었습니다. (메주꽃)
-과학자이자 시인 같은 주도면밀함으로 모든 세계에 조응하고 답장하는 잉골드 님의 글이 낯설기도 하고 어딘가 들어본 것도 같은 기시감도 드는 목소리였는데, 실은 제게 보내주신 수취인 불명으로 쓴 편지였구나 싶어요. 어떻게 다시 완전히 다른 조응법으로 이 세계에서의 선을 그려나가야 할지 그려나가고 있는지 다시 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뒤적새)
매월 마지막 화요일 장흥 옆가게에서 점심밥상과 오프 글방이 열립니다. 관심있는 분은 010-4719-1558로 연락 주세요~
페미니즘・소수자 읽기 6월 모임
지난 5월 모임은 당원 프로젝트로 진행한 북토크로 모임을 대신했지요. 초여름의 세계가 활짝 열릴 6월의 책 모임을 안내합니다.
모임 때마다 다음에 무슨 책을 읽을지 두루두루 이야기를 나눠요. 정희진 님의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23)을 읽자는 이야기가 나온 지도 반년이 다 되어갑니다. 한동안 느슨하고 편하게 읽어갈 책들을 읽었다면, 의자를 당기고 허리를 세워 다시 페미니즘 공부를 해볼까요?
6월의 책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한국 사회 성정치학의 쟁점들』을 소개합니다.
“…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은 자본의 질주 속에 각자도생하는 인류세 시대의 한국 사회에서 더욱 복잡해진 젠더 권력과 여성주의 담론을 분석한다. 성차별, 페미사이드, 세계 최저 출생률, 여성 할당제를 비롯한 첨예한 '젠더 갈등' 이슈들부터 '피해자 중심주의', '성적 자기 결정권', '여성성의 자원화' 같은 여성주의 담론에 이르기까지 당대 성정치학의 논쟁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재해석한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을 허물고, 경계를 사유하며, 기성 담론의 전복적인 재해석을 시도하는 페미니즘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책날개에 실린 소개 글을 옮기며 마음이 짜릿해집니다. 우리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은 이 공부가 자신의 사고와 삶의 방식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공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책 모임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요. 관심 있으신 분들, 함께해요.
・ 일시 : 6월 23일 일요일, 11시
・ 장소 : 장흥 관지마을 길날네(용산면 관지길 22-13)
・ 문의 : 수나(010-4855-1355)
당원들이 꾸리고 참여하는 ‘대안 장’ 6~7월 일정
직접 농사지은 건강한 농작물,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든 먹거리, 손수 제작한 아름다운 공예품 등을 사고팔고 나누고 교환하며 장을 꾸려갑니다.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면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어 온 전남 곳곳의 대안 장 장터에서 열릴 5월과 6월 장날 일정을 알려드려요.
‣ 마실장
・7월 6일(토)과 21일(일) 저녁 6시∼8시
・ 마실장 장옥(장흥군 용산면 인암길 4) 일대
* 마실장은 1・6일인 장흥 ‘용산오일장’ 장날과 주말이 겹칠 때 열립니다.
* 여름을 맞아 지난 장(6/16)부터 저녁에 열고 있어요.
‣ 우리들의 해방장
* 6월 22일로 예정되어 있던 6월 장이 비 소식으로 취소되었어요.
* 7월 야시장에서 만나요. 하늘의 기운을 잘 살펴 장날 일정 등 소식, 다시 전할게요!
‣ 풀풀장
・ 7월 20일(토) 정오 ~ 오후 3시
・ 수나커피(벌교읍 태백산맥길 34)
* 올해 풀풀장은 홀수달에만 열려요.^^
[탈핵텃밭에서 알려요!]이런 (탈)핵 용어⑥_소형모듈원자로(SMR)
‘(탈)핵 용어에 관해 공부 좀 하고 싶은’ 당원들을 위해 마련했습니다.
관련 용어들을 하나씩 정리해가며 차근차근 알려드려요.
‣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
소형모듈원자로(이하 SMR)는 기존 대용량 발전 원자로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전기 출력 100~300MWe(메가와트, 1MWe=1,000kW)급 이하의 원자로를 일컬어요. 기존 대형 원자로와 같은 핵분열 기반 시스템인 SMR은 전통적인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약 1/4~1/2을 생산합니다. 연간 약 15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시간당 최대 300MWe의 전력을 생산하지만, 미국 최대 소형모듈원전 설계업체인 ‘뉴스케일파워’의 77MW급 SMR은 무게 700톤에 지름과 높이가 각각 4.6m, 23.3m로 아파트 9층 높이여서 ‘소형’도 아니에요.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Sciences)의 회보에 발표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SMR은 수만 년에서 수십만 년 동안 독성을 유지하며 인류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제반 환경에 극도로 해로울 수밖에 없는 핵폐기물의 양을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SMR 사업이 많은 이윤을 창출할 거라며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한국의 기업들이 막대한 사업비를 투자하여 관련 사업을 활발히 벌여나가고 있어요. 윤석열 정부에서도 SMR을 ‘핵심기술’이라며 R&D(Research and Development,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과는 다르게 올해 SMR 관련 연구개발 예산을 작년보다 8배 많은 333억 원을 책정했다고 하네요.
[놀라놀라 땡땡땡] 아이들과 비인간동물들의 반짝이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꽃이 물에 젖는 시간, 장마가 시작되었어요. 구체화가 추상화가 되는 시간, 추상화가 구체화가 되는 시간. 땅끝 사는 다섯 살, 이하늘마음이가 꽃잎으로 그린 그림에 애미가 눈과 발만 살짝 덧그려보았습니다. (해남 당원, 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