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트럼프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논평] 트럼프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 미국의 파리협약 탈퇴에 부쳐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과 함께, 미국은 ‘국가 에너지 비상 사태’를 선언하며 파리협약 탈퇴를 선포했다. 트럼프 대통령 1기 시절 파리협약을 탈퇴한 후 2020년에 재가입했는데 다시금 탈퇴하는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이란, 리비아, 예멘과 더불어 파리협약에 서명하지 않은 4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미국은 전 세계 인구의 4%를 조금 넘지만, 전체 에너지의 약 25%를 소비하고 13% 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나라다. 또한 산업화 이후 누적 배출량도 전체의 25%에 달하는, 부동의 1위 배출국이다. 이처럼 기후 위기 유발에 대한 책임이 가장 큰 미국이 점증하는 기후 재난으로 남반구와 전 세계 민중의 삶이 전례없이 파괴되는 시점에 파리협약을 탈퇴했다. 이는 참으로 무책임하고 부정의한 일이며 규탄받아 마땅하다. 


트럼프는 취임 연설에서 미국이 다시 ‘세계 최고의 제조업 국가’로 돌아갈 것이며 이를 위해 세계 최고의 석유와 가스 생산국이 되겠다고 떠벌리며 더 많은 화석연료 채굴을 약속했다. 전 세계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이 시국에, 또한 미국 내에서 최근의 LA 산불 재앙이 화석연료 때문이라는 비판이 큰 상황에서 이런 트럼프의 정책 방향은 무책임과 부정의를 넘어서는 범죄 행위이다. 우리는 국제사회가 트럼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 그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트럼프의 반기후 정책에 대한 비판이 큰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트럼프 비판이 마치 이전 민주당 정부의 정책은 ‘친기후적’이라는 암묵적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파리협약에 따라 미국은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온실가스를 61% 감축한다는 계획이 있었고,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도 감소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현재 2005년 대비 20%의 감축 밖에 이루지 못했다. 그나마 감축분조차 많은 부분 고탄소 산업을 남반구로 이전한 탓이 크다. 민주당 정부에서도 미국의 역사적 책임에 걸맞은 실천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또한 지난 3~40년 미국에서 석유 채굴이 가장 많이 증가했던 것은 셰일오일(shale oil)이 발견되었던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 때였다. 2016년 시작된 트럼프 1기에서는 오히려 그 증가폭이 줄어들었다. 얼마 전 바이든 행정부의 에너지 담당 차관보는 미국의 석유 생산이 2016년에 비해 70% 증가했으며, 같은 시기 미국의 천연가스 수출은 0에서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섰음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매장된 무한한 화석연료가 ‘미국의 전략적 자산’이라며 추켜세웠다. 이런 현실은 미국의 민주당 정부에 대한 기대가, 미국의 ‘기후 리더십’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이율배반적인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트럼프의 미국에서 화석연료 채굴은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생산도 확대될 것이다. 미국 50개 주 중에서 재생에너지 생산이 가장 많은 것이 가장 보수적인 텍사스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에너지 민영화가 ‘완성’된 미국에서 이윤을 보장해 주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본은 돈만 된다면 화석연료든 재생에너지든 가리지 않는다. 다만 공급 불안정과 미진한 설비 보수, 에너지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차별과 배제를 당하는 저소득층, 유색인종,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질 뿐이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의 파리협약 탈퇴 선언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더 큰 문제의 한 표현일 따름이다. 미국이 파리협약 탈퇴를 철회하고 복귀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진정 미국이 역사적 책임을 다하려면 사적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한 에너지를 다시 공공의 영역으로 돌려주고, 미국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본 남반구 국가들에 배상해야 한다. 


트럼프의 파리협약 탈퇴 선언을 통해 우리가 교훈 삼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한국이 파리협약 가입국이라고 해서, 한국 정부가 ‘기후 정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기후 위기 대응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기후 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에너지 민영화를 가속화하고, ‘탄소중립’을 한다며 남반구 생태와 공동체를 파괴하는 배출권을 구매하고, 석탄발전소 폐쇄를 한다며 노동자 일자리를 빼앗는 행위는 책임 있고 정의로운 기후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윤석열 탄핵 과정에서 조금씩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요즘, 녹색당은 가장 선두에서 신속하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기후정의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2025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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