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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 오직 노동자의 손으로만 만들 수 있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 3년을 맞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처법') 시행 3년, 5인 이상 사업장 전면 시행 1년이다. 하지만 법 제정의 도화선이 되었던 김용균의 죽음은 다른 일터 이곳 저곳에서 재현되고 있다. 지난 금요일부터 또 다시 끼임 사망 사고 소식들이 뉴스에 실리고 있다. 25일 강원 원주시의 한 석재공장에서는 우즈베키스탄 청년이 2인 1조 작업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사업장에서 홀로 참변을 당했다.


우리는 법 시행만으로 노동자 죽음의 행렬을 끊을 수 없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봐야한다. 재벌 원청사들이 하청업체, 인력도급업체, 파견업체에 일감과 노동자의 권리를 묶어 저렴하게 팔아넘기는 제조업계의 악성 구조를 철폐하지 않는 이상, 아리셀 참사는 반복될 것이며 위험의 외주화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대규모 토목 공사, 고층 아파트 건설을 단기간에 완성하도록 노동자들을 몰아붙이는 건설 재벌사들은 연간 수조 또는 수십 조원의 시공금액을 올리며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 뒤에는 주택담보대출을 남발하며 아파트 건설을 부추기는 금융 자본과 '많이 건설하는 것이 곧 선'이라고 평가하는 국토부의 시공능력평가제도가 있다. '경제 성장'이라는 거대한 알리바이에 의해 정당화 되고 있는 재벌 자본의 광기를 멈추지 않는 이상, 국내 산재 사망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 부문의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땅에 묻힐 것이다.


자본은 노동자의 생명을 위계화하면서 죽음의 칼날을 더 낮은 곳에 겨눌 뿐만 아니라 죽음을 은폐한다. 작년 말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국가인권위원회의 이주노동자 사망과 관련한 연구 발표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제대로 셈하지도, 따져보지도 않았던 이 사회의 부정의를 폭로한 사건이었다. 몸을 짓이겨버리는 기계 앞에 누구를 세울 것인지 자본은 오늘도 궁리하고 있고, 국가는 이들의 죽음을 은폐하는 방식으로 사악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내/외국인을 구분하며 목숨 값을 저울질하는 인종주의를 철폐하지 않는 이상, 몽골이주청년 강태완의 죽음은 또다른 이주민의 부고로 이어질 것이다.


비판의 대상을 명확히하자. 중대재해의 반복은 법의 불안정성 때문이 아니다. 노동자의 안전불감증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중소기업의 경영난 때문도 아니다. 거대 자본이 분절화된 경제 구조 뒤에 숨어 사람을 죽이면서 떼돈을 벌도록 승인하는 정치사회경제 체제가 원인이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 포스코, 한화오션, 쿠팡, 대우건설이 살인 체제에 기생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기업 살인에 알리바이를 부여하고, 살인을 관리하는 수준에서의 입법 행위를 독점하며 체제를 유지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동료와 가족, 친구의 죽음을 겪어 슬퍼하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있다. 흩어진 힘을 모아 기업의 살인 행위에 강하게 반대하자. 처벌을 강화하고, 5인 미만 사업장에게도 중처법 적용을 전면 확대시키자. 무엇보다 노동자를 죽게 만드는 자본주의를 바꿔내자. 애도하는 마음들이 향해야할 곳은 하늘이 아니라 어두컴컴한 자본의 심장이다.


2025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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