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로켓배송 대신 공적 안전망을


[논평] 로켓배송 대신 공적 안전망을

- 택배노조의 '0시~5시 초심야배송 제한' 제안을 지지한다


“0시~오전 5시 초심야 배송을 제한해 노동자의 수면시간과 건강권을 최소한으로 보장하자”는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제안에 대해 사회적 논쟁이 불붙고 있다. 이는 초심야 배송 및 주 7일 배송으로 인한 택배노동자의 노동환경 악화와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달 22일,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제안된 대책이다. 


앞서 2021년에는 택배기사 과로사 사망 사건이 이어진 후,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하는 사회적 캠페인이 진행되었고, 택배기사의 과로사를 막기 위해 정부, 택배사, 노조, 시민사회 단체가 참여해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 합의’를 체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배송기사는 배송 업무만 할 수 있도록 물류 분류 작업에 별도 인력을 투입할 것을 합의했지만, 쿠팡에서는 현재 최종 분류를 배송기사들이 맡고 있다. 최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와 택배노조가 발표한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일평균 11.1시간 일하며 이 중 2.6시간을 물품 분류에, 56분을 프레시백 세척 및 반품 정리에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쿠팡의 ‘로켓배송’이 특히 비판받고 있는 이유다. 


택배노조의 제안에 대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일부 소비자 단체는 “새벽배송이 금지되면 늦게 퇴근하는 맞벌이 부부를 비롯해 새벽 장보기가 필수가 된 2,000만 국민들의 일상생활, 새벽배송으로 돈을 버는 택배 기사들의 삶이 모두 망가질 것”이라고 강한 비판에 나섰다. 이러한 주장은 택배노동자의 과로사에 대한 대안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다수 국민의 생활편의를 위해서라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대가로 치를 수 있다는 인식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매우 해롭다. 


녹색당은 새벽배송을 옹호하는 주장에 맞서 택배노조의 제안을 지지하며 다음과 같은 견해를 분명히 밝힌다. 하나, 초심야노동을 비롯한 야간노동은 노동자의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하므로 제한되어야 한다. 둘, 그 어떤 사회 구성원에게도 새벽 장보기가 필수가 되어야만 하는 삶이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 셋, 사회 구성원의 ‘저녁이 있는 삶’은 로켓배송과 같은 노동 착취적 서비스 상품이 아니라 공적 안전망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야근’을 납 화합물과 DDT 살충제와 같은 등급인 2A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30년 이상 야간근무를 한 노동자는 일반 노동자보다 유방암 발병률이 약 2배에 달하며, 야근·교대 근무자들이 심혈관 질환에 취약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다. 교대제로 인해 수면과 일이 정상적인 밤낮의 주기와 정반대로 되었을 경우, 신체의 내부 시계는 교란되고 파괴된다. 야간에 일을 하는 것을 결코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새벽 장보기’가 필수가 되는 삶 또한 장시간 노동이 만연화된 야근 사회의 산물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만 의식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저임금 노동시장 구조 속에서 대다수 노동자·시민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거나 자신 또는 가족을 돌볼 겨를도 없이 일터로 내몰린다. 이러한 사회구조를 그대로 두고, ‘새벽 장보기’로 ‘일상을 유지’하려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우리의 일상을 파괴하는 것은 ‘새벽배송 제한’이 아니라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회다. 


무엇보다 대다수 시민들이 과로해도 먹고살기 벅찬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생활의 불편을 ‘빈틈없는 배송서비스’로 메꾸는 것이 아니라, 숨 쉴 수 있는 삶의 ‘틈을 만드는’ 공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워킹맘’이 새벽배송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도록 육아휴직 제도를 강화하고 공공돌봄을 확충하는 것, 더 적게 일해도 생계유지가 가능하도록 임금을 높이는 것, 쉴 틈 없이 뼈 빠지게 일하고 빚 내지 않아도 살 집을 구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늘리는 것 등 우리가 마련할 수 있는 공적 대안은 차고 넘친다. 


그러므로 녹색당은 제안한다. 새벽배송을 이용할 권리 대신,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권리를 요구하자. 자본의 이해관계와 우리의 삶을 일치시키는 대신, 내 몸의 리듬과 이웃 동료시민의 필요에 귀 기울이자. 노동자의 목숨으로 편리함의 값을 치르는 대신 ‘새벽배송 강제하는 세상’을 바꾸자. 누군가의 삶을 희생시키는 대신 우리 모두의 삶을 되찾아오자. 


2025년 1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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