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발언문] 우리에게 '빵과 장미'는 아직도 멀리 있다

대전녹색당
202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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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문] 우리에게 '빵과 장미'는 아직도 멀리 있다 

- 2022년 3.8 세계 여성의 날 대전 공동행동 집회 발언문



저는 대전 유성구 소재 물류센터 에서 새벽배송 으로 근무 했던 (전) 택배 노동자로 업무 중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하고, 바로 해고 통지를 받은 사람입니다.


지난 달 12일 대전 대덕구 한 아파트 단지내 새벽에 택배 업무로 잠시 차량을 정차 한 후 배송을 하고 왔더니 입주민 한명이 다짜고짜 "차를 왜 이렇게 세웠느냐"며 화를 냈고, 저는 "주차장 이 외에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주차 면적이 좁아, 어쩔 수 없었다고 했으나 결국 그에게 멱살을 잡혔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상대는 건장한 중년 남성으로 저도 똑같이 멱살을 잡고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당시 새벽이라 아파트 경비원만 있었지만 그 역시 저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소리치는데도 경찰에 신고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경찰이 온 후에야 저는 땅바닥에 목이 졸린 채 있던 상태에서 풀려나 응급실로 갈 수 있었습니다. 경찰이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상해로 그치지 않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저항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은 쌍방폭행이라고 합니다. 새벽에 인적이 드문 시간에 길 한복판에서 그가 저를 그렇게까지 폭행할 수있었던 것은 제가 여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는데도 경비원은 말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맞으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데도 제가 저항을 했다는 이유로 쌍방폭행이 된다면 저는 그럼 죽기 직전까지 맞고만 있어야 하는게 옳은 건가요? 여성은 알아서 조심하고 피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요?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 후 저는 출근 한시간 전 회사 측 이사로 부터 전화로 해고통지를 받았습니다. 제대로 된 설명은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제가 한 일 자체가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을 보면 '영업점 및 택배노동자는 상호간 공정한 계약의 체결을 위해 표준계약서를 써야 하고, 보통 계약기간은 2년 이며, 큰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계약은 자동 갱신된다. 또한 계약을 해지할 땐 서면통지가 이뤄져야 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표준계약서가 아닌 위수탁 계약서를 작성 하였고, 계약 기간은  2년이 아닌 3개월이었습니다. 이 계약서에도 계약을 해지할 땐 서면통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회사 이사는  출근 한시간 전 전화로 구두로 통지 하였습니다.


또한 입사 면접때 에는 주6일 근무 1일 휴무 라고 이야기 했지만 막상 근무에 들어가니 본인 물량을 다 빼지 못하면 휴무는 없다고 말을 바꾸었으며, 이로 인해 저는 24일 근무중 23일을 휴일 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사고가 나자 이틀치 급여 약 20만원을 제외 하고 월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또한 사전에 이야기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입고 있는 이 옷도 작업복을 제대로 받지 못해 전에 근무 했던 회사 선배 에게 부탁해 이 잠바를 받고 회사 로고를 떼내어 작업복 으로 입었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일을 할 때도 계약서를 쓰고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일단 일을 시작하고 계약서를 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다들 그렇게 일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노조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조합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게 애초에 이런 일인 줄 모르고 일을 시작한 제 잘못일까요? 저는 분명 일을 했는데 제가 한 일은 노동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게 과연 저에게만 해당되는 걸까요? 아직도 많은 노동자들이 다양한 이유로 무시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대체 이러한 일들이 언제쯤 사라질까요.


이번 사건을 겪으며 우리나라는 아직도 여성이 안전한 사회가 아니고 노동자가 편히 일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3.8.여성의 날입니다. 여성의 날 슬로건이 “빵과 장미를 달라” 입니다. ‘빵’은 생계를 위해 일할 권리를, ‘장미’는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권리를 말한다고 합니다. 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빵과 장미’는 아직도 멀다고 느낍니다. 여성과 노동자가 정당하게 대우받는 그 날까지 저도 힘을 모아 함께 하겠습니다. 투쟁!


2022년 3월 8일

(전) 택배노동자 이예슬 당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