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 정책브리핑 보기: [연속 정책브리핑 ④] 집이 품고 있는 것들 : 성동구 반지하 전수조사의 성과와 과제

[연속 정책브리핑 ⑤]
안전하고 부담가능한 집을 향해 : 비적정주거 발견 이후 주거권의 과제
- 김기성(서울녹색당 정책위원)
1. 들어가며
성동구, 그리고 서울시에서 반지하가구를 찾아내고 위험을 덜어내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해도 반지하는 여전히 재난에 취약하고, 지상으로의 이주를 지원하는 정책은 더디다. 반지하에 거주하던 가구가 서울시의 지상층 임대주택을 부담하기 어렵기 때문에 바우처와 같은 현행 사업이 성과가 나기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떠나간 이를 뒤로 하고 반지하에는 다시 누군가가 들어와 삶을 이어 간다. ‘발견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과제는 남는다.
작년 여름 참사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은 ‘반지하 일몰제’라는 표어를 던졌지만, 이내 성급했다면서 ‘충분한 기간 둘 것’이라며 말을 주워 담았다. 반지하주택에 대한 매입마저 수월히 진척되지 않자, 그는 재개발·재건축이 진행되면 반지하 문제가 모두 풀릴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만을 전하고 있다. 반지하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는 ‘없애라’라는 언명으로 비적정주거의 문제가 해소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소유주의 재산권 문제는 물론이며, 임차인 역시 도시의 감당할 수 없는 주거비 부담으로 인해 비적정주거로 기꺼이 돌아오곤 한다.
결국 비적정주거 발견 이후의 과제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관점, 그리고 그 집에 들어와 살게 되는 ‘사람’에 대한 관점을 모두 견지하지 않으면 해소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선 비적정주거의 물리적 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나아가 주거·주택 영역 전반에서 어떻게 부담가능성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광범위한 변화가 요구될 것이다. 이는 이번 시리즈 논평에서 다루어진 공공임대주택, 건축물 성능 개선을 비롯해 도시계획이나 수도권 집중과 같은 다른 영역을 포괄한다.
이에 대한 해답을 한두 편의 글에서 찾을 순 없다. 다만 이 글에서는 비적정주거를 발견 이후의 과제와 관련한 일화 하나를 소개함으로써 앞으로의 해결 방안에 대한 실마리를 탐색하고자 한다. 이는 안전하고 부담가능한 집을 향한 미래를 탐색하기 위해, 비적정주거가 어떻게 형성되고 이용되어 왔는지에 관한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다.
2. 비적정주거는 왜 계속되는가? : 서울시 위반건축물 이행강제금을 둘러싼 일화
비공식주거(informal housing)란 개념이 있다. 이는 공식적인 주거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주로 국가 등의 제도에 의해 공인 혹은 관리되지 않는 유형의 주거 유형을 통칭한다. 판자촌이나 비닐하우스부터 비인가주택이나 초기 용도와 달리 ‘방쪼개기’로 생겨난 방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비공식주거는 과거 주택이나 도시와 관련한 정책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국가에서 종종 주목받았지만, 최근에는 미국이나 영국처럼 제도가 완비된 국가들에서도 주목받는다(Herbert et al. 2022).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도 한국처럼 방을 쪼개어 만들어진 비공식주거 유형이 많이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이를 주로 불법건축물 또는 위반건축물이라 부른다. 이는 ‘주택법’보다는 ‘건축법’의 적용을 받아 규정된 것으로, 정해진 용적률·건폐율을 초과하는 경우, 건물 옥상에 옥탑방을 만들어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경우, 다가구·다세대주택 내부에 가벽을 설치해 방수를 늘리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규정을 벗어난 불법건축물에 대해서는 ‘건축법’ 제80조에 의해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허가권자(지자체의 장)는 위반건축물에 대해 건물소유자에게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데,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시 이행강제금을 반복적으로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이행강제금의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주택을 비롯한 건물소유자들이 이행강제금 납부를 감수하고 세를 놓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행강제금이 반복적으로 부과된다고 해도, 월세로 거둘 수 있는 수익이 더 크다 보니 이행강제금을 계속 납부하면서도 이익을 좇는 상황이 지속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국회는 2019년 4월 건축법을 개정하여 상습적 위반의 경우 가중 금액과 부과회수 상한을 상향하였고, 구체적인 가중 비율은 조례로써 정하도록 하였다. 이에 여러 지자체의 이행강제금에 관한 건축조례가 개정되었으며, 2023년 8월 현재 총 67개 지자체에 이행강제금 가중 부과에 관한 조항이 마련되어 있다.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로 인해 서울에서도 불법건축물 문제가 화두가 된 바 있다. 이에 2023년 1월, 서울시는 건축 조례를 일부 개정하여 위반건축물에 대해 이행강제금을 가중 부과하겠다는 입법예고를 게시했다(서울특별시 2023)1). 그러나 입법예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입법예고 게시판의 댓글란에는 500건이 넘는 반대 의견이 달렸다. 대부분의 내용은 이행강제금 증액이 서민들의 삶을 침해하고, 이전 소유자가 한 행위에 대해 현 소유자가 이행강제금을 내는 것이 부당하다는 내용이다. 글 중에는 ‘생계형 임대인에게 사형선고’라는 표현마저 등장한다.
결국 며칠 뒤, 서울시의회는 이행강제금 인상안을 상정·심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앞서 말한 이행강제금 가중 부과 조항을 명시한 67개의 지자체에는 서울시, 그리고 서울 내 자치구는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임대인들의 조직된 목소리는 강력하다.
3. 비적정주거는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이 일화의 에필로그는 아직 진행 중이다. 위 입법예고의 댓글에서 대다수의 소유주는 ‘위반건축물 양성화’를 외치고 있다. 위반건축물 양성화는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위반건축물에 대해 ‘합법적으로’ 사용승인을 받도록 하는 제도로, 1980년부터 2014년까지 5차례 시행된 바 있다. 현재 국회에는 위 특별법의 8개 법안이 계류되어 있다.
이미 여러 연구에서 위반건축물 양성화 제도는 준법 시민의 박탈감을 키우고, 건물주들에게 ‘곧 괜찮아진다’라는 기대심리를 갖게 함으로써 위반건축물을 양산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신평우 2020; 김동연 2020). 조만간 위반건축물이 양성화될 것이라는 기대는 건물주가 비적정주거를 개선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작동한다. 올 7월에는 여야 국회의원 31명이 참석한 토론회가 열리고 불법건축물 양성화와 이행강제금 제도개선을 논의했다. 이 토론회의 이름은 ‘서민주택 개조에 따른 영구벌금제 개선을 위한 토론회’다. 이행강제금은 ‘영구적인 벌금’이 되고, 소유주들은 ‘속출하는 피해자’로 호명된다.
한국일보 이혜미 기자의 르포, 『착취도시, 서울』(2020)에는 비적정주거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살아가는 임대인 그리고 중간관리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종종 비적정주거에 살아가기도 하면서, 비적정주거를 재생산하고 지속시키는 행위자로 기능한다. 이러한 비적정주거 임대상품의 재생산 메커니즘에 대해, 정진영(2021)은 주택의 ‘비적정함’이야말로 재개발·재건축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자산’으로서 기능하며, 임대인의 상대적 빈곤마저도 비적정 주거의 재생산 기제로 작동한다고 보았다.
비공식주거는 국가의 규제를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비공식’이지만, 그 생산과 재생산에는 국가가 연루되어 있다(Herbert et al. 2022). 불법건축물 양성화와 같은 묵인(benign neglect), 재개발과 용적률 완화와 같은 이윤 우위의 도시계획은 서울이라는 도시 내 행위자들을 비공식주거의 재생산으로 유도한다.
주택의 물리적 상태에 대해 추상적 기준을 제시하여 국가가 임대차시장에 개입할 법적·행정적 여지를 좁혀놓고 있는 현행 ‘최저주거기준’ 역시 그렇다(임성훈 2021). 현행 최저주거기준은 가구구성별 최소 주거면적 및 용도별 방의 개수를 규정하고 있고, 수도시설·부엌 등 필수 설비를 규정하고 있다. 주택의 구조·성능에 대한 기준도 명시되어 있으나 구체적이지 않고, 강행규정으로서의 성격도 약하다. 지방정부가 신·개축을 허가할 때 관련 규정을 요구할 의지도 없고, 도시형생활주택과 같이 최저주거기준을 무력화하는 주택 유형이 추가되기도 한다.
4. 안전하고 부담가능한 집을 향해
기후위기가 우리가 살아갈 시대의 안전에 경종을 울린다. 재난으로 드러난 위험과 취약함을 다음의 그 자리에 머물 이들에게 그대로 남겨두는 것은 이 경종에 응답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앞선 재난이 어떤 경로로 빚어졌는지 들여다보고, 그 경로에 간섭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고 무겁다.
비적정주거를 발견하는 것은 위험을 확인하고 대비하는 첫걸음이며, 이제 발견 이후의 과제를 생각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을 포함한 부담가능한 주택을 공급하는 일, 최저주거기준을 개선하고 이를 주거급여에 연동해 주택 품질을 개선하는 일, 비적정주거가 재생산되는 영역에 개입해 그 고리를 차단하는 일 등이 이에 포함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불어난 위험에 맞추어 안전하고 건강하게 거주할 권리로서의 주거권을 새로이 그리고 더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이제까지의 경제성장 우선주의와 개발주의에서 벗어나, 시민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주거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1) 서울특별시 공고 제2023-152호, “서울특별시 건축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입법예고”. https://legal.seoul.go.kr/legal/front/page/lawmake.html?pAct=lawmake_view&pLawmakeNo=3030&cate=L
[참고문헌]
- 김동연. 2020. 서울시 소규모 위반 건축물에 대한 인식 및 관리방향 연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서울특별시. 2023. 서울특별시 공고 제2023-152호, “서울특별시 건축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입법예고”. https://legal.seoul.go.kr/legal/front/page/lawmake.html?pAct=lawmake_view&pLawmakeNo=3030&cate=L
- 신평우. 2020. “불법적 건축행위의 제도개선에 관한 법제적 검토”. 부동산연구, 30(4): 45-55.
- 이혜미. 2020. 『착취도시, 서울』. 글항아리.
- 임성훈. 2021. “주거권 보장의 관점에서 최저주거기준에 대한 행정법적 연구”. 행정법연구, 66: 175-203.
- 정진영. 2021. “비적정주거 임대상품의 재생산 메커니즘: 서울시 (반)지하, 고시원, 쪽방을 사례로”. 한국도시지리학회지, 24(3): 73-87.
- Herbert, C. W., Durst, N. J., & Nevárez Martínez, D. (2022). A Typology of Informal Housing in the United States: Lessons for Planners. Journal of Planning Education and Research, 0739456X221136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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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정책브리핑 ⑤]
안전하고 부담가능한 집을 향해 : 비적정주거 발견 이후 주거권의 과제
- 김기성(서울녹색당 정책위원)
1. 들어가며
성동구, 그리고 서울시에서 반지하가구를 찾아내고 위험을 덜어내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해도 반지하는 여전히 재난에 취약하고, 지상으로의 이주를 지원하는 정책은 더디다. 반지하에 거주하던 가구가 서울시의 지상층 임대주택을 부담하기 어렵기 때문에 바우처와 같은 현행 사업이 성과가 나기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떠나간 이를 뒤로 하고 반지하에는 다시 누군가가 들어와 삶을 이어 간다. ‘발견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과제는 남는다.
작년 여름 참사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은 ‘반지하 일몰제’라는 표어를 던졌지만, 이내 성급했다면서 ‘충분한 기간 둘 것’이라며 말을 주워 담았다. 반지하주택에 대한 매입마저 수월히 진척되지 않자, 그는 재개발·재건축이 진행되면 반지하 문제가 모두 풀릴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만을 전하고 있다. 반지하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는 ‘없애라’라는 언명으로 비적정주거의 문제가 해소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소유주의 재산권 문제는 물론이며, 임차인 역시 도시의 감당할 수 없는 주거비 부담으로 인해 비적정주거로 기꺼이 돌아오곤 한다.
결국 비적정주거 발견 이후의 과제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관점, 그리고 그 집에 들어와 살게 되는 ‘사람’에 대한 관점을 모두 견지하지 않으면 해소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선 비적정주거의 물리적 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나아가 주거·주택 영역 전반에서 어떻게 부담가능성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광범위한 변화가 요구될 것이다. 이는 이번 시리즈 논평에서 다루어진 공공임대주택, 건축물 성능 개선을 비롯해 도시계획이나 수도권 집중과 같은 다른 영역을 포괄한다.
이에 대한 해답을 한두 편의 글에서 찾을 순 없다. 다만 이 글에서는 비적정주거를 발견 이후의 과제와 관련한 일화 하나를 소개함으로써 앞으로의 해결 방안에 대한 실마리를 탐색하고자 한다. 이는 안전하고 부담가능한 집을 향한 미래를 탐색하기 위해, 비적정주거가 어떻게 형성되고 이용되어 왔는지에 관한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다.
2. 비적정주거는 왜 계속되는가? : 서울시 위반건축물 이행강제금을 둘러싼 일화
비공식주거(informal housing)란 개념이 있다. 이는 공식적인 주거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주로 국가 등의 제도에 의해 공인 혹은 관리되지 않는 유형의 주거 유형을 통칭한다. 판자촌이나 비닐하우스부터 비인가주택이나 초기 용도와 달리 ‘방쪼개기’로 생겨난 방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비공식주거는 과거 주택이나 도시와 관련한 정책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국가에서 종종 주목받았지만, 최근에는 미국이나 영국처럼 제도가 완비된 국가들에서도 주목받는다(Herbert et al. 2022).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도 한국처럼 방을 쪼개어 만들어진 비공식주거 유형이 많이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이를 주로 불법건축물 또는 위반건축물이라 부른다. 이는 ‘주택법’보다는 ‘건축법’의 적용을 받아 규정된 것으로, 정해진 용적률·건폐율을 초과하는 경우, 건물 옥상에 옥탑방을 만들어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경우, 다가구·다세대주택 내부에 가벽을 설치해 방수를 늘리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규정을 벗어난 불법건축물에 대해서는 ‘건축법’ 제80조에 의해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허가권자(지자체의 장)는 위반건축물에 대해 건물소유자에게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데,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시 이행강제금을 반복적으로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이행강제금의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주택을 비롯한 건물소유자들이 이행강제금 납부를 감수하고 세를 놓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행강제금이 반복적으로 부과된다고 해도, 월세로 거둘 수 있는 수익이 더 크다 보니 이행강제금을 계속 납부하면서도 이익을 좇는 상황이 지속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국회는 2019년 4월 건축법을 개정하여 상습적 위반의 경우 가중 금액과 부과회수 상한을 상향하였고, 구체적인 가중 비율은 조례로써 정하도록 하였다. 이에 여러 지자체의 이행강제금에 관한 건축조례가 개정되었으며, 2023년 8월 현재 총 67개 지자체에 이행강제금 가중 부과에 관한 조항이 마련되어 있다.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로 인해 서울에서도 불법건축물 문제가 화두가 된 바 있다. 이에 2023년 1월, 서울시는 건축 조례를 일부 개정하여 위반건축물에 대해 이행강제금을 가중 부과하겠다는 입법예고를 게시했다(서울특별시 2023)1). 그러나 입법예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입법예고 게시판의 댓글란에는 500건이 넘는 반대 의견이 달렸다. 대부분의 내용은 이행강제금 증액이 서민들의 삶을 침해하고, 이전 소유자가 한 행위에 대해 현 소유자가 이행강제금을 내는 것이 부당하다는 내용이다. 글 중에는 ‘생계형 임대인에게 사형선고’라는 표현마저 등장한다.
결국 며칠 뒤, 서울시의회는 이행강제금 인상안을 상정·심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앞서 말한 이행강제금 가중 부과 조항을 명시한 67개의 지자체에는 서울시, 그리고 서울 내 자치구는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임대인들의 조직된 목소리는 강력하다.
3. 비적정주거는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이 일화의 에필로그는 아직 진행 중이다. 위 입법예고의 댓글에서 대다수의 소유주는 ‘위반건축물 양성화’를 외치고 있다. 위반건축물 양성화는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위반건축물에 대해 ‘합법적으로’ 사용승인을 받도록 하는 제도로, 1980년부터 2014년까지 5차례 시행된 바 있다. 현재 국회에는 위 특별법의 8개 법안이 계류되어 있다.
이미 여러 연구에서 위반건축물 양성화 제도는 준법 시민의 박탈감을 키우고, 건물주들에게 ‘곧 괜찮아진다’라는 기대심리를 갖게 함으로써 위반건축물을 양산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신평우 2020; 김동연 2020). 조만간 위반건축물이 양성화될 것이라는 기대는 건물주가 비적정주거를 개선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작동한다. 올 7월에는 여야 국회의원 31명이 참석한 토론회가 열리고 불법건축물 양성화와 이행강제금 제도개선을 논의했다. 이 토론회의 이름은 ‘서민주택 개조에 따른 영구벌금제 개선을 위한 토론회’다. 이행강제금은 ‘영구적인 벌금’이 되고, 소유주들은 ‘속출하는 피해자’로 호명된다.
한국일보 이혜미 기자의 르포, 『착취도시, 서울』(2020)에는 비적정주거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살아가는 임대인 그리고 중간관리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종종 비적정주거에 살아가기도 하면서, 비적정주거를 재생산하고 지속시키는 행위자로 기능한다. 이러한 비적정주거 임대상품의 재생산 메커니즘에 대해, 정진영(2021)은 주택의 ‘비적정함’이야말로 재개발·재건축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자산’으로서 기능하며, 임대인의 상대적 빈곤마저도 비적정 주거의 재생산 기제로 작동한다고 보았다.
비공식주거는 국가의 규제를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비공식’이지만, 그 생산과 재생산에는 국가가 연루되어 있다(Herbert et al. 2022). 불법건축물 양성화와 같은 묵인(benign neglect), 재개발과 용적률 완화와 같은 이윤 우위의 도시계획은 서울이라는 도시 내 행위자들을 비공식주거의 재생산으로 유도한다.
주택의 물리적 상태에 대해 추상적 기준을 제시하여 국가가 임대차시장에 개입할 법적·행정적 여지를 좁혀놓고 있는 현행 ‘최저주거기준’ 역시 그렇다(임성훈 2021). 현행 최저주거기준은 가구구성별 최소 주거면적 및 용도별 방의 개수를 규정하고 있고, 수도시설·부엌 등 필수 설비를 규정하고 있다. 주택의 구조·성능에 대한 기준도 명시되어 있으나 구체적이지 않고, 강행규정으로서의 성격도 약하다. 지방정부가 신·개축을 허가할 때 관련 규정을 요구할 의지도 없고, 도시형생활주택과 같이 최저주거기준을 무력화하는 주택 유형이 추가되기도 한다.
4. 안전하고 부담가능한 집을 향해
기후위기가 우리가 살아갈 시대의 안전에 경종을 울린다. 재난으로 드러난 위험과 취약함을 다음의 그 자리에 머물 이들에게 그대로 남겨두는 것은 이 경종에 응답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앞선 재난이 어떤 경로로 빚어졌는지 들여다보고, 그 경로에 간섭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고 무겁다.
비적정주거를 발견하는 것은 위험을 확인하고 대비하는 첫걸음이며, 이제 발견 이후의 과제를 생각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을 포함한 부담가능한 주택을 공급하는 일, 최저주거기준을 개선하고 이를 주거급여에 연동해 주택 품질을 개선하는 일, 비적정주거가 재생산되는 영역에 개입해 그 고리를 차단하는 일 등이 이에 포함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불어난 위험에 맞추어 안전하고 건강하게 거주할 권리로서의 주거권을 새로이 그리고 더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이제까지의 경제성장 우선주의와 개발주의에서 벗어나, 시민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주거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1) 서울특별시 공고 제2023-152호, “서울특별시 건축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입법예고”. https://legal.seoul.go.kr/legal/front/page/lawmake.html?pAct=lawmake_view&pLawmakeNo=3030&cate=L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