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논평]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 -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한 구조 개선의 때가 왔다

대전녹색당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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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 -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한 구조 개선의 때가 왔다



지난 겨울 산업재해 사망 유가족들의 단식 끝에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오늘 1월 27일 시행된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 후 적용되는 반쪽짜리 법안임에도 언론에는 이 법안이 부당하다는 성토 기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광주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두 차례나 있었던 비극적인 사고는 우리의 노동현장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광주의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의 실종자 수색을 타는 마음으로 지켜보며, 기업은 산재 사망 예방을, 정부와 법원은 중대 재해 기업에 엄정한 처벌을, 국회는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을 할 것을 촉구한다.


노동자가 공장의 부품으로 소비되는 것은 공상과학 소설의 허구적인 장면이 아니다. “지금은 70년대보다 낫지 않느냐”, “OECD 산재 사망 1위라는 것은 통계가 잘못된 것이다”라는 말을 감히 오늘도 직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는 정부와 기업이 먼저 나서지 않고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투쟁의 결과로 노동현장이 조금씩 개선되어왔다. 기업은 수십년 째 “현실성이 없다” 내지는 “그러다 망한다” 는 말만 반복해왔을 뿐이고, 정부와 법원, 국회 역시 기업을 처벌하는 것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주저해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산재 사망자는 828명이다. 그러나 이는 산재보험 보상을 기반으로 한 통계일 뿐 실제 추정치는 2,146명에 이른다. 여기에는 노동자지만 노동자로 부르지 못하는 자영업자,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화물차주,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해를 거듭해도 크게 줄어들지 않은 산재 사망을 줄이기 위해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에 이견이 없다. 그러나 수년 동안 원청∙하청 구조의 문제가 제기 되었는데도 기업도 정부도 이를 개선할 의지가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의 ‘처벌’과 ‘파산’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하는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처벌은 산재 사망을 줄이는 근본 대책이 되지 않는다”고 부르짖던 기업들은 과연 무얼 하고 있었는가. 기업은 법을 무력화 하고 형사처벌을 피할 방법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지 말고 노동자와 함께 산업 재해를 막을 방안들을 마련하는데 사활을 거시라.


2002년 노동건강연대가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2003년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을 실행한 지 20년 가까이 되었다. 노동자의 죽음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거나 꼬리 자르기로 면피하는 관행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반복되는 죽음은 더 이상 개인의 불운과 부주의를 탓할 수 없다. 정부와 법원은 이 법의 취지가 무색해지지 않게 중대 재해를 일으킨 경영 책임자들에게 엄정하고 공정하게 법의 잣대를 적용해야만 한다. 국민이 죽어가는데 대체 어떤 국익이 그보다 우선할 수 있단 말인가.


오늘 시행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2020년 기준 산재사고 사망자 81%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였고 5인 미만 사업장의 사망자가 35%에 이른다. 벌써부터 처벌을 피하기 위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쪼개기 편법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며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도 5인 미만 사업 사업장이 법 적용 예외 대상이 된 것에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국민을 위한 국회라면 전체 노동자의 40%를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즉각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는 매일 이름 모르는 노동자를 떠나보내고 있다. 많은 경우 그의 사연도 억울함도 잘 알지 못하기에 그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에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담는다. 오늘 하루 더 살아남은 우리는 고인에게 빚을 진 마음으로 한 명의 노동자가 죽지 않고 더 살 수 있는 노동 현장을 만들기 위한 투쟁에 연대한다. 숫자와 이니셜로만 남은 모든 산재 사망 노동자들을 애도하며, 기업과 정부와 법원, 그리고 국회가 노동자들을 위해 움직이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2022년 1월 27일 

대전녹색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