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정책브리핑 보기: [연속 정책브리핑 ①] 기후불평등과 주거권: 기후불평등 대책 공공선매권(2023. 7. 24.) - 김유리(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연속 정책브리핑 ②] 기후불평등과 주거권: 기후위기 완화정책으로써의 주거정책(2023. 7. 31.) - 김기성(서울녹색당 정책위원)
1. 기후위기 시대의 주거권과 주거정책의 필요성
2022년 한반도 중부에 내린 폭우로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한 가족이 사망했다. 일상적인 주거 공간에서 재난을 맞이한 가족은 기후위기 시대에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했고, 결국 생명권마저 침해당했다. 올해 7월 비구름이 다시 한번 한반도를 거치며 중부 지방에 큰비를 내렸고, 산사태와 범람으로 인해 여러 지역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연구나 행정에서는 기후위기 취약지역을 찾아내고자 노력하지만, 애초에 ‘극단적 기상현상’이기에, 한때는 안전하고 쾌적하다고 여겨졌던 공간·환경도 기후위기 속에서 어느 순간 재난이 발생하는 현장이 되곤 한다. 재난이 빈발할 곳을 발견하고, 재난을 대비하기 위한 안전 체계를 갖추는 적응 정책은 중요하지만, 탄소배출량을 줄여 사회 전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감소시키려는 시도, 곧 완화정책에 대한 고려가 항상 수반되어야 한다.
주거 부문은 기후위기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과 동시에, 기후위기에 원인을 제공하는 영역이다. 주거 부문은 주택의 건축과 폐기, 도시계획, 토지의 이용, 에너지 사용 등과 관련해 기후위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주거가 기후위기의 주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에 미치는 영향은 여러 문서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계측된다. 유럽위원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주거정책을 제안하면서, 주거 부문이 건물의 운영과 전기·열연료의 사용으로 EU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40%, 온실가스 배출량의 36%까지 차지한다고 추정한 바 있다(EC, 2020). 특히 서울시처럼 건물밀집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건물 부문의 에너지 사용량 비중이 상당히 높은데, 2020 서울시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에서는 에너지 소비 부문 배출량 가운데 건물 분야가 73.5%를 차지하며, 가정용 건물이 건물 분야 중 42.7%를 차지한다고 추정했다(서울특별시, 2022). 기후위기 시대에 주거 부문의 탄소배출량 감축은 그 필요성과 잠재력 모두 상당히 크다.
2. 한국에서의 주거 및 건축 부문 완화정책 현황과 한계
한국에서 건축 부문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 전반을 규정하는 ‘녹색건축물 조성지원법’은 2012년 제정되어 몇 차례 개정되어 왔다. 주요한 변화는 ▶2015년 조성사업 구체화 및 그린리모델링 활성화 조항 신설, ▶2017년 제로에너지건축물 조항 신설, ▶2021년 공공건축물의 에너지효율 개선 의무화로 정리할 수 있다. 법률의 제정에 발맞추어 지자체의 조례도 마련되어 현재까지 전국의 모든 시도, 50개의 시군구에 녹색건축물에 관한 조례가 설치되어 있다.
한국에서 건축 분야의 에너지 감축 혹은 전환 프로그램은 크게 에너지효율에 관한 등급제 방식과 건축물의 에너지효율화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전자는 에너지효율등급 인증제와 제로에너지건축물(ZEB)로, 후자는 에너지효율개선사업과 그린리모델링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등급제의 경우, 기존에 존재하던 에너지효율등급제와 신규 도입된 제로에너지건축물 등급제를 혼용하고 있다. 에너지효율화 프로그램은 점차 그린리모델링사업으로 통합되는 추세인데, 현행 제도는 공공부문 건축물에 대해서는 개량·수선 비용을 직접 투입하고 민간부문 건축물에 대해서는 공사비의 대출 이자를 보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시급성과 주거 부문의 잠재력에 비한다면, 이를 다루는 정책은 충분하지도 정교하지도 못하다. 우선 에너지등급제의 경우 확산이 더딜뿐더러, 제시된 계획에 맞춘 준비가 불충분하다. 2021년 12월, 국토교통부는 ‘국토교통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발표하며 향후 신축건축물에 대한 제로에너지건축물 의무화 기준을 강화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2021년 발표된 세부적인 로드맵은 아래와 같다.
연도 | 내용 (㎡은 연면적) |
2020 | - 공공 1,000㎡ 이상(5등급) |
2023 | - 공공 500㎡ 이상(5등급) - 공공 공동주택 30세대 이상(5등급) |
2024 | - 민간 공동주택 30세대 이상(5등급) |
2025 | - 공공 500㎡ 이상(일부, 4등급) - 민간 1,000㎡ 이상(5등급) |
2030 | - 공공 500㎡ 이상(일부, 3등급) - 민간 500㎡ 이상(5등급) |
2050 | - 전 건물(1등급) |
2050년까지 모든 건물에 1등급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에 비해, 현재까지 추진되어 온 ZEB 실적은 저조할 뿐 아니라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다. 현행 ZEB 인증은 ▶건축물에너지효율등급 1++ 이상, ▶에너지자립률 20% 이상, ▶에너지소비량 계측 및 실시간 관리시스템을 요건으로 하고, 에너지자립률 수준에 따라 1~5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인증은 건축물 설계도를 바탕으로 인증하는 예비인증, 현장점검 및 준공 평가를 통해 인증하는 본인증으로 나뉜다.
2017년 도입 이후 2023년 7월 21일 현재까지 인증된 ZEB 건축물은 총 3,706건(중복 제외)이다. 한국의 노후주택 및 노후건축물 숫자와 향후 로드맵을 고려하면 현재까지의 실적은 매우 저조하며, 그마저도 84.7%는 예비인증이다. 현행법은 예비인증을 취득한 건물이 본인증을 취득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규제나 처벌 규정도 없다(주재성·이자은, 2022). 용도별로는 교육연구시설(35.6%), 업무시설(16.9%), 교정·군사시설(8.0%)이 다수이며, 주거용 건물의 비율은 2.1%에 불과하다. 본인증을 받은 주거용건축물은 3,706건 중 13건에 불과하다. 시도별로 보면 서울시 소재 인증건축물은 289건(7.8%)으로 서울의 인구와 건축물밀집도를 고려할 때 적다.
(단위 : 건) |
등급 | 인증 상태 | 합계 |
본인증 | 예비인증 |
ZEB 1 | 33 | 86 | 119 |
ZEB 2 | 24 | 84 | 108 |
ZEB 3 | 71 | 254 | 325 |
ZEB 4 | 164 | 697 | 861 |
ZEB 5 | 274 | 2,019 | 2,293 |
합계 | 566 (15.3%) | 3,140 (84.7%) | 3,706 (100.0%) |
공공건물에 대한 직접지원과 민간건물에 대한 이자지원을 골자로 하는 그린리모델링사업 역시 성과가 충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나마 공공부문의 그린리모델링 사업은 2020년 노후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그린리모델링 사업 추진으로 변화가 있었다. 한국 정부는 2020년부터 15년 이상 경과한 영구임대·매입임대주택에 대한 그린리모델링을 추진하고 투입 예산을 2021년 3,645억원, 2022년 4,806억원으로 크게 늘렸으나 2023년에는 예산을 2,046억으로 삭감했다(토지주택연구원·한국도시연구소, 2023).
(단위 : 건) |
|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2021년 | 2022년 |
서울 | 996 | 512 | 697 | 1237 | 964 | 758 | 386 |
전국 | 10,847 | 8,551 | 9,278 | 10,435 | 12,005 | 11,954 | 7,217 |
그러나 건축물 재고 총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노후건물의 비율이 높은 민간건물에서의 성과는 미흡하다. 2014~2022년까지의 지원실적은 총 71,281건이며, 2021년 이후에는 오히려 그 실적도 감소했다. 예산 역시 2021년 1,525억에서 2022년 903억으로 감소했다. 서울의 경우, 제로에너지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집행실적이 상대적으로 적다. 현행 이자지원의 낮은 지원율, 시공업자의 이해도 부족, 공사 기간 머무를 주택의 부족 등의 이유로 정책의 확산이 줄곧 미진하다(박미선 외, 2021).
3. 유럽의 사례와 시사점
최근 유럽에서는 기후위기 시대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대대적인 주택 에너지효율화 정책을 개진하고 있다. 2020년 EU 집행위원회는 리노베이션 물결 이니셔티브(renovation wave inititative)를 통해 주택의 에너지 효율화를 추진하고, 공공건물을 시작으로 빠른 움직임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2030년까지 에너지비효율 건물 3,500만 채를 개조한다는 상당한 목표가 포함되어 있다. 2023년 3월, 유럽의회와 집행위원회는 ‘건물의 에너지 성능 지침(Energy Performance of Buildings Directives)’을 개정하여 2030년까지 공공건물 및 주거용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대폭 개선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2026년 1월부터 신축 공공건물, 2028년 1월부터 모든 신축 건물에 방출제로(zero-emission) 기준을 적용할 것을 밝혔다. 기존 건축물들에 대해서는 공공·비거주용·거주용 별로 나누어 2027~2033년까지 일정 수준의 에너지수행등급을 충족시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유럽에서도 EU에서 정한 목표치에 대해 여러 국가에서 충돌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이탈리아, 독일,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 국가에서는 건축비용 상승, 인플레이션, 재산권 침해 등의 이유로 반발이 일고 있다(POLITICO, 2023/06/05).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정책은 사회적인 갈등을 일으키고, 기후위기 시대에 장기적으로 필요한 정책은 다시 단기적 관점에 의해 휘발될 위험이 있다.
2022년 12월 발표된 UN 인권위원회의 기후위기 시대 주거권에 대한 특별보고서에서는 ‘주거 영역의 정의로운 전환’의 필요성을 천명하고, 전환을 위한 비용을 국가, 공적 기관, 납세자, 주택소유자, 임차인 등 영향을 받는 집단들 사이에서 공평하게 분담되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UN HRC, 2022). 한국에서도 예정된 건축 부문의 탄소중립프로그램에 맞추어 나타날 수 있는 현상들을 점검하고, 이에 맞춘 실질적인 계획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여기에는 주거 영역의 기후위기 완화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어떻게 시민들에게 부담가능한 주택(affordable housing)을 공급할 것인지, 그리고 공공부문 주택 프로그램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주거 부문의 에너지효율화 프로그램은 기후위기 완화만이 아니라 저소득층의 주거환경 개선, 소득재분배 등 사회경제적 효과 역시 기대할 수 있다(박미선 외 2022). 특히 공공임대주택은 상대적으로 재산권에 관한 복잡한 이해관계를 덜 고려할 수 있고, 민간주택의 개량 과정에서의 임시이주공간으로서의 활용가능성도 품고 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최근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주거 부문의 기후위기 대응에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을 더 좁혀놓았다.
기후위기 시대의 주거 혹은 주택정책은 재난으로 인해 위협받을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과 주거정책을 활용해 기후위기를 완화하는 목적을 결합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기존에 ‘주거권 보장’이라는 표어 아래 진행되어 온 어떤 정책들은 재고되어야 하며, 반대로 어떤 정책들은 새롭게 평가되어야 한다. 새로이 평가되고 추진될 정책의 구체적인 로드맵과 그 영향에 대한 평가가 수반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완화를 고려한 주거정책은 ▶공공임대주택을 주거권 보장과 기후위기 완화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임대·매입임대 등 아직 정비되지 않는 노후공공임대주택에 대한 그린리모델링을 활성화 및 감리 강화, ▶그린리모델링 민간이자지원사업의 이자지원 확대 및 다른 방식의 유도 체계 조성, ▶제로에너지빌딩(ZEB) 로드맵 실현을 위한 인증체계 정비, ▶ZEB 도입 이후 발생할 건설비용 상승을 염두에 둔 부담가능한 주택으로의 공급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 박미선, 김수진, 저윤지, 이후빈, 서정석, 홍다솜, 정진영, 김경아. 2021.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주택 그린리모델링 추진방안. 세종: 국토연구원.
- 서울시. 2022. 서울시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2020년도분).
- 주재성, 이자은. "녹색건축물 조성 활성화의 제도적 한계: 세종특별자치시를 중심으로". 2022년 한국지역개발학회 추계 공동학술대회 자료집.
- 토지주택연구원·한국도시연구소. 2023. LH 장기공공임대주택 시설개선사업 등 적용단지 실태조사.
- EC(European Commission). 2020. A Renovation Wave for Europe - greening our buildings, creating jobs, improving lives.
- POLITICO. 2023/06/05. "EU’s green renovation wave faces backlash".
- UN HRC(Human Rights Council). 2022. Towards a just transformation: climate crisis and the right to housing (Special Rapporteur on the right to adequate housing by Balakarishnan Rajago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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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정책브리핑 ②] 기후불평등과 주거권: 기후위기 완화정책으로써의 주거정책(2023. 7. 31.) - 김기성(서울녹색당 정책위원)
1. 기후위기 시대의 주거권과 주거정책의 필요성
2022년 한반도 중부에 내린 폭우로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한 가족이 사망했다. 일상적인 주거 공간에서 재난을 맞이한 가족은 기후위기 시대에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했고, 결국 생명권마저 침해당했다. 올해 7월 비구름이 다시 한번 한반도를 거치며 중부 지방에 큰비를 내렸고, 산사태와 범람으로 인해 여러 지역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연구나 행정에서는 기후위기 취약지역을 찾아내고자 노력하지만, 애초에 ‘극단적 기상현상’이기에, 한때는 안전하고 쾌적하다고 여겨졌던 공간·환경도 기후위기 속에서 어느 순간 재난이 발생하는 현장이 되곤 한다. 재난이 빈발할 곳을 발견하고, 재난을 대비하기 위한 안전 체계를 갖추는 적응 정책은 중요하지만, 탄소배출량을 줄여 사회 전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감소시키려는 시도, 곧 완화정책에 대한 고려가 항상 수반되어야 한다.
주거 부문은 기후위기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과 동시에, 기후위기에 원인을 제공하는 영역이다. 주거 부문은 주택의 건축과 폐기, 도시계획, 토지의 이용, 에너지 사용 등과 관련해 기후위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주거가 기후위기의 주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에 미치는 영향은 여러 문서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계측된다. 유럽위원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주거정책을 제안하면서, 주거 부문이 건물의 운영과 전기·열연료의 사용으로 EU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40%, 온실가스 배출량의 36%까지 차지한다고 추정한 바 있다(EC, 2020). 특히 서울시처럼 건물밀집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건물 부문의 에너지 사용량 비중이 상당히 높은데, 2020 서울시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에서는 에너지 소비 부문 배출량 가운데 건물 분야가 73.5%를 차지하며, 가정용 건물이 건물 분야 중 42.7%를 차지한다고 추정했다(서울특별시, 2022). 기후위기 시대에 주거 부문의 탄소배출량 감축은 그 필요성과 잠재력 모두 상당히 크다.
2. 한국에서의 주거 및 건축 부문 완화정책 현황과 한계
한국에서 건축 부문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 전반을 규정하는 ‘녹색건축물 조성지원법’은 2012년 제정되어 몇 차례 개정되어 왔다. 주요한 변화는 ▶2015년 조성사업 구체화 및 그린리모델링 활성화 조항 신설, ▶2017년 제로에너지건축물 조항 신설, ▶2021년 공공건축물의 에너지효율 개선 의무화로 정리할 수 있다. 법률의 제정에 발맞추어 지자체의 조례도 마련되어 현재까지 전국의 모든 시도, 50개의 시군구에 녹색건축물에 관한 조례가 설치되어 있다.
한국에서 건축 분야의 에너지 감축 혹은 전환 프로그램은 크게 에너지효율에 관한 등급제 방식과 건축물의 에너지효율화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전자는 에너지효율등급 인증제와 제로에너지건축물(ZEB)로, 후자는 에너지효율개선사업과 그린리모델링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등급제의 경우, 기존에 존재하던 에너지효율등급제와 신규 도입된 제로에너지건축물 등급제를 혼용하고 있다. 에너지효율화 프로그램은 점차 그린리모델링사업으로 통합되는 추세인데, 현행 제도는 공공부문 건축물에 대해서는 개량·수선 비용을 직접 투입하고 민간부문 건축물에 대해서는 공사비의 대출 이자를 보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시급성과 주거 부문의 잠재력에 비한다면, 이를 다루는 정책은 충분하지도 정교하지도 못하다. 우선 에너지등급제의 경우 확산이 더딜뿐더러, 제시된 계획에 맞춘 준비가 불충분하다. 2021년 12월, 국토교통부는 ‘국토교통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발표하며 향후 신축건축물에 대한 제로에너지건축물 의무화 기준을 강화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2021년 발표된 세부적인 로드맵은 아래와 같다.
연도
내용 (㎡은 연면적)
2020
- 공공 1,000㎡ 이상(5등급)
2023
- 공공 500㎡ 이상(5등급)
- 공공 공동주택 30세대 이상(5등급)
2024
- 민간 공동주택 30세대 이상(5등급)
2025
- 공공 500㎡ 이상(일부, 4등급)
- 민간 1,000㎡ 이상(5등급)
2030
- 공공 500㎡ 이상(일부, 3등급)
- 민간 500㎡ 이상(5등급)
2050
- 전 건물(1등급)
2050년까지 모든 건물에 1등급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에 비해, 현재까지 추진되어 온 ZEB 실적은 저조할 뿐 아니라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다. 현행 ZEB 인증은 ▶건축물에너지효율등급 1++ 이상, ▶에너지자립률 20% 이상, ▶에너지소비량 계측 및 실시간 관리시스템을 요건으로 하고, 에너지자립률 수준에 따라 1~5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인증은 건축물 설계도를 바탕으로 인증하는 예비인증, 현장점검 및 준공 평가를 통해 인증하는 본인증으로 나뉜다.
2017년 도입 이후 2023년 7월 21일 현재까지 인증된 ZEB 건축물은 총 3,706건(중복 제외)이다. 한국의 노후주택 및 노후건축물 숫자와 향후 로드맵을 고려하면 현재까지의 실적은 매우 저조하며, 그마저도 84.7%는 예비인증이다. 현행법은 예비인증을 취득한 건물이 본인증을 취득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규제나 처벌 규정도 없다(주재성·이자은, 2022). 용도별로는 교육연구시설(35.6%), 업무시설(16.9%), 교정·군사시설(8.0%)이 다수이며, 주거용 건물의 비율은 2.1%에 불과하다. 본인증을 받은 주거용건축물은 3,706건 중 13건에 불과하다. 시도별로 보면 서울시 소재 인증건축물은 289건(7.8%)으로 서울의 인구와 건축물밀집도를 고려할 때 적다.
(단위 : 건)
등급
인증 상태
합계
본인증
예비인증
ZEB 1
33
86
119
ZEB 2
24
84
108
ZEB 3
71
254
325
ZEB 4
164
697
861
ZEB 5
274
2,019
2,293
합계
566 (15.3%)
3,140 (84.7%)
3,706 (100.0%)
공공건물에 대한 직접지원과 민간건물에 대한 이자지원을 골자로 하는 그린리모델링사업 역시 성과가 충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나마 공공부문의 그린리모델링 사업은 2020년 노후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그린리모델링 사업 추진으로 변화가 있었다. 한국 정부는 2020년부터 15년 이상 경과한 영구임대·매입임대주택에 대한 그린리모델링을 추진하고 투입 예산을 2021년 3,645억원, 2022년 4,806억원으로 크게 늘렸으나 2023년에는 예산을 2,046억으로 삭감했다(토지주택연구원·한국도시연구소, 2023).
(단위 : 건)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서울
996
512
697
1237
964
758
386
전국
10,847
8,551
9,278
10,435
12,005
11,954
7,217
그러나 건축물 재고 총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노후건물의 비율이 높은 민간건물에서의 성과는 미흡하다. 2014~2022년까지의 지원실적은 총 71,281건이며, 2021년 이후에는 오히려 그 실적도 감소했다. 예산 역시 2021년 1,525억에서 2022년 903억으로 감소했다. 서울의 경우, 제로에너지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집행실적이 상대적으로 적다. 현행 이자지원의 낮은 지원율, 시공업자의 이해도 부족, 공사 기간 머무를 주택의 부족 등의 이유로 정책의 확산이 줄곧 미진하다(박미선 외, 2021).
3. 유럽의 사례와 시사점
최근 유럽에서는 기후위기 시대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대대적인 주택 에너지효율화 정책을 개진하고 있다. 2020년 EU 집행위원회는 리노베이션 물결 이니셔티브(renovation wave inititative)를 통해 주택의 에너지 효율화를 추진하고, 공공건물을 시작으로 빠른 움직임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2030년까지 에너지비효율 건물 3,500만 채를 개조한다는 상당한 목표가 포함되어 있다. 2023년 3월, 유럽의회와 집행위원회는 ‘건물의 에너지 성능 지침(Energy Performance of Buildings Directives)’을 개정하여 2030년까지 공공건물 및 주거용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대폭 개선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2026년 1월부터 신축 공공건물, 2028년 1월부터 모든 신축 건물에 방출제로(zero-emission) 기준을 적용할 것을 밝혔다. 기존 건축물들에 대해서는 공공·비거주용·거주용 별로 나누어 2027~2033년까지 일정 수준의 에너지수행등급을 충족시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유럽에서도 EU에서 정한 목표치에 대해 여러 국가에서 충돌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이탈리아, 독일,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 국가에서는 건축비용 상승, 인플레이션, 재산권 침해 등의 이유로 반발이 일고 있다(POLITICO, 2023/06/05).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정책은 사회적인 갈등을 일으키고, 기후위기 시대에 장기적으로 필요한 정책은 다시 단기적 관점에 의해 휘발될 위험이 있다.
2022년 12월 발표된 UN 인권위원회의 기후위기 시대 주거권에 대한 특별보고서에서는 ‘주거 영역의 정의로운 전환’의 필요성을 천명하고, 전환을 위한 비용을 국가, 공적 기관, 납세자, 주택소유자, 임차인 등 영향을 받는 집단들 사이에서 공평하게 분담되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UN HRC, 2022). 한국에서도 예정된 건축 부문의 탄소중립프로그램에 맞추어 나타날 수 있는 현상들을 점검하고, 이에 맞춘 실질적인 계획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여기에는 주거 영역의 기후위기 완화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어떻게 시민들에게 부담가능한 주택(affordable housing)을 공급할 것인지, 그리고 공공부문 주택 프로그램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주거 부문의 에너지효율화 프로그램은 기후위기 완화만이 아니라 저소득층의 주거환경 개선, 소득재분배 등 사회경제적 효과 역시 기대할 수 있다(박미선 외 2022). 특히 공공임대주택은 상대적으로 재산권에 관한 복잡한 이해관계를 덜 고려할 수 있고, 민간주택의 개량 과정에서의 임시이주공간으로서의 활용가능성도 품고 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최근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주거 부문의 기후위기 대응에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을 더 좁혀놓았다.
기후위기 시대의 주거 혹은 주택정책은 재난으로 인해 위협받을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과 주거정책을 활용해 기후위기를 완화하는 목적을 결합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기존에 ‘주거권 보장’이라는 표어 아래 진행되어 온 어떤 정책들은 재고되어야 하며, 반대로 어떤 정책들은 새롭게 평가되어야 한다. 새로이 평가되고 추진될 정책의 구체적인 로드맵과 그 영향에 대한 평가가 수반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완화를 고려한 주거정책은 ▶공공임대주택을 주거권 보장과 기후위기 완화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임대·매입임대 등 아직 정비되지 않는 노후공공임대주택에 대한 그린리모델링을 활성화 및 감리 강화, ▶그린리모델링 민간이자지원사업의 이자지원 확대 및 다른 방식의 유도 체계 조성, ▶제로에너지빌딩(ZEB) 로드맵 실현을 위한 인증체계 정비, ▶ZEB 도입 이후 발생할 건설비용 상승을 염두에 둔 부담가능한 주택으로의 공급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 박미선, 김수진, 저윤지, 이후빈, 서정석, 홍다솜, 정진영, 김경아. 2021.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주택 그린리모델링 추진방안. 세종: 국토연구원.
- 서울시. 2022. 서울시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2020년도분).
- 주재성, 이자은. "녹색건축물 조성 활성화의 제도적 한계: 세종특별자치시를 중심으로". 2022년 한국지역개발학회 추계 공동학술대회 자료집.
- 토지주택연구원·한국도시연구소. 2023. LH 장기공공임대주택 시설개선사업 등 적용단지 실태조사.
- EC(European Commission). 2020. A Renovation Wave for Europe - greening our buildings, creating jobs, improving lives.
- POLITICO. 2023/06/05. "EU’s green renovation wave faces backlash".
- UN HRC(Human Rights Council). 2022. Towards a just transformation: climate crisis and the right to housing (Special Rapporteur on the right to adequate housing by Balakarishnan Rajagop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