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행복한 아웃사이더, 홍세화 당원의 명복을 빌며


[추모] 행복한 아웃사이더, 홍세화 당원의 명복을 빌며


4월 18일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진보지식인이자 사회운동가인 홍세화 녹색당원이 향년 7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주류 한국사회에 프랑스 망명 중 출간한 에세이집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등에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똘레랑스”의 가치를 강조한 지식인 정도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진보운동과 진보정치에 대해 고민하였던 운동가였다.

 

그의 인생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한결같았다. ‘세계평화’를 염원하며 아나키스트 활동을 했던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 ‘세화’였으며, 유아였을 때 충남 아산에서 경험한 한국전쟁기 ‘황골 새지기 학살사건’과 노동자 전태일의 죽음은 그의 인생의 분기점이 됐다. 이런 경험으로 끝까지 체제에 굴복하거나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아웃사이더’로 남았다. 생을 마감하기 얼마 전까지도 글을 통해 자신이 오랜 기간 몸담았던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진보언론과 진보진영이 체제 내화하고 현장과 멀어진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는 진보신당 당 대표를 지내는 등 오랜 기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그리고 노동당의 당원이었으며 동시에 녹색당원이었다. 그는 말년까지 신자유주의의 폭압에 맞서 생태-평화-평등국가를 꿈꿨으며, 생태사회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공개적으로 녹색당에 입당함으로써 이 뜻을 알리고 이중당적 금지라는 정당법 독소조항에 항의했다. 암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작년 6월 개최된 녹색당 전국당원대회에 투병 중이던 몸을 이끌고 참석하여 “녹색시민들을 어떻게 정치의 장으로 모을 것인가”라는 주제의 특별강연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다.”


“저는 <진보신당>의 위기가 통합이냐 독자생존이냐를 결정하는 데 실패한 것에서 온 것이라 믿지 않습니다. 단언컨대 오늘 진보정치의 위기는 우리가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고, 그리하여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데서 온 것입니다.”

 

그의 칼럼 마지막 문장과 진보신당 당 대표 출마 연설문을 기억하며 그를 보내드리고자 한다. 그의 외침은 진보정치와 생태정치의 공간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2024년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녹색당은 그의 외침을 죽비소리로 삼으며 어렵지만 가야하는 길, 그가 꿈꿨던 생태-평화-평등국가를 향한 진보정치와 생태정치의 길을 끝까지 만들어가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24년 4월 18일

녹색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