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거부권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 정부의 책임방기 규탄한다


[논평] 거부권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 정부의 책임방기 규탄한다


어제는 21대 국회 임기 마지막 날이었다. 하루 전인 지난 28일 열린 마지막 본회의는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채상병 특검법’ 재표결과 이어진 부결 소식으로 시끄러웠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통과 법안들도 있다. 바로 전세사기특별법, 민주유공자법, 세월호피해지원법 등의 법이다. 윤 대통령은 어제 이들 중 세월호참사 피해자의 의료비 지원 기한을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세월호피해지원법만 의결하고, 전세사기특별법 등 4개 법안에 대해서는 무더기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우리는 수차례 각종 민생법안과 진상규명 관련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다시 한번 국가의 역할을 내던져버린 대통령을 강력히 규탄한다. 


특히나 이번 전세사기특별법과 관련하여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을 저버린 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깡통전세와 전세사기 참사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전세제도를 토대로, 박근혜 정부가 만들고, 문재인 정부가 확대한 ‘빚내서 집사라’는 정책을 통해 집값과 전세가격이 폭등한 현상을 배경으로 한다. 피해자 중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있었다. 주택 관련 공공기관도 속은 피해를 개인이 피하지 못한 것이 개인 탓인가?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전세사기 사태가 터진 이후에도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 아니며 사인 간의 사기 피해를 국가가 떠안을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고, 작년 6월 전세사기특별법이 제정될 때도 기어코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법안에 넣지 못하게 막았다. 


그사이 국가는 사회적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재난은 참사가 되었다. 이미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다섯 분의 피해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선구제 후회수’ 방안과 다가구·오피스텔 피해자 구제 방안 등이 포함되지 않았던 반쪽짜리 특별법을 만들며 ‘6개월마다 보완’한다고 한 정부와 국회의 약속이 무색하게, 법이 만들어진지 1년이 된 현재 전세사기 희생자는 8명으로 늘었다. 이달 초 스스로 생을 마감한 피해자는 다가구 피해자였다는 것이 알려져 예고된 참사라며 더 큰 공분이 일었다. 


그러기에 피해자 요건을 확대하고 채권 공공 매입으로 피해액을 우선 변제해주는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포함된 이번 개정안이 중요했다. 그 사이 정부가 한 일이라곤 선구제 후회수를 위해서는 4조원이 든다며 비용을 과잉추계해 개정안을 흠집내는 것뿐이었다. 법안 통과 하루 전인 지난 27일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도 임대료 지원 위주였다. 법안 통과 후에는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을 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법안이 오히려 피해구제를 어렵게 하며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그러나 피해구제를 막고 사회적 혼란을 초래한 것은 법안을 막은 정부와 여당이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정부는 기존 법안이 가진 한계를 통해 지속되고 있는 사회적 피해를 직시해야한다. 


민주화운동 시민사회에서 염원했던 민주유공자법도 대통령의 거부권에 무참히 짓밟혔다. 이 법은 이미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확인된 9844명 중 사망했거나 다친 829명만을 추려 민주유공자로 지정·예우하자는 내용이다. 일부 정치세력은 “운동권 신분 특혜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유공자 자녀에 대한 ‘대입 특별전형’ 혜택이 아니라 수업료·입학금 면제 등이 있을 뿐이다. 이런 혜택을 받는 대상자도 극히 일부이다. 법안 통과를 위해 관련 단체들은 2021년 10월부터 거의 1000일에 가깝게 국회 농성을 이어왔고, 시민들과 여든살을 넘긴 관련자들이 동조단식을 하기도 했다. 


이번 정부 들어 윤 대통령은 이미 10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거부권(재의요구권)은 국회의 입법권이 헌법 취지나 국민의 뜻에 반할 때 그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존재한다. 정부의 책임을 내팽겨치기 위한 만능열쇠가 아니다. 그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보면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이태원참사 특별법까지 면면이 모두 민생과 노동기본권, 사회 공공성, 시민 안전을 위해 필요한 법안들이었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주권자인 시민의 뜻을 겸허히 살펴야할 것이다.


녹색당은 이번 거부권 행사를 통해 다시 한번 사회적 책임을 내팽개친 정부를 규탄한다. 또한 우리는 국가가 사회적 역할을 다하라는 정당한 목소리를 계속해서 낼 것이다. 


2024년 5월 30일

녹색당



녹색당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