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 내 손 안에 간편한 성범죄, 우리 모두의 실패다


[논평] 내 손 안에 간편한 성범죄, 우리 모두의 실패다


지인을 상대로 한 불법합성물(딥페이크) 집단 성범죄가 학교, 지역, 군대 등 가릴 것 없이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가족을 대상으로 한 범죄까지 공공연하다는 사실에 특히 경악을 금치 못한다.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처참한 수준인지를 뼈아프게 돌아봐야 한다.


“여성도 인간이라는 ‘전복적’ 사상이 바로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인류에게 가부장적 인식과 남성우월적 문화, 여성비하적 관습이 뿌리 깊기에 여성을 완전하게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이다. 사회적, 국가적으로 성평등 제도와 문화를 강화, 확장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만 하는 이유다.


소위 ‘n번방’ 사건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것이 4년 전이다. 그간 무엇이 얼마나 변화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혐의가 특정된 이들 중 실형 선고율은 12.4%에 불과했으며 69.1%가 집행유예를 받았다.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 팀장을 맡아 디지털 성범죄 대응체계를 마련해 나가던 서지현 검사는, 돌연 법무부로부터 원대복귀 인사 통보를 받고 사직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희대의 망언을 남겼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언하다 결국은 예산도, 권한도 축소된 껍데기만 남은 부서로 전락시켰다. 성차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정부가 고도로 기술화, 산업화되어가는 디지털 성범죄에 무슨 관점과 대책이 있을지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제도와 문화는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며 변화한다. 성평등 전담 부처 강화, 성범죄에 엄중한 처벌, 성평등 교육 확대 등의 제도와 정책은 시민들의 관행과 문화를 변화시킬 것이다. 또한 초·중·고·대학교까지 만연한 ‘지인능욕’에 우리 사회가 범시민적으로 통탄할 경각심을 갖는다면, 일상에서부터 여성에 대한 인식을 변화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성범죄는 특정한 개인의 돌발적이고 기이한 행동이 아닌,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문화가 낳은 사회적 산물이다. 여성 가족, 여성 친구, 여성 지인, 여성 동료를 ‘사람’으로 대하고 존중하지 못하는 남성문화에 우리 모두의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실패했다.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고 폐허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2024년 8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