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거부권을 거부한다 -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부쳐


[논평] 거부권을 거부한다 -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부쳐


예상한 것처럼 윤석열 정부가 12월 1일 오전 방송3법과 노조법 2·3조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의결했다. 애초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예상한 11월 28일 국무회의에서는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 여부 투표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와 역풍이 불 것을 우려해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았으나 정부의 선택은 다르지 않았다.


이번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거부”는 예상된 결과였다. 이미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은 지난 11월 9일 노동조합 활동에 관한 최소한의 국제기준을 따르는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브리핑을 통해 “무분별하게 교섭을 요구하고 폭력적인 파업이 공공연해”지고 “산업 현장이 초토화”되며 “국가 경쟁력은 추락”할 것이라는 등의 막말을 쏟아낸 바 있다. 동시에 대통령 거부권 건의를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노조법 개정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달라는 요구의 결과물이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한하고, 하청, 간접고용, 특수고용 등 비정규 노동자들도 원청과 교섭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지난 20년 이상 동안 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하는 “진짜 사장”과 교섭하기 위해 시도해왔지만,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노조의 정당한 쟁의행위에도 노조의 손발을 묶고 노동자들의 삶을 옥죄는 손해배상 가압류였다. 


가까운 예로 작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인 유최안은 31일 동안 1㎥ 철제 구조물 안에 자신을 가두고 진짜 사장과의 노동조건에 대한 교섭을 요구했지만, 원청인 대우조선은 교섭책임이 없다는 발뺌으로 일관하다가 파업이 끝난 후 노조 간부 5명에게 470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이런 불합리한 관행을 막자는 것이 노조법 개정안의 기본 취지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오히려 사업자들을 강력히 제어하지 못하는 한계도 동시에 존재한다. 다수의 노동법 전문가들은 개정안이 기존 대법원 등의 판례를 입법화하는 상식적인 수준이며 개정안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개정된 노조법 2조는 “근로조건에 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까지 노조법상 사용자로 보고 교섭 의무를 지우도록 하였으나, 실제 적용시 사용자를 특정해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개정된 노조법 3조는 노조 쟁의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각 손해 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를 가로막고 노조 파괴의 수단으로 쓰여온 손배소송을 일부 제한하고는 있으나, 사용자는 여전히 노조활동을 압박하기 위해 노동자 개인에게 개별적으로 손배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은 “진짜 사장이 책임지라”고 외쳐온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새겨진 법안이며, 우리나라의 비정상적 노사관계에서 최소한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장치다. 또한 한진중공업의 김주익 열사,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열사부터 쌍용차의 손배가압류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 30여 명 등 노동법의 정신을 준수하는 국가에서는 사문화된 손배가압류로 인해 억울한 희생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방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사회에서 한목소리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법 개정을 외쳐온 것이며, 국가인권위원회, 유엔 자유권위원회 등에서도 노조법의 개정을 권고해온 것이다. 


그사이 민주당 정부나 민주당 주도의 국회에서도 민주당은 법 개정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았다. 특히 촛불항쟁 이후 시민들의 기대를 받았던 문재인 정부 시절 21대 국회는 민주당계가 압도적 다수였지만 허송세월만 보내다가 윤석열 정부에 와서야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이 다수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현재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도 함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거부권의 취지는 국회의 입법권이 헌법 취지에 반할 때 그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정부 들어 여러 차례 남용되는 것처럼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민중들이 부여한 권한을 이용해 민중들의 삶을 겁박하는 윤석열 정부는 결국 민중들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엑스포 개최 실패로 고개 숙일 게 아니라 보편적 노동권을 실현하지 못한 것에 고개숙여야 한다. 


녹색당은 지금이라도 정부가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촉구한다. 동시에 녹색당은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다. 


2023년 12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