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그 어떤 대학에도 성폭력 교수가 돌아올 자리는 없다
[논평] 그 어떤 대학에도 성폭력 교수가 돌아올 자리는 없다
-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A교수 해임취소판결에 부쳐
지난 2019년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로 해임된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A교수가 해임취소소송에서 승소했다. 피해자가 제기한 형사소송에서 1∙2심 무죄를 받은 데에 따른 것이었다.
A교수는 성폭력 가해로 인한 자신의 재판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성폭력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될 경우 무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실제로 2022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성폭력 사건의 무죄율은 53%로, 다른 국민참여재판 사건의 무죄율을 훨씬 웃돈다. A교수 사건의 피해자는 본인의 실명이 이미 공개되어있고 "배심원들 앞에서 사건을 재현하고 싶지 않다"며 반대했지만, 법원은 일반재판으로 진행할 수 있음에도 가해자의 국민참여재판 요구를 배제하지 않았다.
결국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루어진 1심에서 A교수의 변호인은 "스페인의 정열적인 문화가 서어서문학과에도 영향을 끼쳤다", "성폭력 피해를 받았는데 어떻게 피해자가 웃으며 가해자와 함께 사진을 찍느냐"는 등 정상적인 변호를 넘은 2차가해를 쏟아냈다. 피해자가 사건 당시와 비슷한 옷을 입고 사건을 재현할 때, 경청하는 국민배심원도 있었으나 졸고 있는 배심원의 모습이 방청연대를 갔던 활동가들에 의해 목격되기도 했다. 그렇게 1심에서 A교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어진 2심에서는 서울대학교가 법원 명령에도 불구하고 증거제출을 거부했다. 해당 사건에 대한 징계위원회 자료였다. 결국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2심은 '국민참여재판의 결과를 함부로 뒤집을 수 없다'는 취지로 또 다시 A교수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1∙2심에서 무죄를 받았다고 해서, 해임 판결이 부당하다는 행정소송결과가 당연한 것은 아니다. 같은 서울대학교에서 학생 간 성폭력 사건으로 정학처분을 받은 가해자는 이후 검찰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정학 처분 무효 확인소송에서는 패소했다. 대학 징계위가 규정에 따라 사건에 대해 판단하고 학칙에 따라 별도 징계를 내리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 대법원 판결이었다. 학생에게는 상식적으로 작동했던 판결의 논리가, 유사한 상황의 교수 앞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성폭력 피해자가 끊임없이 자신의 피해를 부정당하고,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오히려 더 고통받는 일들이 반복된다면, 어떤 피해자가 자신의 사건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겠는가? 이제라도 A교수 사건을 비롯하여 여러 권력형 성폭력 사건의 해결 과정 속에서 지적되어 온 문제점을 고쳐내야만 한다.
특히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무죄를 다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국민참여재판제도를 재고해야만 한다. 시민들의 법감정과 실제 판결의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긍정적인 취지였으나, 누구도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사회에서 비전문가에게 겨우 이틀간의 심리만으로 성폭력 사건의 정의로운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성폭력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지의 여부를 피해자의 판단에 맡기자는 개정안들은 번번이 입법에 실패했거나, 계류되어있다.
녹색당은 이번 행정소송 결과를 단호히 규탄한다. 이번 행정소송의 결과는 그 어떤 변명에도 정의로울 수 없다. 한국 사회의 제도 속 허점들과,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에게만 높은 법원의 문턱, 대학 내의 교수-학생 간의 위계 등의 온갖 문제점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고, 피해자만이 한국 학계를 떠나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지금에 분노한다.
녹색당은 사건 초창기부터 그래왔듯, 앞으로도 A교수 사건 피해자와 연대하겠다. 또한 안전하고 평등한 대학, 여성들이 안전할 수 있는 사회, 성폭력이 전무한 사회가 아니라 피해자가 사건 해결에 나서는 것에 거리낄 것 없는 사회를 위해 투쟁하겠다. 그 어떤 대학에도 성폭력 교수가 돌아올 자리는 없다. 반복되는 대학 내 교수 권력형 성폭력을 이제는 멈추자. 오래된 미래를 끝내러 가자.
2023년 8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