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혁, 진정성을 보여라
10월 4일, 원내 5개 정당 등 19명의 의원이 참여한 정치개혁 법안이 발의되었다. 법안에는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서울 소재 중앙당과 시·도당별 1000명 이상의 법정 당원을 갖춘 5개 광역 시·도당을 갖춰야 창당이 가능했던 정당법 개정안, 그리고 소수정당 국고보조금 비율을 늘리는 정치자금법 개정안, 원내교섭단체 요건을 20석에서 10석으로 낮추는 국회법 개정안 등이 망라되어 있다.
대의제민주주의의 정당성은 대표를 뽑는 절차의 민주주의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거대 양당이 독식하는 선거 제도에다 위성정당 편법까지 사용하여 33.35%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60% 의석을 독식한 대한민국의 대의제는 근원적으로 정당성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뒤늦게나마 비례대표제를 늘리고, 정당 활동을 제약하는 정당법 독소조항을 폐지하겠다고 일부 국회의원들이 나선 것은 그 방향은 적절하다 하겠다.
하지만 법안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현 양당정치 체제의 독과점 기득권 구조를 해체”하고 “유권자의 민의를 제대로 수용하고 다양한 정당이 등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스스로 내세운 제안이유에 크게 미흡하다. 먼저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지역구 국회의원과 권역별비례대표 국회의원을 각각 127명, 전국비례대표 국회의원 46명, 도합 300명으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구를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어 한 선거구에서 4명 또는 5명의 지역구 의원(일부 3명 이하도 가능)을 뽑게 되어 있다.
흔히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하면 소수정당에게 더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난 6.1 지방선거의 결과는 그런 상식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양당은 30개 기초의원 지역구에 3-5인 중대선거구제를 ‘시범실시’했는데, 그것이 소수정당에 가져다 준 이득은 미미했다. 그 이유는 복수공천 융단폭격 때문이다. 예컨대 충남 논산시 ‘가’ 선거구는 5인 선거구 시범 실시 지역이었지만, 더불어민주당에서 5명, 국민의힘에서 4명이 출마하여 각각 3명과 2명이 당선되었다. 무분별한 복수 공천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는 이상, 중대선거구제는 양당의 독식을 보장하는 도구로 전락할 것이다.
새로 도입하려는 권역별비례대표제는 권역별로 배정된 의석수가 충분히 많아야 다당제 개혁에 기여할 수 있다. 권역별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스웨덴의 경우 최대 43개 의석을 가진 선거구가 있는데, 이는 해당 권역에서 2.4%의 득표만 얻어도 1석이 생긴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의된 법안은 권역별로 지역구 의원수와 권역별비례대표 의원수를 1:1로 고정했다. 그 얘기는 권역별비례대표 의원의 정수가 최대 5인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법안의 권역별비례대표제는 지역구와 ‘연동’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5인 선거구라면 최소 10% 이상의 득표율을 얻어야 비례대표 1석이 가능해진다. 무소속 지역구 당선자가 있거나 4인, 3인 선거구가 되면 그보다 훨씬 큰 득표율이 필요하다. 이것은 주로 거대양당 중심으로 권역별비례대표가 배분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은 진입장벽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네덜란드는 인위적 진입장벽이 없어서 0.67%만 득표하면 1석이 생기고, 그 결과 네덜란드는 원내 정당이 17개에 달한다. 하지만 거대 양당이 늘 거론하는 ‘정당 난립에 의한 정치 혼란’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꾸로 두 개 정당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한국 정치는 왜 그 모양인가? 법안은 권역별비례대표는 ‘연동’으로 치장하고 전국비례대표에서는 ‘연동’을 제거하고 과거의 병립형으로 회귀함으로써 거대 양당의 이익을 한 치도 어김없이 고수하고 있다.
정치자금법도 마찬가지다. 법안은 원내로 이미 진입한 정당끼리의 배분 방식을 조금 개선하자는 것에 불과하다.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선거자금의 불평등 구조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시애틀 시는 ‘민주주의 바우처’라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선거가 있을 때 유권자들에게 25달러짜리 바우처 4장을 먼저 제공하고,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에게 마음껏 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런 제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법안이 발의되었을 뿐인데 벌써 지역구 국회의원 반발 운운하며 법안의 불발을 우려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 얘기만 나오면 단골로 나오는 메뉴인데, 마치 실패를 예정하고 생색내기로 법안을 발의하는 것 같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지역구 의원수를 줄이지 말고 비례대표를 늘려 전체 의원수를 늘려라.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수는 매우 적다. 대한민국의 인구대비 국회의원 수는 17만 명당 1인인데, 이는 스웨덴 3만 명, 영국 5만 명, 프랑스 7만 명 등에 비해 지극히 적은 수이다.
대한민국은 국회의원 수가 많은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 특권이 많다. 지역구 정수를 줄이지 말고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는 법안을 발의해라. 국민들이 쌍수를 들고 열렬히 환영할 것이다. 그런데도 개혁에 실패한다면 모든 국민들이 알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의석에 연연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 주는 특권 때문이라는 것을. 또한 국회는 어설픈 선거제도 개혁 법안을 발의하기 이전에 2020년 총선 때 자행한 위성정당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부터 먼저 해야 할 것이다. 반성이 먼저다. 진정한 반성이 없는 제안은 그 진정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녹색당은 국민의 민의를 제대로 대표하고 기후재난과 맞서 싸우려는 시민들의 의지를 대변하기 위해서 선거제도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다.
2022년 10월 4일
녹색당
선거제도 개혁, 진정성을 보여라
10월 4일, 원내 5개 정당 등 19명의 의원이 참여한 정치개혁 법안이 발의되었다. 법안에는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서울 소재 중앙당과 시·도당별 1000명 이상의 법정 당원을 갖춘 5개 광역 시·도당을 갖춰야 창당이 가능했던 정당법 개정안, 그리고 소수정당 국고보조금 비율을 늘리는 정치자금법 개정안, 원내교섭단체 요건을 20석에서 10석으로 낮추는 국회법 개정안 등이 망라되어 있다.
대의제민주주의의 정당성은 대표를 뽑는 절차의 민주주의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거대 양당이 독식하는 선거 제도에다 위성정당 편법까지 사용하여 33.35%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60% 의석을 독식한 대한민국의 대의제는 근원적으로 정당성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뒤늦게나마 비례대표제를 늘리고, 정당 활동을 제약하는 정당법 독소조항을 폐지하겠다고 일부 국회의원들이 나선 것은 그 방향은 적절하다 하겠다.
하지만 법안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현 양당정치 체제의 독과점 기득권 구조를 해체”하고 “유권자의 민의를 제대로 수용하고 다양한 정당이 등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스스로 내세운 제안이유에 크게 미흡하다. 먼저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지역구 국회의원과 권역별비례대표 국회의원을 각각 127명, 전국비례대표 국회의원 46명, 도합 300명으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구를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어 한 선거구에서 4명 또는 5명의 지역구 의원(일부 3명 이하도 가능)을 뽑게 되어 있다.
흔히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하면 소수정당에게 더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난 6.1 지방선거의 결과는 그런 상식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양당은 30개 기초의원 지역구에 3-5인 중대선거구제를 ‘시범실시’했는데, 그것이 소수정당에 가져다 준 이득은 미미했다. 그 이유는 복수공천 융단폭격 때문이다. 예컨대 충남 논산시 ‘가’ 선거구는 5인 선거구 시범 실시 지역이었지만, 더불어민주당에서 5명, 국민의힘에서 4명이 출마하여 각각 3명과 2명이 당선되었다. 무분별한 복수 공천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는 이상, 중대선거구제는 양당의 독식을 보장하는 도구로 전락할 것이다.
새로 도입하려는 권역별비례대표제는 권역별로 배정된 의석수가 충분히 많아야 다당제 개혁에 기여할 수 있다. 권역별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스웨덴의 경우 최대 43개 의석을 가진 선거구가 있는데, 이는 해당 권역에서 2.4%의 득표만 얻어도 1석이 생긴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의된 법안은 권역별로 지역구 의원수와 권역별비례대표 의원수를 1:1로 고정했다. 그 얘기는 권역별비례대표 의원의 정수가 최대 5인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법안의 권역별비례대표제는 지역구와 ‘연동’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5인 선거구라면 최소 10% 이상의 득표율을 얻어야 비례대표 1석이 가능해진다. 무소속 지역구 당선자가 있거나 4인, 3인 선거구가 되면 그보다 훨씬 큰 득표율이 필요하다. 이것은 주로 거대양당 중심으로 권역별비례대표가 배분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은 진입장벽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네덜란드는 인위적 진입장벽이 없어서 0.67%만 득표하면 1석이 생기고, 그 결과 네덜란드는 원내 정당이 17개에 달한다. 하지만 거대 양당이 늘 거론하는 ‘정당 난립에 의한 정치 혼란’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꾸로 두 개 정당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한국 정치는 왜 그 모양인가? 법안은 권역별비례대표는 ‘연동’으로 치장하고 전국비례대표에서는 ‘연동’을 제거하고 과거의 병립형으로 회귀함으로써 거대 양당의 이익을 한 치도 어김없이 고수하고 있다.
정치자금법도 마찬가지다. 법안은 원내로 이미 진입한 정당끼리의 배분 방식을 조금 개선하자는 것에 불과하다.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선거자금의 불평등 구조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시애틀 시는 ‘민주주의 바우처’라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선거가 있을 때 유권자들에게 25달러짜리 바우처 4장을 먼저 제공하고,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에게 마음껏 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런 제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법안이 발의되었을 뿐인데 벌써 지역구 국회의원 반발 운운하며 법안의 불발을 우려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 얘기만 나오면 단골로 나오는 메뉴인데, 마치 실패를 예정하고 생색내기로 법안을 발의하는 것 같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지역구 의원수를 줄이지 말고 비례대표를 늘려 전체 의원수를 늘려라.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수는 매우 적다. 대한민국의 인구대비 국회의원 수는 17만 명당 1인인데, 이는 스웨덴 3만 명, 영국 5만 명, 프랑스 7만 명 등에 비해 지극히 적은 수이다.
대한민국은 국회의원 수가 많은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 특권이 많다. 지역구 정수를 줄이지 말고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는 법안을 발의해라. 국민들이 쌍수를 들고 열렬히 환영할 것이다. 그런데도 개혁에 실패한다면 모든 국민들이 알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의석에 연연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 주는 특권 때문이라는 것을. 또한 국회는 어설픈 선거제도 개혁 법안을 발의하기 이전에 2020년 총선 때 자행한 위성정당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부터 먼저 해야 할 것이다. 반성이 먼저다. 진정한 반성이 없는 제안은 그 진정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녹색당은 국민의 민의를 제대로 대표하고 기후재난과 맞서 싸우려는 시민들의 의지를 대변하기 위해서 선거제도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다.
2022년 10월 4일
녹색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