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미디어가 만드는 “묻지마 범죄”? 다시 바라보라


[논평] 미디어가 만드는 “묻지마 범죄”? 다시 바라보라


신림동 살인미수 사건 이후, 다수의 시민을 상대로 한 범죄와 범죄예고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피해를 입은 모든 분의 쾌유를 빌며, 범죄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길거리에서 흉기로 불특정 다수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은 수십 년째 반복되는 사회적 현상이다. 하지만 언론과 정치권은 이러한 사건을 정의된 개념도 없이 ‘묻지마 범죄’라 호명한 이후, 해당 범죄의 구조적 맥락을 완전히 잘못 짚어왔다. 사회구조적 맥락을 고려하여 원인을 분석하고 대처했다면, 과연 작금의 사태가 발생했을 지 물어야 한다.


그동안 ’묻지마 범죄’는 국가와 남성중심적 범죄학에 의해 구성되고 정의되어왔다. 2013년 대검찰청이 발간한 보고서인 <묻지마 범죄 분석>에서부터, 수사기관은 ‘묻지마 범죄’의 요건에 가해자 개인의 특성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당 보고서는 묻지마 범죄의 성립 요건으로 ’위험한 도구를 휴대’해야 한다는 보고서 내 개념 정의에도 맞지 않는 주먹을 사용한 범죄를 9건이나 포함하고, 범행 직전 가해자-피해자 사이에 갈등관계가 존재하는 사건들까지 포함하는 등, 최소한의 신뢰성조차 담보할 수 없는 보고서였다. 인과관계에 의해 주먹을 사용한 범죄를 ‘묻지마 범죄’에 포함한다면, 수많은 폭력 사건이 모두 묻지마 범죄에 포함되어야 한다. 오히려 주목할만한 부분은 55건의 범죄 사례에서 가해자의 범주가 경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자 100%, 무직/일용직 노동자 87%, 전과자 75%라는 비율을 보인다는 점이다. 사례 수집의 기준에 어떠한 관점이 반영되었는지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여러 페미니스트 시민들이 해당 사건을 ‘여성혐오’ 사건이라고 정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관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사기관과 범죄전문가들은 해당 사건을 정신질환자에 의한 전형적인 ‘피해망상 범죄’라고 규정했다. 2016년에도 검찰은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는 아니다’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따라서 재발방지책 또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졌으며, 조현병 환자들만이 양산된 혐오로부터 고통받았다. 사례도 기준도 엉망이니, 대책 또한 엉뚱한 곳만을 가리킬 뿐이었다.


신림역 사건이 주목받는 데에는 이후 발생한 모방범죄들도 영향을 끼쳤지만, 남성들만을 노린 범죄라는 사실도 있다.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묻지마 범죄’로 규정되었던 사건 중 여성만을 노린 범죄가 압도적으로 많았음에도, 이는 남성중심적 사고를 그대로 답습한 이들에 의해 물리적인 힘 차이에서 비롯한 자연스러운 일로 치부되었다. 따라서 ‘여자가 싫어서’, ‘자신은 여자를 사귈 수 없어서’ 등의 반복되는 여성혐오적 범죄동기 진술도 무시되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에서도 여성들에 대한 범죄예고가 이어지고 있으며, 가해자가 저소득노동자라는 사실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정보만 부각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할 것이 자명하다.


수없이 반복되어 온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와 범죄예고가 2023년에도 이어진다는 사실은, 국가가 원인 분석과 예방에 처참히 실패했다는 증거다. 이제라도 여성혐오를 비롯한 수많은 소거된 맥락을 포함하여, 이 범죄를 다시 구성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고, 사회적으로 끊이지 않는 이러한 형태의 범죄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줄일 수 있다. 녹색당은 안전사회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다.


2023년 8월 4일




[참고자료]

김민정 . (2017). ‘묻지마 범죄’가 묻지 않은 것: 지식권력의 혐오 생산. 한국여성학, 33(3), 3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