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기후위기를 맞출 것인가, 현실을 기후위기에 맞출 것인가.


현실에 기후위기를 맞출 것인가, 현실을 기후위기에 맞출 것인가. 

- 탄소중립위원회의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발표에 부쳐



오늘(10월 8일) 탄소중립위원회에서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이하 NDC) 상향안을 발표하고 10월 중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달 말부터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COP26 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할 한국의 NDC 상향안은 기존의 2018년 대비 26.3%에서 40%으로 수립되었다. 다른 국가들의 NDC가 일본이 2013년 대비 46%, 미국이 2005년 대비 50~52%, 유럽연합이 1990년 대비 55%,  독일이 1990년 대비 65%, 영국이 1990년 대비 68% 등 이전에 비해 급격한 상향을 감행하였음을 살펴볼 때 한국의 NDC는 현저히 낮다. NDC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기후위기 대응력을 나타냄을 생각할 때, 한국은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의지박약을 드러냄에 다름 아니다. 탄소중립 없는 탄소중립 시나리오, 35%라는 기만적인 수치의 NDC에 구체적인 사안은 시행령으로 떠넘기고 만 무책임한 ‘녹색성장 기본법’에 이어서 드러난 이 작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NDC 40%는 무엇을 바탕으로 어떤 근거로 수립되었는가? 3년 전 인천 송도에서 통과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1.5도 특별 보고서는 2030년 목표로 2010년 대비 45% 감축(2018년 대비 50% 감축)을 지구 온도 상승의 최소 저지선으로 잡았다. 이 가이드라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사하고 몇 달 전 나온 IPCC 6차 보고서의 ‘1.5˚C 상승 예상 시점이 10년이나 당겨졌다는’ 경고도 이 NDC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목표 시점만이 문제가 아니라 배출 총량을 바탕으로 접근하는 탄소예산 관점도 부재하다. 탄소예산을 반영하지 못했기에 1.5˚C 목표는 고사하고 파리협정의 2˚C 마지노선도 지키지 못하는 무책임한 NDC가 되었다. 공정한 온실가스 감축 분담에 관한 고민도 들어설 자리가 없는 이 NDC를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심지어 이 40%라는 숫자도 허구적인 눈속임에 가깝다. 먼저, 기준 연도(2018년)는 총배출량으로 계산하는데 목표 연도(2030년)는 순 배출량으로 감축량을 계산하고 있어 감축폭이 크게 보이는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 2018년 총배출량과 2030년의 총배출량을 기준으로 이 안을 계산하면 NDC는 약 30%에 불과하다. 그보다 음의 배출량 부문인 흡수원과 국외감축분 비중이 현저하게 늘어났고, 기존의 NDC에 있던 CCUS(탄소포집저장기술)가 그대로 들어갔다. 특히 국외감축분은 기존 NDC안(-16.2백만톤CO2eq) 대비 두 배(-35.1백만톤CO2eq) 가까이 늘었는데, 이행 여부와 불확실성이 높은데다가 국내감축의 도피수단으로서 등장하는 국외감축분은 배제되어야 마땅하다. 정 국외감축분을 포함할 것이라면 한국이 해외에 짓는 석탄발전소인 인도네시아에 자와 9, 10호기, 베트남 붕앙-2호기가 배출할 온실가스도 포함시키는 게 이치상 합당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국외감축분을 사유로 빚어지는 녹색 ODA(공적개발원조), REDD+(산림파괴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활동)등은 현지의 주민들의 삶과 생태계에 역으로 위해를 가하며 각종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기후악당 한국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기후부정의를 만들 셈인가. CCUS도 마찬가지로, 상용화는 물론이고 시행 여부조차 불확실한 기술을 포함시키는 것은 무책임함의 극치 아닌가? 이런 편법과 꼼수를 모두 제외한다면, 국외감축분과 불확실한 CCUS와 흡수원을 모두 제외한다면 한국의 NDC는 약 30%에 불과하다. 이것을 과연 기후위기 대응이라 부를 수 있는가?


국외가 아니라,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흡수원이 아니라 지금 현재 막대한 배출을 일삼는 부문에서 감축이 있어야만 한다. 오늘의 NDC에 누구의 입김이 얼마나 관철되었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온갖 의견서를 제출해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NDC안을 낮출 것을 요구한 대기업들과 연달아 성명서를 내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바빴던 경제 5단체(대한상공회의소 · 한국무역협회 · 한국경영자총협회 · 중소기업중앙회 ·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의)는 훗날 기후위기 대응을 유예시킨 책임을 막중히 져야 할 것이다. 산업계의 앓는 소리만 들어주다가 전환의 골든타임을 그대로 지나보내고 있는 산업부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부문별 온실가스 배출량 1~2위를 차지하는 산업 부문에서의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이 없는 탄소중립이란 망상에 지나지 않다. 기후정의의 원칙을 바탕으로 배출자 부담 책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녹색성장 기본법’ 제3조 1항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미래세대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하여 현재 세대가 져야 할 책임이라는 지속가능발전과 세대 간 형평성의 원칙에 입각한다.” 제3조 4항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책임과 이익이 사회 전체에 균형 있게 분배되도록 하는 기후정의를 추구함으로써 기후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을 동시에 극복하고,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취약한 계층ㆍ부문ㆍ지역을 보호하는 등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한다.” 제3조 8항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인류 공통의 문제라는 인식 아래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최대 섭씨 1.5도로 제한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한다. 오늘 제안된 NDC는 상기의 원칙을 지키지 못한다. 법안에 대한 불충분하고 무책임한 입법의 맥락에 대한 비판은 일단락하더라도, 법안에서 수립한 최소한의 약속과 원칙조차 지키지 못하는 NDC 앞에서, 이 입법은 무슨 의미가 있었는가. 지금이라도 ‘녹색성장 기본법’을 폐기해야 할 사유를 하나 더 추가하는 것뿐이다.


녹색당은 오늘의 무책임한 NDC 발표를 규탄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실현 가능한 NDC”를 제정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상징적인 망언과 궤를 같이한다. 이것이 던지는 질문은 명료하다. 현실에 기후위기를 맞출 것인가? 현실을 기후위기에 맞출 것인가. 이미 현실로 도래했을 뿐더러 시시각각 그 중대함이 커지는 기후위기 앞에서 어줍잖은 ‘현실적’ 타협과 ‘실현 가능성’들은 설 위치를 잃어야 한다. 타협가능한 현실에 기후위기를 짜 맞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녹색당은 요구한다. 오늘 공개한 NDC에 관한 모든 과정에 대한 정보와 근거의 공개를 요구한다. 정부와 탄소중립위원회는 명확한 과학적 사실과 정의로운 감축 원칙에 의한 탄소예산을 설정하여 2030 감축목표 NDC를 재수립하라. 녹색당은 중대한 모순을 스민 허구적인 감축 목표와 시나리오가 아닌 기후정의에 기반한 녹색전환 시나리오와 급진적 감축 목표를 제시할 것이다. 



2021.10.8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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