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정책브리핑 ①] 임대차시장 규제와 도시에 대한 권리(2024. 10. 10.) - 김기성(서울녹색당 정책위원장)
1. 90년 전 세입자들의 이야기
1935년 6월 9일, 평양에 살던 수십명의 세입자들은 임대료를 한번에 25% 올리겠다는 임대인의 통보에 반발하며 거리에 모였다. 당대의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부내 남산정 모씨는 평양에서 차가주(임대인)의 왕이라고까지 일컫는 사람인데, 수일 전에 차가인(임차인) 백수십명에게 집세를 현재보다 2할5푼(25%)을 더 올리겠으니, 만일 듣지 않겠거든 집을 비워달라는 극히 간단한 엽서통지로 차가인을 놀라게 하였다. 이에 분개한 차가인들은 비상한 결심 하에 지난 9일 오전 11시 모처에서 차가인 대표 수십명이 모여 집세를 그토록 올린다면은 집세를 도저히 줄 수 없다고 결의하고 가임불납동맹을 조직하여 가주와 대항하고 있다고 한다.
1935년 6월 14일 동아일보 석간 5면, “섭서일매(葉書一枚)로 가임(家賃)을 인상(引上)”.
90여년 전의 기사가 오늘날의 몇몇 장면들과 겹쳐 보인다. 25%라는 인상률, 그리고 따르지 않겠다면 퇴거하라고 우편으로 통보하는 임대인의 횡포가 현재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횡포다. 하지만 수십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임대를 놓는 ‘차가주의 왕’은 대규모 전세사기를 주도한 ‘빌라왕’과 ‘건축왕’을, 임대인에게 맞서 대항하는 가임불납동맹은 마치 거리로 나온 전세사기대책위원회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은 2020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되면서, 세입자는 최소 2년+2년의 점유를 보장받을 수 있고, 계약 갱신 시 임대료인상률에 5% 상한을 두게 되었으니 위와 같은 장면은 쉽게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임대인이 직접 거주를 이유로 계약 갱신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고1, 갱신계약이 아니면 임대료 상승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어 신규계약이나 신축주택에서 임대료가 크게 상승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전세사기·깡통전세로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퇴거를 걱정해야 하는 위험도 커졌다. 9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입자는 불안정하다.
2. 임대차시장 규제와 세입자 보호
세계 여러 국가에서는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해 임대차시장을 규제하고 있다. 임대차시장을 규제하는 방식은 국가별로 다양하다2. 임대료 수준이나 인상을 규제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최소계약기간을 설정하거나 보증금액의 상한선을 두는 것도 임대차시장을 규제하는 넓은 수단에 포함된다. 오스트리아, 콜롬비아, 네덜란드, 스페인 등은 물가지수에 연동해 임대료 인상을 규제하며, 노르웨이나 덴마크, 독일은 일부 주택에 대해 기준임대료를 규제한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특히 코로나19 전후로 세계의 대도시들의 주택가격과 임대료가 크게 상승하면서 많은 국가에서 임대차시장 규제를 확대했다. 오스트리아, 호주,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퇴거를 유예하거나 세입자에게 임대료를 보조하기도 하였다.
각 나라의 임대료 규제는 각 국가나 지역의 맥락 위에 세워진다. 동아시아에서 높은 집값으로 악명이 높은 홍콩 역시 2022년 임대료 규제를 도입하였다. 홍콩에는 탕팡(劏房, Subdivided Units)이라 불리는 비적정주거가 형성되어 있는데, 한국의 쪽방이나 고시원과 비슷하지만 워낙 도시 전체의 임대료가 높기 때문에 임대료도 상당히 비싸다. 2022년 탕팡의 높은 임대료를 규제하기 위해 홍콩은 한국과 유사하게 2년+2년의 임대차계약기간, 그리고 갱신계약 시 10% 이내의 인상률 상한제를 도입했다. 비적정주거만 임대료를 규제하는 것은 형평성이나 주거공간분리와 같은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도 있지만, 홍콩은 워낙 초국적 기업에 종사하는 고소득 노동자가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 주택의 임대료를 규제할 정치적 합의를 모으기 쉽지 않았다.
최근 문제가 가장 심각했고, 이에 따른 대응이 활발했던 국가는 아일랜드다. 아일랜드는 2021년 주택임대차법을 개정해 임대료 관리 구역(RPZ: Rent Pressure Zone)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주택시장이 과열된 곳을 RPZ로 지정하고 임대료 인상을 연간 2% 이내로 제한하였다. 이는 아일랜드에서 사회주택 등 공공이 부담가능한 주택을 공급해오던 기능이 축소되고, 부동산국제기업(Greystar 등)이나 부동산투자신탁(REITs)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임차인의 부담가능성이 심각히 악화된 것에 대한 사회정책적 대응이었다.
한국은 2020년 임대차3법이 입법되면서 임대차시장을 투명하게 하고, 임대차시장을 규제하려는 공적인 움직임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2022~2023년 대규모 전세사기·깡통전세가 대규모로 발생하고, 월세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 그 다음 스텝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임대차3법이 전세사기를 야기했다거나 전월세가를 크게 높였다는 낭설을 들어 법안을 폐기하려 하고 있다. 정부는 또한 기업형 임대주택이나 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통해 주택을 공급하기만 하면 부담가능성이 완화될 것이라는 공급만능론을 되풀이하고 있다. 임대차시장에 대한 적절한 규제 없이 공급만을 확대하는 것으로 임차인의 부담가능성을 개선하기 어려우며, 특히나 아일랜드의 사례에서 보듯 공공의 기능을 축소하고 임대주택을 투자/투기 상품으로 다룰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3. 기후위기, 세입자의 주거권, 그리고 도시에 대한 권리
임대차시장 규제에 있어 기후위기는 새로운 과제다. 탄소배출을 감축하고 위험한 거처를 없애기 위해, 자가주택뿐만 아니라 임대주택의 에너지효율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대인이 ‘선심껏’ 임차인을 위해 주택의 품질을 개선해줄 것을 기대할 수는 없기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주택의 성능 향상이나 에너지 효율 개선에 비용이 소요될 경우 임대료를 조정하여 이를 임차인에게 부과하는 것을 허용한다. 한국도 일각에서 임대인이 임대주택의 품질을 개선하거나 성능을 향상할 경우, 전월세상한제의 인상률 상한을 유연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리모델링을 통해, 때로는 철거와 신축을 통해 주거품질과 에너지효율을 개선하고 그 사이에서 세입자의 점유안정성, 부담가능성, 거주적합성과 같은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처럼 개별 주택을 단위로 임대인의 재산권과 임차인의 주거권(때로는 재산권)을 경합시키는 관점에도 한계가 있다. 주택이 아니라 도시 단위로 공간이 변화한다면, 세입자는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가? 세입자는 어떤 한 집에서 살아갈 권리로 충분한가?
프랑스의 이론가 앙리 르페브르(H. Lefebvre)는 그의 저서 ‘도시에 대한 권리’와 ‘공간의 생산’ 등에서 시민에게 도시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간은 ‘생산’되며, 특히나 ‘도시공간의 생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핵심적이라고 보았다. 공간은 물리적·사회적으로 행위의 흐름과 그 사이사이의 물질과 실천을 배치하고 조직함으로써 생산된다. 생산된 공간은 기호로서의 의미를 획득하고, 거주자 또는 이용자들의 삶의 양식을 형성한다. 여기서 공간은 사물이나 현상과 같은 물리적 물질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며, ‘사회적 공간’이라는 개념을 포괄한다. 도시라는 공간을 ‘생산’한 시민들은 도시에 대해 권리를 가지며, 이 권리는 주거, 여가, 생활, 건강, 교육에 관한 권리, 일할 권리, 도시공간의 생산에 참여할 권리 등 훨씬 더 넓은 권리를 포괄한다.
임대차시장에 대한 규제는 세입자의 부담가능성에 관한 개인적 권리보다 더 넓게 이해될 필요가 있다. 임대료나 계속거주를 보장하는 제도적 규제는 그 공간을 점유하고 가꿈으로써 생산해온 세입자-시민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조금씩 확대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주거품질이나 에너지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재개발·재건축이나 비적정주거로부터의 탈출을 강요받는 이들이 주거권, 그리고 도시에 대한 권리를 얼마나 보장받고 있는지 되짚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 머물러온 장소, 관계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가? 그들이 도시공간의 생산에 참여해온 것은 어떻게 인정되었고, 다시 그 생산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가?
서두의 1935년 평양을 되돌아보자. 1935년 임대료를 갑자기 25%나 올렸던 ‘차가주의 왕’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평양이라는 도시의 변화, 그리고 일본-조선이라는 식민지배의 조건이 존재했다. 1934년 조선총독부는 ‘조선시가지계획령’을 제정하며, 조선에 대한 도시계획을 점차 확대했다. 이 계획령의 구상과 집행은 식민지 지배권력을 중심으로 기획되었으며, 평양은 이러한 도시계획의 중점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식민지 지배권력이 도시의 개발을 계획한 것과, 수백채의 집을 거느린 임대인이 단번에 임대료를 인상한 것은 연관되어 있다. 여기서 세입자는 주거에 대해 어떤 권리를 가졌는가? 도시에 대해서는 어떤 권리를 가졌는가? 같은 질문을 지금의 한국사회에 되물어, 시민의 주거권 그리고 도시에 대한 권리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1 최근 대법원은 실거주 입증에 대한 책임이 임대인에게 있다고 판례(2022다279795)에서 실거주 입증에 대한 책임이 임대인에 있다고 보았으나, 일상적으로 임차인이 임대인의 실거주 주장을 판단하거나 법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2 이하 세계 여러 국가의 임대차시장 규제에 관한 정보는 OECD Affordable Housing Database의 임대차시장 규제에 관한 보고서(PH 6.1. Rental Regulation)를 참고하였다. (https://www.oecd.org/content/oecd/en/data/datasets/oecd-affordable-housing-database.html)
2024년 10월 10일
서울녹색당
[연속 정책브리핑 ①] 임대차시장 규제와 도시에 대한 권리(2024. 10. 10.) - 김기성(서울녹색당 정책위원장)
1. 90년 전 세입자들의 이야기
1935년 6월 9일, 평양에 살던 수십명의 세입자들은 임대료를 한번에 25% 올리겠다는 임대인의 통보에 반발하며 거리에 모였다. 당대의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90여년 전의 기사가 오늘날의 몇몇 장면들과 겹쳐 보인다. 25%라는 인상률, 그리고 따르지 않겠다면 퇴거하라고 우편으로 통보하는 임대인의 횡포가 현재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횡포다. 하지만 수십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임대를 놓는 ‘차가주의 왕’은 대규모 전세사기를 주도한 ‘빌라왕’과 ‘건축왕’을, 임대인에게 맞서 대항하는 가임불납동맹은 마치 거리로 나온 전세사기대책위원회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은 2020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되면서, 세입자는 최소 2년+2년의 점유를 보장받을 수 있고, 계약 갱신 시 임대료인상률에 5% 상한을 두게 되었으니 위와 같은 장면은 쉽게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임대인이 직접 거주를 이유로 계약 갱신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고1, 갱신계약이 아니면 임대료 상승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어 신규계약이나 신축주택에서 임대료가 크게 상승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전세사기·깡통전세로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퇴거를 걱정해야 하는 위험도 커졌다. 9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입자는 불안정하다.
2. 임대차시장 규제와 세입자 보호
세계 여러 국가에서는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해 임대차시장을 규제하고 있다. 임대차시장을 규제하는 방식은 국가별로 다양하다2. 임대료 수준이나 인상을 규제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최소계약기간을 설정하거나 보증금액의 상한선을 두는 것도 임대차시장을 규제하는 넓은 수단에 포함된다. 오스트리아, 콜롬비아, 네덜란드, 스페인 등은 물가지수에 연동해 임대료 인상을 규제하며, 노르웨이나 덴마크, 독일은 일부 주택에 대해 기준임대료를 규제한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특히 코로나19 전후로 세계의 대도시들의 주택가격과 임대료가 크게 상승하면서 많은 국가에서 임대차시장 규제를 확대했다. 오스트리아, 호주,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퇴거를 유예하거나 세입자에게 임대료를 보조하기도 하였다.
각 나라의 임대료 규제는 각 국가나 지역의 맥락 위에 세워진다. 동아시아에서 높은 집값으로 악명이 높은 홍콩 역시 2022년 임대료 규제를 도입하였다. 홍콩에는 탕팡(劏房, Subdivided Units)이라 불리는 비적정주거가 형성되어 있는데, 한국의 쪽방이나 고시원과 비슷하지만 워낙 도시 전체의 임대료가 높기 때문에 임대료도 상당히 비싸다. 2022년 탕팡의 높은 임대료를 규제하기 위해 홍콩은 한국과 유사하게 2년+2년의 임대차계약기간, 그리고 갱신계약 시 10% 이내의 인상률 상한제를 도입했다. 비적정주거만 임대료를 규제하는 것은 형평성이나 주거공간분리와 같은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도 있지만, 홍콩은 워낙 초국적 기업에 종사하는 고소득 노동자가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 주택의 임대료를 규제할 정치적 합의를 모으기 쉽지 않았다.
최근 문제가 가장 심각했고, 이에 따른 대응이 활발했던 국가는 아일랜드다. 아일랜드는 2021년 주택임대차법을 개정해 임대료 관리 구역(RPZ: Rent Pressure Zone)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주택시장이 과열된 곳을 RPZ로 지정하고 임대료 인상을 연간 2% 이내로 제한하였다. 이는 아일랜드에서 사회주택 등 공공이 부담가능한 주택을 공급해오던 기능이 축소되고, 부동산국제기업(Greystar 등)이나 부동산투자신탁(REITs)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임차인의 부담가능성이 심각히 악화된 것에 대한 사회정책적 대응이었다.
한국은 2020년 임대차3법이 입법되면서 임대차시장을 투명하게 하고, 임대차시장을 규제하려는 공적인 움직임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2022~2023년 대규모 전세사기·깡통전세가 대규모로 발생하고, 월세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 그 다음 스텝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임대차3법이 전세사기를 야기했다거나 전월세가를 크게 높였다는 낭설을 들어 법안을 폐기하려 하고 있다. 정부는 또한 기업형 임대주택이나 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통해 주택을 공급하기만 하면 부담가능성이 완화될 것이라는 공급만능론을 되풀이하고 있다. 임대차시장에 대한 적절한 규제 없이 공급만을 확대하는 것으로 임차인의 부담가능성을 개선하기 어려우며, 특히나 아일랜드의 사례에서 보듯 공공의 기능을 축소하고 임대주택을 투자/투기 상품으로 다룰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3. 기후위기, 세입자의 주거권, 그리고 도시에 대한 권리
임대차시장 규제에 있어 기후위기는 새로운 과제다. 탄소배출을 감축하고 위험한 거처를 없애기 위해, 자가주택뿐만 아니라 임대주택의 에너지효율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대인이 ‘선심껏’ 임차인을 위해 주택의 품질을 개선해줄 것을 기대할 수는 없기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주택의 성능 향상이나 에너지 효율 개선에 비용이 소요될 경우 임대료를 조정하여 이를 임차인에게 부과하는 것을 허용한다. 한국도 일각에서 임대인이 임대주택의 품질을 개선하거나 성능을 향상할 경우, 전월세상한제의 인상률 상한을 유연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리모델링을 통해, 때로는 철거와 신축을 통해 주거품질과 에너지효율을 개선하고 그 사이에서 세입자의 점유안정성, 부담가능성, 거주적합성과 같은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처럼 개별 주택을 단위로 임대인의 재산권과 임차인의 주거권(때로는 재산권)을 경합시키는 관점에도 한계가 있다. 주택이 아니라 도시 단위로 공간이 변화한다면, 세입자는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가? 세입자는 어떤 한 집에서 살아갈 권리로 충분한가?
프랑스의 이론가 앙리 르페브르(H. Lefebvre)는 그의 저서 ‘도시에 대한 권리’와 ‘공간의 생산’ 등에서 시민에게 도시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간은 ‘생산’되며, 특히나 ‘도시공간의 생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핵심적이라고 보았다. 공간은 물리적·사회적으로 행위의 흐름과 그 사이사이의 물질과 실천을 배치하고 조직함으로써 생산된다. 생산된 공간은 기호로서의 의미를 획득하고, 거주자 또는 이용자들의 삶의 양식을 형성한다. 여기서 공간은 사물이나 현상과 같은 물리적 물질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며, ‘사회적 공간’이라는 개념을 포괄한다. 도시라는 공간을 ‘생산’한 시민들은 도시에 대해 권리를 가지며, 이 권리는 주거, 여가, 생활, 건강, 교육에 관한 권리, 일할 권리, 도시공간의 생산에 참여할 권리 등 훨씬 더 넓은 권리를 포괄한다.
임대차시장에 대한 규제는 세입자의 부담가능성에 관한 개인적 권리보다 더 넓게 이해될 필요가 있다. 임대료나 계속거주를 보장하는 제도적 규제는 그 공간을 점유하고 가꿈으로써 생산해온 세입자-시민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조금씩 확대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주거품질이나 에너지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재개발·재건축이나 비적정주거로부터의 탈출을 강요받는 이들이 주거권, 그리고 도시에 대한 권리를 얼마나 보장받고 있는지 되짚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 머물러온 장소, 관계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가? 그들이 도시공간의 생산에 참여해온 것은 어떻게 인정되었고, 다시 그 생산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가?
서두의 1935년 평양을 되돌아보자. 1935년 임대료를 갑자기 25%나 올렸던 ‘차가주의 왕’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평양이라는 도시의 변화, 그리고 일본-조선이라는 식민지배의 조건이 존재했다. 1934년 조선총독부는 ‘조선시가지계획령’을 제정하며, 조선에 대한 도시계획을 점차 확대했다. 이 계획령의 구상과 집행은 식민지 지배권력을 중심으로 기획되었으며, 평양은 이러한 도시계획의 중점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식민지 지배권력이 도시의 개발을 계획한 것과, 수백채의 집을 거느린 임대인이 단번에 임대료를 인상한 것은 연관되어 있다. 여기서 세입자는 주거에 대해 어떤 권리를 가졌는가? 도시에 대해서는 어떤 권리를 가졌는가? 같은 질문을 지금의 한국사회에 되물어, 시민의 주거권 그리고 도시에 대한 권리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1 최근 대법원은 실거주 입증에 대한 책임이 임대인에게 있다고 판례(2022다279795)에서 실거주 입증에 대한 책임이 임대인에 있다고 보았으나, 일상적으로 임차인이 임대인의 실거주 주장을 판단하거나 법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2 이하 세계 여러 국가의 임대차시장 규제에 관한 정보는 OECD Affordable Housing Database의 임대차시장 규제에 관한 보고서(PH 6.1. Rental Regulation)를 참고하였다. (https://www.oecd.org/content/oecd/en/data/datasets/oecd-affordable-housing-database.html)
2024년 10월 10일
서울녹색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