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정책브리핑 ①] 임대차시장 규제와 도시에 대한 권리(2024. 10. 10.) - 김기성(서울녹색당 정책위원장) :
https://www.kgreens.org/statement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21786007&t=board
[연속 정책브리핑 ②] 도시공간의 재구성과 도시에 대한 권리(2024. 10. 17.) - 조준희(서울녹색당 전 사무처장)
“간단히 말해 자본주의 아래 도시 형성 과정의 핵심에는 배제와 약탈이 본질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도시 재개발을 통한 자본 흡수의 다른 측면이다.” (데이비드 하비,『반란의도시』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재정비 사업은 약탈적 도시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점유 여부와 무관하게 사적소유권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고, 국가와 지자체는 건설자본과 투기자본을 끌어들여 공적재원 투입을 최소화하면서 도시공간을 재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PF 등 금융상품을 통해 막대한 의제자본이 실재하는 공간을 잠식한다. 자본이 누리는 이윤과 비례해 상승한 주거비로 인해 주민 다수는 축출된다.
그런데, 부수고 짓기를 통해 무한한 축적을 보장할 것 같던 정비사업은 그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 80년대 이후 정립된 합동재개발은 토지소유자와 건설자본, 투기자본이 미래에 발생할 개발이익을 전제로 공사비를 충당하고 추가적인 이익을 각자가 사유화하는 방식이다. 부동산 가격의 안정적인 상승과 일반분양 규모의 최대화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작동하지 않는다. 최근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이미 용적률이 높은 상태에서 정비사업을 통해 늘릴 수 있는 주택의 수도 한계에 이르러 이른바 사업성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1. 정비사업의 위기와 정부의 대응
사업성의 위기에 대한 정부 대응은 대안적 도시재정비 모델 구축이 아니라 사업성 쥐어짜기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재건축 패스트트랙 도입, 안전진단 면제 등 규제완화를 통해 사업속도를 높이고 융자지원, 부담금 완화 등을 통해 사업성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8.8 주택공급확대방안에서 예고한 대로 “재건축·재개발사업 촉진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이 지난 9월 국회에 발의되었고, 이에 맞춰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도 함께 발의되어 있다. 제·개정 법률안은 정비사업의 절차 간소화, 한시적인 용적률 상향, 조합설립 동의 요건 완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용적률 특혜는 사업성을 제고하는 핵심 수단이고, 사업절차 간소화 역시 금융비용과 직결된 부분인 동시에, 투기성 자본의 유입 촉진과도 연결되는 부분인만큼 사업성 제고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제·개정 법률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방도시계획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용적률은 법적 허용치보다 최대 130%까지 완화할 수 있도록 하고, 건축물의 높이 제한이나 녹지 확보기준 완화 근거도 마련하여 사업성을 높인다. 그리고 재건축 사업의 경우 기존 75% 동의율보다 완화된 70%의 동의로 조합설립인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인허가 사항 통합 심의 진행, 정비사업 지원센터 설치 등 행정적 지원으로 사업속도를 높인다. 물론, 아직 국회에서 본격 논의되기 전이기는 하지만 정비사업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을 엿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서울시 역시 보조를 맞추고 있다. 용적률 완화, 사업성 보정계수 도입, 공공기여 비율 축소를 핵심으로 하는 정비사업 기본계획 수정이 지난 8월 이루어졌다. 이밖에도 ‘신속통합기획’ 추진, 정비사업장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협의절차 면제 등 사업절차 간소화와 사업성 제고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2. 대안적 도시재정비 모델의 필요
공사비 급증 등 외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긴 했으나, 앞서 언급했듯이 정비사업의 위기는 그 자체의 구조적 원인에 기인한다. 정부의 정책방향은 그런 의미에서 구조적 위기를 잠시 유예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용적률은 무한정 퍼줄 수 있는 재화가 아니라 기반시설의 용량, 존엄한 삶의 유지에 직결되는 공유재의 성격을 띈다. 앞으로 세대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주택이 필요할 때마다 용적률을 계속 완화시켜줄 수도 없고, 또 무한정 완화시켜줘서도 안된다1.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존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시민들의 권리가 아니라 자본의 이윤추구에 복무하면서 만들어낸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대응은 문제적이다.
기존 정비사업은 주택과 도시공간, 나아가 용적률 등 정책수단까지 상품화하여 구매력이 없는 사람들을 거주지에서 축출한다. 도시 전체적인 차원으로 보자면 구매력이 없는 사람들은 점점 더 도심에서 먼 곳으로 밀려나가는 형국이다. 또한 도시재정비의 동력을 주거권이 아니라 시세차익에 두고 있기 때문에 소유권자가 아닌 거주민의 권리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된다.
여기에 기후위기, 고령화와 같은 새로운 조건에 따라 대안 모델 구축이 더욱 필요해졌다. 극단적 기상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는 기반시설 정비, 개별주택의 에너지효율 개선이 필요한데 그 수단이 지금과 같은 축출적 재건축·재개발이라면 ‘누구나’ 안전한 주거를 누려야한다는 기본적인 전제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소득이 적거나 없는 고령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존 정비사업의 수 억원에 달하는 추가분담금, 철거로 인한 거주지 변경, 긴 사업기간을 감당하기 어려운 가구도 증가하고 있다.
3. 도시에 대한 권리와 도시재정비 정책의 방향
프랑스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1968년 “도시에 대한 권리”(이하 도시권)를 주창한 이래, 도시권은 데이비드 하비, 피터 마르쿠제 등에 의해 이론적 영역에서, 도시권연합(Right to the City Alliance)을 비롯한 각지의 도시개발 반대, 주거권 운동에 의해 실천적 영역에서 계속해서 다듬어지고, 가시화되고 있다. 도시권의 핵심은, 도시공간의 생산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도시를 만든 사람들이 도시를 누릴 수 있는 권리에 있다. 그리고 도시는 단순히 물리적인 건축물이나 건조환경의 집합체가 아니라 도시거주민의 집단적인 노동과 교류로 만들어진 관계의 장이자 공유재적 성격을 가진다. 즉, 도시거주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거대한 공유재인 도시를 재창조하고,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소수 자본이 아니라 도시거주민 모두에게 있다.
따라서 도시권에 입각하여 도시재정비 정책을 이야기할 때 핵심도 “누가 결정하는가”, “누가 누리는가”에 있다. 기존 한국 정비사업은 소유권자와 투기 및 금융자본, 이들의 이윤 확보를 지원하는 국가가 의사결정권의 대부분을 갖는다. 지하철역 등 기반시설, 편리하고 특색있는 상가, 쉴만한 공원은 그 필요를 창출하는 거주민들의 활동과 세금 등 공적재원으로 조성되지만, 한 차례 정비사업 광풍을 거치고 나면 그 공동의 결과물을 누리는 것은 새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로 바뀐다.
도시권에 입각한 도시재정비 방향은 기존 한국 주거권 운동, 도시 운동의 메시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살인적인 강제퇴거 금지, 소유권자가 아닌 세입자 등 실제 거주민의 의사결정 참여, 임시 주거와 재정착을 위한 지원 등이다. 그리고 이에 더해, 공유지 확보, 의사결정체계 개편도 정비사업과 관련한 즉각적인 정책 제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기존 정비사업, 나아가 한국식 택지개발에서 공공부지는 사업성 확보를 위한 매각의 대상이었지 확보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세훈 서울시는 ‘공모형 민간투자사업’ 등 시유지를 매각하기 위해 적극적인 세일즈 행정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공유지 매각을 막아내는 운동, 정비사업의 공공기여 수준을 다시 높이고 공공선매권 등 공유자산 확대를 위한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공유지의 존재는 그 자체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자, 소유권과 무관하게 도시공간 생산과정에 거주민 모두를 초대할 수 있는 중요한 정당성을 만들어준다.
도시계획위원회, 도시재정비위원회 등 공식적 의사결정구조의 전면적인 개편도 필요하다. 관계 공무원, 학계 전문가, 업계 종사자 중심의 위원회에 세입자, 노동자 등 시민 참여를 가능하게 하고 그 논의 내용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개별 정비사업 현장에서도 세입자의 의견, 정비사업 반대 주민의 의견을 제도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공식 창구가 필요하다.
4. 제도로서의 도시권, 운동으로서의 도시권
도시재정비 정책은 도시계획, 부동산이라는 단일 부문이 아니라 조세, 금융, 산업, 교통, 복지, 지역균형 등 사회 각 부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재정비 정책의 지엽적인 지침 하나하나가 풍선효과를 불러오거나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을 수도 있다. 따라서 대안 모델의 구축은 그만큼 방대한 사회계획이다. 몇 가지 미세 정책 조정만으로 현 정비사업의 구조적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시권에 입각한 제도를 마련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사회운동으로서의 도시권 운동이 동반될 때 유효하다. 사적소유권이라는 현 시대의 금과옥조에 반하는 제도가 서기 위해서는 도시가 공유재라는 인식, 사적소유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공통의 규범으로 자리 잡아야만 한다. 수십 년 반복되어 온 재개발 현장과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의 투쟁은 물론이고 정비사업과 무관해보이는 운동들, 이를테면 교통, 에너지, 기반시설의 공영화 투쟁, 공덕역 경의선공유지, 서울혁신파크 등 공유지를 만들고 지키는 투쟁 모두가 도시권을 당연한 규범으로 만드는 길을 닦고 있다.
사업성만 바라보는 현 정비사업의 위기는 곧 도시공간을 재구성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도시권 운동이 도시재정비라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푸는 열쇠가 되기를 기대한다.
1 세대수 증가가 없거나 미미한 소위 ‘1대1’ 재건축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도시재정비 제도 하에서 1대1 재건축이 가능한 곳은 5억원을 상회하는 추가분담금을 감당할만한 경제력을 갖추고, 그 부담을 상쇄할만한 시세차익이 보장되는 용산, 강남, 서초 일부 단지에 한한다.
2024년 10월 17일
서울녹색당
[연속 정책브리핑 ①] 임대차시장 규제와 도시에 대한 권리(2024. 10. 10.) - 김기성(서울녹색당 정책위원장) :
https://www.kgreens.org/statement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21786007&t=board
[연속 정책브리핑 ②] 도시공간의 재구성과 도시에 대한 권리(2024. 10. 17.) - 조준희(서울녹색당 전 사무처장)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재정비 사업은 약탈적 도시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점유 여부와 무관하게 사적소유권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고, 국가와 지자체는 건설자본과 투기자본을 끌어들여 공적재원 투입을 최소화하면서 도시공간을 재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PF 등 금융상품을 통해 막대한 의제자본이 실재하는 공간을 잠식한다. 자본이 누리는 이윤과 비례해 상승한 주거비로 인해 주민 다수는 축출된다.
그런데, 부수고 짓기를 통해 무한한 축적을 보장할 것 같던 정비사업은 그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 80년대 이후 정립된 합동재개발은 토지소유자와 건설자본, 투기자본이 미래에 발생할 개발이익을 전제로 공사비를 충당하고 추가적인 이익을 각자가 사유화하는 방식이다. 부동산 가격의 안정적인 상승과 일반분양 규모의 최대화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작동하지 않는다. 최근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이미 용적률이 높은 상태에서 정비사업을 통해 늘릴 수 있는 주택의 수도 한계에 이르러 이른바 사업성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1. 정비사업의 위기와 정부의 대응
사업성의 위기에 대한 정부 대응은 대안적 도시재정비 모델 구축이 아니라 사업성 쥐어짜기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재건축 패스트트랙 도입, 안전진단 면제 등 규제완화를 통해 사업속도를 높이고 융자지원, 부담금 완화 등을 통해 사업성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8.8 주택공급확대방안에서 예고한 대로 “재건축·재개발사업 촉진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이 지난 9월 국회에 발의되었고, 이에 맞춰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도 함께 발의되어 있다. 제·개정 법률안은 정비사업의 절차 간소화, 한시적인 용적률 상향, 조합설립 동의 요건 완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용적률 특혜는 사업성을 제고하는 핵심 수단이고, 사업절차 간소화 역시 금융비용과 직결된 부분인 동시에, 투기성 자본의 유입 촉진과도 연결되는 부분인만큼 사업성 제고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제·개정 법률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방도시계획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용적률은 법적 허용치보다 최대 130%까지 완화할 수 있도록 하고, 건축물의 높이 제한이나 녹지 확보기준 완화 근거도 마련하여 사업성을 높인다. 그리고 재건축 사업의 경우 기존 75% 동의율보다 완화된 70%의 동의로 조합설립인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인허가 사항 통합 심의 진행, 정비사업 지원센터 설치 등 행정적 지원으로 사업속도를 높인다. 물론, 아직 국회에서 본격 논의되기 전이기는 하지만 정비사업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을 엿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서울시 역시 보조를 맞추고 있다. 용적률 완화, 사업성 보정계수 도입, 공공기여 비율 축소를 핵심으로 하는 정비사업 기본계획 수정이 지난 8월 이루어졌다. 이밖에도 ‘신속통합기획’ 추진, 정비사업장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협의절차 면제 등 사업절차 간소화와 사업성 제고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2. 대안적 도시재정비 모델의 필요
공사비 급증 등 외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긴 했으나, 앞서 언급했듯이 정비사업의 위기는 그 자체의 구조적 원인에 기인한다. 정부의 정책방향은 그런 의미에서 구조적 위기를 잠시 유예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용적률은 무한정 퍼줄 수 있는 재화가 아니라 기반시설의 용량, 존엄한 삶의 유지에 직결되는 공유재의 성격을 띈다. 앞으로 세대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주택이 필요할 때마다 용적률을 계속 완화시켜줄 수도 없고, 또 무한정 완화시켜줘서도 안된다1.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존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시민들의 권리가 아니라 자본의 이윤추구에 복무하면서 만들어낸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대응은 문제적이다.
기존 정비사업은 주택과 도시공간, 나아가 용적률 등 정책수단까지 상품화하여 구매력이 없는 사람들을 거주지에서 축출한다. 도시 전체적인 차원으로 보자면 구매력이 없는 사람들은 점점 더 도심에서 먼 곳으로 밀려나가는 형국이다. 또한 도시재정비의 동력을 주거권이 아니라 시세차익에 두고 있기 때문에 소유권자가 아닌 거주민의 권리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된다.
여기에 기후위기, 고령화와 같은 새로운 조건에 따라 대안 모델 구축이 더욱 필요해졌다. 극단적 기상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는 기반시설 정비, 개별주택의 에너지효율 개선이 필요한데 그 수단이 지금과 같은 축출적 재건축·재개발이라면 ‘누구나’ 안전한 주거를 누려야한다는 기본적인 전제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소득이 적거나 없는 고령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존 정비사업의 수 억원에 달하는 추가분담금, 철거로 인한 거주지 변경, 긴 사업기간을 감당하기 어려운 가구도 증가하고 있다.
3. 도시에 대한 권리와 도시재정비 정책의 방향
프랑스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1968년 “도시에 대한 권리”(이하 도시권)를 주창한 이래, 도시권은 데이비드 하비, 피터 마르쿠제 등에 의해 이론적 영역에서, 도시권연합(Right to the City Alliance)을 비롯한 각지의 도시개발 반대, 주거권 운동에 의해 실천적 영역에서 계속해서 다듬어지고, 가시화되고 있다. 도시권의 핵심은, 도시공간의 생산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도시를 만든 사람들이 도시를 누릴 수 있는 권리에 있다. 그리고 도시는 단순히 물리적인 건축물이나 건조환경의 집합체가 아니라 도시거주민의 집단적인 노동과 교류로 만들어진 관계의 장이자 공유재적 성격을 가진다. 즉, 도시거주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거대한 공유재인 도시를 재창조하고,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소수 자본이 아니라 도시거주민 모두에게 있다.
따라서 도시권에 입각하여 도시재정비 정책을 이야기할 때 핵심도 “누가 결정하는가”, “누가 누리는가”에 있다. 기존 한국 정비사업은 소유권자와 투기 및 금융자본, 이들의 이윤 확보를 지원하는 국가가 의사결정권의 대부분을 갖는다. 지하철역 등 기반시설, 편리하고 특색있는 상가, 쉴만한 공원은 그 필요를 창출하는 거주민들의 활동과 세금 등 공적재원으로 조성되지만, 한 차례 정비사업 광풍을 거치고 나면 그 공동의 결과물을 누리는 것은 새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로 바뀐다.
도시권에 입각한 도시재정비 방향은 기존 한국 주거권 운동, 도시 운동의 메시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살인적인 강제퇴거 금지, 소유권자가 아닌 세입자 등 실제 거주민의 의사결정 참여, 임시 주거와 재정착을 위한 지원 등이다. 그리고 이에 더해, 공유지 확보, 의사결정체계 개편도 정비사업과 관련한 즉각적인 정책 제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기존 정비사업, 나아가 한국식 택지개발에서 공공부지는 사업성 확보를 위한 매각의 대상이었지 확보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세훈 서울시는 ‘공모형 민간투자사업’ 등 시유지를 매각하기 위해 적극적인 세일즈 행정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공유지 매각을 막아내는 운동, 정비사업의 공공기여 수준을 다시 높이고 공공선매권 등 공유자산 확대를 위한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공유지의 존재는 그 자체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자, 소유권과 무관하게 도시공간 생산과정에 거주민 모두를 초대할 수 있는 중요한 정당성을 만들어준다.
도시계획위원회, 도시재정비위원회 등 공식적 의사결정구조의 전면적인 개편도 필요하다. 관계 공무원, 학계 전문가, 업계 종사자 중심의 위원회에 세입자, 노동자 등 시민 참여를 가능하게 하고 그 논의 내용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개별 정비사업 현장에서도 세입자의 의견, 정비사업 반대 주민의 의견을 제도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공식 창구가 필요하다.
4. 제도로서의 도시권, 운동으로서의 도시권
도시재정비 정책은 도시계획, 부동산이라는 단일 부문이 아니라 조세, 금융, 산업, 교통, 복지, 지역균형 등 사회 각 부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재정비 정책의 지엽적인 지침 하나하나가 풍선효과를 불러오거나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을 수도 있다. 따라서 대안 모델의 구축은 그만큼 방대한 사회계획이다. 몇 가지 미세 정책 조정만으로 현 정비사업의 구조적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시권에 입각한 제도를 마련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사회운동으로서의 도시권 운동이 동반될 때 유효하다. 사적소유권이라는 현 시대의 금과옥조에 반하는 제도가 서기 위해서는 도시가 공유재라는 인식, 사적소유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공통의 규범으로 자리 잡아야만 한다. 수십 년 반복되어 온 재개발 현장과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의 투쟁은 물론이고 정비사업과 무관해보이는 운동들, 이를테면 교통, 에너지, 기반시설의 공영화 투쟁, 공덕역 경의선공유지, 서울혁신파크 등 공유지를 만들고 지키는 투쟁 모두가 도시권을 당연한 규범으로 만드는 길을 닦고 있다.
사업성만 바라보는 현 정비사업의 위기는 곧 도시공간을 재구성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도시권 운동이 도시재정비라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푸는 열쇠가 되기를 기대한다.
1 세대수 증가가 없거나 미미한 소위 ‘1대1’ 재건축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도시재정비 제도 하에서 1대1 재건축이 가능한 곳은 5억원을 상회하는 추가분담금을 감당할만한 경제력을 갖추고, 그 부담을 상쇄할만한 시세차익이 보장되는 용산, 강남, 서초 일부 단지에 한한다.
2024년 10월 17일
서울녹색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