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속 정책브리핑 ③] 성북구 정릉골 재개발과 주거의 공공성 확보

서울녹색당
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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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정책브리핑 ②] 도시공간의 재구성과 도시에 대한 권리(2024. 10. 17.) - 조준희(서울녹색당 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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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정책브리핑 ③] 성북구 정릉골 재개발과 주거의 공공성 확보(2024.10.24.) - 이희민(성북녹색당 위원장)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 김광섭. (1968). 성북동 비둘기. 월간문학 11월.

김광섭의 시에서 말하는 '성북동 비둘기'는 재개발로 인해 원주민들이 원래 거주하던 터전에서 쫓겨나는 현실을 상징한다. 50여년이 흐른 지금도 재개발로 인해 성북구의 비둘기는 번지를 잃고 있다.

성북구 재개발의 역사

성북구는 서울에서 재개발이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지역 중 하나다. 나는 장위동 인근 중학교를 다녔고, 그 시절 많은 친구들이 재개발로 인해 이사를 갔다. 고등학교 때는 등교길에 자주 가던 떡볶이 집이 길음뉴타운 사업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성북구는 여전히 공사 중이다. 주말마다 청년 창업 강의를 들으러 가는 한성대도 마을버스 정류장부터 정문까지 철거 가림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처럼 성북구는 지난 몇십 년간 끊임없이 철거와 신축을 반복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주거권과 환경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서울의 '뉴타운(New Town)' 사업은 2000년대 초반, 기존의 낡고 불량한 주택지를 대규모로 재개발하여 현대식 주거지로 탈바꿈하려는 계획으로 시작되었다. 성북구는 오래된 주택들이 밀집한 지역이었고, 낡은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재개발 요구가 컸던 만큼 뉴타운 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장위동은 장위1구역부터 장위15구역까지 넓은 구역이 재개발 대상으로 지정될 정도로 대규모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면서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원래 거주하던 저소득층과 세입자들은 더 외진 곳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뉴타운 사업은 초기 목적과 달리, 주거권 침해와 주민들의 강제 이주를 낳았다.

정릉골 재개발: 현황과 문제점

성북녹색당은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정릉천과 성북천 일대에서 플로깅을 진행한다. 지난 7월 말, 정릉천에서 녹색당 조끼를 입고 플로깅을 하던 중 한 주민께서 우리에게 “녹색당이라면 정릉골 재개발에 함께 나서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셨고, 그 계기로 성북녹색당은 정릉골 세입자 대책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릉골은 성북구에서도 도심을 벗어나 북한산 자락 아래에 위치해있다. 북한산 인근이라  개발 허가가 쉽지 않았고 저렴한 집값으로 인해 성북구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밀려난 저소득층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정릉골에 모여 살고 있었다. 이러한 지역적 특색으로 인해 정릉골 재개발 사업은 애초에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저층 주거단지 조성을 목표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시된 초기 계획안 4층 타운하우스 신축에는 임대주택 건설 의무가 법적으로 부과되지 않았다1. 2022년 포스코이앤씨가 시공사로 선정되면서 지난해 저층 주거단지와 고층 아파트를 함께 짓는 수정안이 제시되었고, 이에 따라 임대주택 건설 의무가 생겼다. 하지만 고층 아파트 건설로 인한 북한산 경관 훼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조합장의 사퇴 이후 다시 원안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내부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최종 결정은 미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세입자들은 불확실한 주거 상황에 놓여 있다.

정릉골에는 400여 가구의 세입자가 있었으나, 그중 일부만이 주거 이주비 보상을 받았고, 나머지 세입자들은 보상조차 받지 못한 상태다. 세입자들을 위한 이주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재개발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정릉골 재개발의 특징은 임대주택이 포함되지 않은 저층 주거단지 건축을 목표로 했다는 점이다. 임대주택이 포함되지 않으면 기존 세입자들은 재개발 이후 정릉골에 다시 거주할 수 없게 된다. 고가의 타운하우스가 세워질 경우 저소득층 세입자들은 성북구에 머물 수 없게 되고,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지역에서 쫓겨나게 된다. 세입자들은 이에 반발하며 최소한의 주거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들의 목소리는 듣는 이 없이 메아리칠 뿐이다.

이러한 정릉골 재개발 과정에서의 주된 문제는 구청과 시청의 태도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세입자들의 이주 대책 요구에 대해 "서울시에 가서 따져라"는 반응을 보이며 구청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에 반발한 성북녹색당과 시민 연대체, 그리고 정릉골 세입자 대책위원회는 구청과 서울시청 앞에서 돌아가며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구청과 시청이 세입자 보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현실에 깊이 분노하며 항의하고 있다. 집회도, 법도 익숙치 않았던 주민들은 두꺼운 자료집과 몸의 절반을 가리는 피켓을 들고 다니며 자신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누구인지, 또 누가 이 상황을 중재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막막한 상황이다.

현재의 재개발 방식은 원주민과 이주민이 상생하기 보다는 저소득층 원주민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고소득층 이주민으로 대체하여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 포탈에 정릉골 재개발을 검색하면 ‘임대주택이 없다’는 것이 이점이라고 광고하는 블로그 글마저 나온다. 대부분의 재개발이 그러하듯 정릉골 역시 이곳에 살지 않는 자본가에 의해 원주민의 처우가 결정이 되는데 공공은 이들을 보호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재개발로 인해 원주민들이 생존 기반을 상실하고 있으며,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동시에 겪고 있다.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주민들의 주거권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구청과 시청은 적극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주거권과 환경 보존을 위한 정책적 대안

정릉골 재개발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 우선, 임대주택 건설 의무를 강화하고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들이 재개발 후에도 해당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임대주택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 특히 공공임대주택을 적극적으로 포함하지 않으면, 저소득층은 재개발 이후 정릉골에 다시 거주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위해 임대주택 비율을 법적으로 명시하고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이주비와 임대 지원금을 확대해야 한다. 현재 제공되는 이주비와 보상금은 세입자들이 새로운 주거지를 찾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보상 기준을 현실화하여 세입자들이 지역 내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저소득층 주민들이 재개발 과정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덜 겪도록 해야 한다.

주민 참여형 재개발 제도도 필요하다. 재개발 과정에서 중요한 결정들이 대부분 자본가와 개발업체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에, 정작 거주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공청회나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강화하는 것이 그 방법 중 하나이다. 특히, 재개발 조합에 세입자 대표를 포함시켜 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경 보호 측면에서는 재개발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정릉골은 북한산 자락에 위치해 있어 재개발 과정에서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소음과 고층 건물로 인해 동물들이 다치거나 사라질 수 있다. 건설 과정에서 환경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공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현재 구청과 시청이 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들의 보호와 환경 보존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공기관은 주민들의 주거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환경 보존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공공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지역사회의 불안을 야기하게 된다.

재개발은 단순히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재개발 과정에서 인간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 서식하는 비인간 생명체들의 삶을 고려하고,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해 모든 이들의 평등한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 재개발이 더 이상 지역 주민들의 삶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정비사업의 임대주택 및 주택규모별 건설비율 제4조(재개발사업의 임대주택 및 주택규모별 건설비율) ① 재개발사업의 사업시행자는 건설하는 주택 전체 세대수의 80퍼센트 이상을 85제곱미터 이하 규모의 주택으로 건설하여야 한다. 다만, 주택단지 전체를 평균 5층 이하로 건설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2024년 10월 24일
서울녹색당